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인간이면 누구나 굴레처럼 안고 사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독은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고등 동물에게만 존재하기에 인간은 누구나 숙명적으로 고독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한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고독은 어느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홀로 있음’의 자리이리라. 허나 이 고독은 ‘고립’과는 다르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열려 있지만, 고립은 함께 있어도 막혀 있는 거다. 고독은 세상 시끌시끌한 그 한복판에서도 고요하지만, 고립은 고요 속에서도 대단히 혼란스럽다. 고독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의 하느님과 통하는 장소이지만, 고립은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분열과 단절의 장소이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한 자리에서만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또 충만해질 수 있다.

예수님은 한평생 고독하셨다.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 아들로서 당신 사명을 홀로 감당하셔야 했다. 광야에서 그 심한 유혹에도, 오천 명을 먹이시고는 한적한 곳에 물러가실 때도, 그분에게는 이렇게 늘 고독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두 떠나 홀로 십자가 길을 가실 때, 골고타 십자가에서 성부 하느님마저도 침묵하실 때의 그 고독은 절정이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런 고독과 함께해야 한다. 온갖 유혹에 시달릴 때도, 주위에서 얻은 인기의 그 환호에도 고독을 안아야 할 게다. 그래서 삶의 순간순간에 오로지 우리의 보호자이신 성령께 의탁하며 고독에 머물면서 그분 진리를 터득하자. 이것만이 유한한 우리가 무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리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그분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 참조) 예수님은 제자들이 언젠가는 당신에 대하여 증언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증언하는가? 그 ‘증언의 삶’을 위해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아들일 각오를 다질까? 순교의 모습은 어쩜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억울하다. 철저한 고통이며 혼자 겪는 고독의 싸움일 게다. 그걸 바란다고 순교당하는 것도 아니다. 완벽한 은총의 개입만이 순교의 본모습이리라.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요한 16,2) 제자들은 실감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감당하기가 힘들 박해를 받을 것임을 예견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정면 돌파를 명하신다. 모질 정도로 절박한 예수님은 그들이 때가 되면 당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리라. ‘기억하는 힘’, 그것은 때로 시련을 이길 용기를 준다. 지금 내가 겪는 이게 과거 누군가 이미 겪었고, 그걸 이겨 낸 오늘의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용기를 얻기에. 우리는 미래를 잘 알 수 없지만, 과거를 기억하여 현재를 받아들일 때 미래의 희망을 지닐게다. 그래서 기억하면서 그 시련을 이겨보자.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박해를 받으면 당신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할 것을 바라셨다. 곧, 보호자이신 진리의 영께서 당혹해하는 제자들 곁에서 당신을 증언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억’했기에 박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도 세례 때, 피정이나 교육 등 행복했던 신앙 체험의 기쁨을 기억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 낼 용기를 얻자. 힘들 때마다 힘이 되는 성경 구절을 외우고 기억하는 습관을 지니자. 그러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위로의 은총과 용기의 지혜를 내려 주시리라.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세상이 각박하고 험하지만, 가끔 좋은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듣는다. 세상의 죄악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들 누군가가 그 죄를 청산하는 대가를 치른다. 이렇게 선이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있기 때문일 게다. 이것만이 유한한 우리가 ‘무한하신 주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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