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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 수행과 영성의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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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lby00523] 쪽지 캡슐

2016-12-26 ㅣ No.211917

[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10] 한상봉 | isu@catholicnews.co.kr

수행과 영성의 대중화

 

신자들의 영성이 고갈된 것처럼, 교회 역시 폐허 속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다. 그 안에서 그분은 "목 마르다" 하고 외치고 계신다.(사진/한상봉 기자)

 

☞ '요한 복음 17장은 모든 사제의 공통된 기도'입니다.

(http://cafe.daum.net/lby00523/9LvK/571)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어렵고 힘든 수행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간단명료하면서도 쉽게 답을 제공하고 있다.”(바티칸리포트 2)

 

과연 그리스도교가 신자들에게 어렵고 힘든 수행을 강조하는가?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고 대체로 틀린 말이기도 하다. 초대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열쇠 말은 ‘순교’였다.

 

로마제국은 황제숭배가 유행하였고, 권력에 의해 강제되었다. 따라서 그 시기에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특별한 결단을 요구하였다.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깃발과 로마군대의 맹기(盟旗) 앞에서 동시에 충성을 서약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의 깃발은 진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무력한 자의 승리에 믿음을 걸었고, 로마군대의 맹기는 제국주의적 침략전쟁과 무력에 의한 강제된 평화를 천명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군대에 복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이며, 로마황제가 명령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학살해야 하는 게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공무원 신분을 취할 수도 없었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신앙을 지켜야 했다. 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였으며, 야수와 검투사가 싸우는 원형경기장에 구경 가지 않았고, 로마의 축제와 군대의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역병에 시달리는 로마시민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들을 돌보았다.

 

재산을 바쳐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급식을 행하였으며, 예수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복음적 요청에 따라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부르짖고, 민중운동에 참여했던 사제, 수도자, 평신자들이 박해를 당하였고,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처럼 암살당한 분도 계셨다.

 

▲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새로운 전망을 얻기 위한 평신자들의 노력이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신앙이 단순히 제 몸과 영혼의 안녕만을 비는 '웰빙'에 머물지 않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최근 대전, 수원, 서울 등지에서 사회교리 학교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그런 관심의 표현이다.(사진/한상봉 기자)

 

순교 없는 대중사회의 신앙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에는 신앙이 순교를 부르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대중사회이며, 대중사회의 기성종교는 대중종교가 되면서, 무리 없이 일정한 격식을 갖추면 신자가 되고, 그들은 신자라 해서 교회로부터 특별한 헌신과 기득권 포기를 요청받지 않는다. 대부분은 예전에 살던 생활양식을 유지하면서 종교적 문화양식을 거기에 덧붙일 뿐이다.

 

각계각층의 신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적절한 하느님을 섬기고, 복음적 요청과 자신의 생활양식 사이에 놓인 심연을 눈치 채지 못한다.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판을 벌이고,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의 일부를 교회에 여러 가지 '특혜'의 방식으로 자선함으로써 교회 안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인정받던 자가 교회에서도 대우받는 사회는 이미 대안사회가 아니다.

 

복음서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첫째이던 자가 교회에선 말석에 앉지도 않고, 세상에서 천대받던 사람은 교회 안에서도 주변에서 배회한다. 세상과 교회의 우두머리들은 우두머리들끼리 상종하고, 세상과 교회의 천대받는 백성들은 저들끼리 모여 신세를 한탄한다.

 

교회가 요구하는 '착한사람'은 <좋은 생각> 수준에서 

 

그렇다면,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례력에 따른 미사참례와 성사생활, 그리고 교무금과 헌금을 꼬박꼬박 내면 일단 신자로서 기본은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요청되는 것은, 제발 성서 좀 열심히 읽으라는 주문, 그리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세상에 모범이 되는 착한 이웃으로 살라는 것이다.

 

착한 이웃이 된다는 것만큼 막연하고 어려운 요청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악해지기 쉬운 경쟁적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저 착해지라는 말은 자칫 공염불(空念佛)이 되기 십상이다.

 

<좋은 생각>이란 잡지 수준의 메시지를 전하는 미사강론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복음적 결단’을 요청받지 않는다. 하면 좋고, 안 해도 할 수 없는 게 교회의 문화적 정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복음적으로 살려고 하면, 사실상 교회도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교회의 어수룩한 구석을 자꾸 찌르기 때문이다.

 

복음적 결단을 스스로 주저하는 교회는 신자들 역시 복음적 결단을 내리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이 아닐까? 너무 앞서 가지 말라고 허리 뒤춤을 잡는 것이 교회일 때가 종종 있는 까닭이다.

 

복음적 요청엔 딴전을 피우는..

 

교회가 복음적 요청에 대하여 딴전을 피우는 것은 신자들에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을 은연중에 유포시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이 일어나고 나서, 수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이 활성화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대공장 노동조합은 그때 아마 대부분 건설되었을 것이다.

 

이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전교조 사태’라는 게 터졌는데, 교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당연히 전교조를 불법화했고, 각 급 학교에 전교조 가입 교사들을 단속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 당시 가톨릭재단에서는 8개 교구에 11개 교회재단 학교에서 28명이나 되는 교사가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되었다.

