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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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선물로 주어진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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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silver0824] 쪽지 캡슐

2017-04-30 ㅣ No.111771

 




2017년 가해 부활 제3주일


<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복음: 루카 24,13-35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영화 패신저스는 사람이 넘쳐나는 지구를 떠나 120년 떨어진 한 별로 이주하는 우주선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5천 명이나 되는 이주자들은 동면 상태로 120년을 여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운석과의 충돌로 90년 먼저 깨어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동면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1년 동안 우주선 안에서의 외로움을 홀로 버텨보지만 결국 자살을 택합니다. 그러던 중 잠들어 있는 사람들 중에 한 여인 때문에 자살을 포기합니다.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자신의 이상형인 그 여자를 깨워냅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위해 깨워냈다는 사실을 숨기지만 나중엔 들통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둘의 사이는 처음엔 좋았다가 나중엔 원수처럼 되어버립니다. 사람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면 필연적으로 상대는 그 사람을 위해 이용당하게 되어있고 좋은 결말을 맺을 수 없습니다. 여자는 이 남자가 자신의 미래를 망쳤다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그 우주선이 고장 나서 모두 다 죽게 생긴 것입니다. 운석과 충돌할 때 심각한 결함이 조금씩 우주선에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둘은 협력하여 그 우주선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그 우주선 안에 앞으로 90년이나 더 잠들어 있어야 하는 모든 승객들을 구해냅니다. 그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여자는 남자를 용서하게 됩니다. 어차피 잠들어 있었다면 그렇게 죽게 되어있었던 인생, 처음엔 남자가 자신을 깨워내어 단 둘 만 평생 우주선 안에서 살아야 하는 외로움 때문에 그를 지독히도 미워했지만, 이젠 그 남자가 자신을 깨워준 덕에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망쳐버렸다고 믿었던 자신의 삶이 이젠 거저 얻은 삶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이 존재의 이유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날 수 있게 해 준 그 죽도록 미웠던 그 남자가 사랑스러워진 것입니다. 그녀는 비록 단 둘이지만 남자와 단 둘이 우주선을 지키며 여생을 보내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이야기를 글로 쓰고 90년 후 이들이 늙어죽고 난 뒤 깨어난 이들이 이들 덕분으로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을 이어주는 것이 의미입니다. 사람은 의미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힘이 들어도 돈이 되고 그것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지 그것마저도 없다면 직장을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의미인 것입니다. 둘이 서로 사랑하기 힘든 원수 같은 사이였을지라도 그 둘이 함께 있었어야 한다는 의미를 찾아내자 둘은 함께 살 수 있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어쩌면 많은 부부들이 아이들이 의미가 되어 그 힘으로 함께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이어주는 힘은 의미인 것입니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살아갈 힘일 잃어버리게 됩니다.

 

정신 분석학자 이무석 교수가 군대에서 만난 자해하는 병사의 이야기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잘 깨닫게 해 줍니다. 그 병사는 수시로 날카로운 것으로 자신의 배를 그었는데 그렇게 피가 솟아나는 것을 보아야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우주공간에 붕 떠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미운 오리새끼의 동화에서도 백조로서 오리 가족으로 태어난 불쌍한 새끼 백조의 슬픔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내가 의사인 것을 알면 지금 당장 자신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가서 환자를 만나야 하는 것을 알겠지만 마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면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나치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알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에 따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를 찾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이들의 특징은 세상 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집착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신의 고통을 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알코올중독자의 90%, 약물중독자의 100%가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하는 통계가 크게 틀리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를린 먼로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살아갈 의미가 없다며 약물중독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이 세상 것들을 삶의 의미로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당분간은 그것을 얻기 위한 기대감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종국에는 그 허무함을 깨닫게 되고 역시 살아갈 이유를 잃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은 인간에게 가장 크고 완벽한 삶의 의미입니다. 바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추구하는 동안에, 그리고 그 목적지에 도달하더라도 결코 허무하지 않은 가장 완전한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제자들에게 가서 당신의 부활을 증언하라고 시키셨고 오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증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온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그분의 부활을 증언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일이 자신을 넘어서 타인에게도 삶의 의미를 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은 성서 상으로는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 것에 집착하고 있는 이들은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삶의 의미를 온전히 찾지 못하여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이 기쁜 이유는 바로 삶의 의미가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 것들의 의미를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눈을 고쳐주시는 방법은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도 성경을 연구하지만 그것에 의해 눈이 뜨여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 5,39-40)

어쩌면 우리도 성경을 읽고 공부는 하지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내지 못하는 이유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해 낸다면 그분이 우리 죄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셔야 함을 알게 되고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성경공부가 시급합니다. 눈이 열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래서 참 삶의 의미가 복음전파에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아내다보면 눈이 열리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던 그분을 만나게 만드는 힘이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세상 것에 맛을 잃어가고 자신을 더 낮추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준비가 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 과정이 갈릴래아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곳에서 그분은 우리를 만나 우리가 가장 찾고 싶어 하는 존재의 이유요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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