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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 오신 분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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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7-03-22 ㅣ No.11091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7-18)’ 율법 완성은 사랑자체이신 하느님 삶과 가르침으로 모든 이가 계명 하나에도 참된 사랑 실천일 게다. 따라서 몸도 마음도 오직 하느님 사랑과 그분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우리 이웃에 대한 것이었다. 때로는 율법을 폐지하시는 것 같은 예수님 모습도 결코 율법 그 자체를 부정하신 게 아니다. 율법 본질인 사랑보다 세속 규정을 더 강조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신 게다.

 

유다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에 이른다. 이를 거슬러보면 십계명이고 다시 더 줄이면 하느님과 이웃 사랑, 마지막으로는 작은 이 사랑인 최후의 심판 조항이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어 사랑 자체가 되셨기에. 그분 사랑 안으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 녹아들었기에. 법만으로 사는 시대는 지났단다. 이는 몸에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감동이 없는 삶이기에 그렇다. 그러기에 규칙과 법규가 그 많은 조직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율과 투명성이 앞서야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 될 테니까.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삶도 그 의미가 사랑으로만 귀결될 게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그 어떤 지식도, 온몸을 바치는 희생도, 큰 믿음까지도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단다(1코린 13,1 참조). 우리 인생 자체가 텅 빈 껍데기란다. 사랑 실천을 통해 이웃과 함께 다 그분 사랑이 계명의 근본이다. 이게 그분 창조의 본래 의도였고 이게 그분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이었기에. 이것을 망각했기에 모든 게 엉뚱한 방향으로만 나아갔다. ‘글자 그대로만지키려고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본 셈이다.

 

어떤 법이든 지켜야 할 건 사람을 위해존재해야 하리라. 사람을 법에 옭아맨다면그건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이 아니다. 참된 율법은 해방과 자유를, 기쁨과 편안을 제공하리라. 이러한 율법이 사랑의 계명일 게다. 사랑만이 변화를 일으키리라. 소극적인 율법 준수를 적극적인 실천으로 바꾸는 것일 게다. ‘하지 말라.’라는 율법을 하라.’라는 계명으로 만드는 거다. 사실 우리 일상에도 하지 말라라는 강압적인 게 너무너무 많다. 그 많은 금지 사항이 있음에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기에. 바오로 사도는 사랑의 찬가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천사의 언어를 말하고 예언의 능력을 지니며 재산의 전부를 나누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1코린 13장 참조)라고. 그러니 사랑을 가슴에 담아야 할 게다. ‘하지 않는계명이 아니라 하는사랑이 되어야 하리라. 자녀들에게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아니라 하라는 말로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만 부모 사랑이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될 게다.

 

종교 생활의 두 가지 핵심에서 첫 번째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둘째는 하느님의 뜻을 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다 하느님의 뜻이다. 우리는 그분 뜻을 정확히 알아야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게다. 예로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란다. 이것은 하나의 커다란 대원칙이다. 이것을 하느님의 뜻에 가장 맞게끔 생활에 응용해야 하리라.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이에 만족하지를 못해 갖가지 규율을 만들었다. 탈무드에는 안식일에 유다인이 해서는 안 될 39가지의 금지 조항이 있다. 예를 들어, 불붙이기, 빵 굽기, 망치질, 바느질, 공공장소에서의 운반 행위마저도 금지했다. 따라서 안식일에는 돈벌이를 할 수 없기에 가난한 이들은 안식일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나. 그러나 오늘 예수님 말씀은 모든 일에서 하느님 뜻을 찾으란다. 우리는 형식적, 기계적으로 계명을 지키려 하나, 어떤 일을 하든지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역시 바리사이들과 같은 위선과 형식주의에만 빠지게 될 게다.

 

그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 받아들이면 아이들은 금방 환하게 바뀐다. 그 모습은 하느님도 누구나 보시기에 참 좋은 사랑실천일 게다. 이 사랑 실천으로 산 우리가 먼 훗날 주님 앞에 갔을 때, 당신께서도 단지 사랑 질문만을 하시리라. 오직 한 가지, ‘너는 얼마나 사랑하였느냐?’라는 그 물음만을. 사랑만이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내니까. 으뜸은 분명 사랑일 테니까. 율법의 완성은 곧 사랑의 완성이다. 내 존재 자체가 온통 사랑이 되는 것일 게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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