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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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며 생명이며 빛이신 주님의 말씀 -말씀예찬-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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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05-06 ㅣ No.111871

 

 

2017.5.6.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사도9,31-42 요한6,60-6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말씀이 답이다

-영이며 생명이며 빛이신 주님의 말씀-

 



오늘 복음은 ‘생명의 빵’에 대한 결론 부분으로, 주님은 당신 말씀을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제자들에게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6,63).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며 빛입니다. 

말씀은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입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구원합니다. 


무지의 빛을 몰아내는 말씀의 빛입니다.

진정 우리를 살게 하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예나 이제나 영원히 말씀을 통해 일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이 빠진 인간은 영혼 없는 인간, 헛개비와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충만한 인생을, 존재감 충만한 삶을 살게 합니다.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라 했습니다. 

영은 무엇이고 육은 무엇입니까? 


영은 하느님 또는 예수님에게서 오는 영을 가리킵니다. 

육은 자기 자신에게만 내맡겨진, 제한된 가능성 안에 갇힌 인간을 뜻합니다. 


‘육’으로서 인간은 혼자 힘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의 깊은 뜻을 깨닫지도 또 믿지도 못합니다. 

반대로 영은 인간을 비추어 주는 생명의 힘으로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고, 말씀을 식별하게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개방케하는 영이요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영입니다. 


엊그제 수도형제의 물음을 잊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답이다.’ 그런 강론 제목을 어떻게 착안했습니까?”


성령의 은총, 성령의 선물입니다. 

후에야 확연히 깨닫게 된 진리입니다. 

말이든 글이든 주님의 영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영이며 육일 때 온전한 인간입니다. 

육의 인간은 반쪽 인간일 뿐입니다. 

말씀만이 영이며 육인 통합적, 전인적 참 사람을 만들어 줍니다. 


모두가 눈이 가려져 빛이신 예수님을 떠나 어둠으로 향할 때 

‘예수님이 답’임을 깨달은 베드로가 열두 제자를 대표하여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6,68ㄴ-69).


참된 믿음이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또 실제로 가져다 주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추종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연상케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바로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찾아갈 곳은 '주님의 집' 성전뿐이요 찾아갈 분은 예수님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베드로입니다. 

어제 바오로의 회심에 이어 오늘은 베드로의 맹활약의 선교활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영이요 생명이신 당신 말씀으로 충만케 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통해 활동하십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를 통한 부활하신 주님의 치유활동이 참 눈부십니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있던 애네아스를 향한 베드로의 명령입니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사도9,34).


이어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 죽은 타비타를 살리십니다. 

베드로는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신 다음 타비타에게 말합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같습니다.


“타비타, 일어나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힘차게 일어나 부활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자포자기하여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두 여자를 구원하심을 목격한 많은 이들은 주님께 돌아섰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화답송 시편의 고백입니다.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시편116,12-13).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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