 

그 때에 추기경과 학교장들은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만일 해당 학교에서 전교조 참여 교사들을 해직하지 않으면 정부지원금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불가피하게 교사들을 해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책임을 맡은 장상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어서 제 식구들을 잘라낸 격이니, 생각할수록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친구는 어려울 때 알아본다고 했다. 그 사람의 신앙은 박해 가운데 빛이 난다고 했다. 결국 교회는 복음적 요청과 현실적 이해 가운데 ‘불가피하게’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준 셈이고, 교회가 항상 가르치던 복음이 교사들에게 슬픈 소식이 되어 온 것이다.

 

본질적으로 세상을 사는 교회는 어렵고 힘든 수행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야말로 ‘세상’을 사는 교회는 손쉽고 가벼운 수행을 선택한다. 최소한 품위를 유지하며 기득권이 침해받지 않을 만큼만 희생하기를 원한다.

 

세상과 거래하면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면, 복음은 ‘장사의 원리’가 된다. 상업사회에서 상업화된 종교에 특별히 매력을 느낄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얄팍한 계산을 하는 공동체를 위하여 목숨 바칠 신자가 그리 많겠는가? 

 

수행의 대중화

 

바티칸은 뉴에이지 운동이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간단명료하면서도 쉽게 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상 진리 자체가 간단명료한 것은 흠이 아니다.

 

복음서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고백하듯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처럼 간단명료하게 하느님을 표현할 수 있는 구절이 있는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해서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하라”라는 말처럼 분명한 복음적 명령이 따로 있는가?

 

우리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처럼 희망적인 언어가 또 있겠는가?

 

그리스도교는 ‘무식한’ 예수께서 ‘무식한’ 농부, 어부, 세리, 여성들에게 먼저 전달한 복음을 기초로 세워진 종교다. 복음은 예수께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기에, 당신의 복음은 들을 귀가 있는 자, 볼 눈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간단명료한 것이다.

 

복음을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은 예수와 같은 처지에서 당대의 민중들과 같은 입장에서 복음을 읽을 수 없었던, 그래서 제 머리에 의존해서 어렵게 복잡하게 공부한 신학자들뿐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그리스도교는 평신자들에게 결코 ‘수행’을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수도자라는 특별한 계층만이 직업적으로 ‘수행’을 고민해 왔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뉴에이지 운동이 세상을 위해 공헌한 바가 있다면 ‘수행의 대중화’다. 따로 성직계급을 두지 않는 뉴에이지 운동은 모든 사람이 수행을 통하여 ‘영적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인류가 경험했던 다양한 방법으로 지혜를 얻으라고 제안한다.

 

참선이든, 요가든, 명상이든, 관상이든, 기도든 제 기질에 맞는 명상법을 터득하여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이다.

 

그 중에는 사이비 교주들도 있지만, 달라이 라마나 비노바 바베, 마하트마 간디처럼 자기 조상들이 전수해준 지혜에 의지하여 ‘타인을 위한 존재’로 거듭난 위대한 영혼들도 있다.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사회적 복음과 개인의 영적 각성을 통일시켜 왔다. 물론 철저한 자기 수행을 통하여.

 

오히려 이제 우리 교회 역시 그리스도교적 영성을 기반으로 하는 ‘수행/영성의 대중화’를 고민해야 한다. 비판에 앞서 먼저 배울 점을 찾는 게 유익할 것이다.

 

 

  한상봉(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승인 2011.05.18 09:45:14)

가난한 자입니다

 


☞ 교황, "교회도 거리로 나가라. 불평등과 맞서 싸워라."(루가 7장 12-17) ▶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규정 ▲ "… 교회와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무조건 순명해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고 틀린 생각이다 " ▲ "이렇게 생각하는 성직자는 사목직이 봉사직이라는 교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평신도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모르는 영구한 미성년자이다.” ▲ “원시종교에서 그들이 숭앙하는 신과 인간을 중개한다고 하는 무당이나 도사를 숭배했듯이 신자들이 성직자를 숭배해서는 안된다.” ▲ "이러한 신앙 행태를 '무당 숭배 잔재'라고까지 규정한다." ▲ 무당 : 귀신을 섬겨 굿을 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일에 종사하는 여자. 한자로는 ‘巫堂’으로 쓴다. ▲ 숭배 : 훌륭히 여겨 우러러 공경함. ▲ 잔재 : 과거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방식의 찌꺼기 ▲ "결국 성직중심주의를 조장하는 책임의 절반은 미성숙한 신앙의식을 지닌 미성년자인 평신도에게로 돌아간다."(정하권 몬시뇰) ☞ 가톨릭대학교 백운철 신부는 ▲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사회에서 누구나 늑대처럼 영악하게 살고자 하지만 교황은 골리앗과 다윗의 예를 들며 양으로 살라고 권고한다” ▲ “사제들은 성장 추구형 관리자가 아니라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는 착한 목자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방문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머무시는 자리마다 고운마음 피우시길 바랍니다. 지팡이 로벨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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