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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세상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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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3-26 ㅣ No.111009

 

하느님께서 세상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

 

- 윤경재 요셉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요한9,3.11.)

 

 

 

가톨릭 역사상 첫 번째 중증 장애인 수녀가 우리나라에 계시다는 신문을 읽었습니다. 작은 예수회 윤석인 예수다윗보나 수녀님이십니다. 수녀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급성 류머티즘을 앓아 극심한 통증을 겪으면서 30세까지 집안에만 박혀 지냈답니다. 그때의 기억을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온몸의 관절에 있는 연골이 삭아 없어지고 나중엔 뼈들이 붙어 버리는 무서운 병이에요.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뼈와 뼈가 갈리고 무서운 통증이 찾아와서 우느냐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팠던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너무 아파서 그 고통의 기억을 무의식에 밀어 넣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망각이란 참 좋은 거지요?”

 

32세 되는 해에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고 난생 처음 피정에 참석했는데 그 때 처음 만난 신부님이 다가오시더니 제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자매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처럼 비참한 사람이 거룩한 성직자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니! 저에게는 가치가 완전히 전복되는 느낌이 드는 말씀이었어요. 그때까지 저에게 장애는 켜켜이 쌓인 업보였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거든요.”

 

피정에서 요한복음 93, 오늘 말씀이 가슴에 꽂혔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왔습니다. 성경 속 이야기는 바로 제 이야기였으니까요. 제가 늘 궁금하게 여겼던 질문과 답이었으니까요. 수백 권의 책을 읽었어도, 숱하게 그림을 그려댔어도 알 수 없었던 제 인생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으니까요.”

 

그 후 1986년 가을, 서울 대교구 박성구 신부님께서 장애인 기도공동체인 작은 예수회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살아도 될까요?” “와도 된다. 내일 와라.” 아무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허락하시는 신부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주변 정리를 마치고 1년 뒤에 공동체에 입회하셨습니다.

 

박 신부님은 혹독하셨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똑같이 대했습니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모든 일정이 똑같았습니다. 게으르다고 혼도 나고, 그림 안 그린다고 깨지고. 박 신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골방에서 울면 뭐하는가, 기왕 울려면 거리에 나와서 울어라.” 윤석인 수녀님은 나와 신부님 관계는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과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 관습법에 따르면 수도자는 신체가 건강해야 합니다. 남에게 봉사하고 치열한 수도 생활을 견디기 위한 조건이죠. 그런데 박성구 신부님이 김수환 추기경님을 4년 동안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드디어 최초로 중증 장애인 수녀가 된 것입니다.

 

몸을 사용하지 않고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 목소리만큼은 장애인이 아니더랍니다. 그래서 전화 한 통을 받아도 공손한 말투와 간결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으로 똑 부러지게 일을 했답니다. 유선 상으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이렇게 중증 장애인인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어떤 수녀님은 침대형 휠체어에 누워서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밝게 사는 수녀를 보고 다윗의 돌멩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다윗이 조약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 그녀의 약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내는 모습이 하느님께서 세상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처럼 보여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분이 제게 기도를 부탁했어요. 너무나도 억울한 시련을 겪고 계셨습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며 제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자신의 탓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분의 마음이 되어 쓰라리고 괴로웠어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열 살 그 어린 나이에 몹쓸 병으로 내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어둠 속에서 통곡해 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저분이 겪고 있는 일에 뭔가 그 자신의 탓이 있겠지 하고 말했을 거라고. 내 탓이 아닌데 이런 몸이 되었고 거추장스러운 거북이 껍질 같은 몸에서 겪어야 했던 참담한 일들을 되새기면, 그 누구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욥의 친구들처럼 가벼이 입을 놀릴 수 없게 됩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한 마디로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하필이면 내가 왜 이런 장애를 갖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책을 통해서는 세상을 살아갈 기본적인 지식과 교양을 닦았고, 그림을 통해서는 혼자서 세상에 당당히 걸어 나오게 되었지만, 이것들이 궁극적인 해답이 되지는 못했지요. 지금은 알아요. 제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고 왜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하느님은 가장 약한 자를 통해서 자신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시기 때문이에요.”

 

왜 내가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그 뜻을 분명히 알게 됐어요. 꾀부리지 않고 내가 가진 바를 실천해 더불어 사는 것이지요. 커다란 축복입니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불행한 사고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사고는 과거의 흔적이지만, 사건은 미래로 열린 출발점입니다. 그녀의 굳고 망가진 신체는 새로운 정신을 잉태하는 자궁이 되었던 것입니다.  ‘정상적인 신체’ 에 대한 애착을 놓아버렸을 때  과거가 ‘구원’이 되어  ‘온전한 영혼’ 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그녀의 몸은 늘 같은 몸이었지만, 신체를 바꾸려 발버둥치는 대신 신체에 다가오는 것들과 달라붙는 것들을 바꾸자 하느님의 축복이 다가온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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