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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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22 -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복음 묵상 - 김태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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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4-22 ㅣ No.111603




2017
04 22 () 가해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복음 묵상



사도행전 4,13-21
마르코복음 16,9-15


김태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는 부활 신앙 >


오늘 마르코 복음은 집필 뒤에 첨가된 결문이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는 부분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 날 세 차례에 걸쳐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을 간략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유다인의 기준으로 보면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에, 그리고 우리의 기준으로는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처음으로 일곱 마귀를 쫓아주었던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두 번째로는 시골로(엠마오(?)) 향해 길을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고, 시골로 가고 있던 두 제자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다른 사람들에게 곧바로 전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기쁨이며, 벅찬 감동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말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두 번의 소식을 듣고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완고한 열 한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셔서 꾸짖으십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의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제자들이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는 못합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사흘 전에 돌아가셨던 자신들의 스승이신 그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는 자리는 생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러 주던 다정한 음성과 그분만의 특징적인 행동들 특히 빵을 쪼개어 나누어주시는 모습 등을 통해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때 이미 제자 세 사람에게 보여 주셨듯이 인간의 기준에 묶여 있다면 가까이 갈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일으켜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받은 사명 곧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완고한 마음, 딱딱하게 굳어 있는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선은 우리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서 화석이 되게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내 안에 예수님께로 향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늘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딱딱하게 굳어있고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풀리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서 이웃들에게도 그 예수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음으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로 이 부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구원을 약속 받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보장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기쁨과 행복을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된다면 비로소 하느님의 생명력은 우리 안에 제자리를 잡고 풍성한 춤을 추게 됩니다.

우리의 완고하고 딱딱한 마음 때문에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향해 열려있는 우리의 마음 곧 우리네 사랑의 자유로운 실천을 통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웃으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실천입니다.


김태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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