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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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신부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탁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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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다 [pharm8891] 쪽지 캡슐

2017-05-24 ㅣ No.112207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탁월성 (2011, 3, 29)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아주 높은 단계의 영성입니다.
누구든 이 영성을 받아들이고 살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학생들이 머리를 처박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류 대학에
들어가려 합니까?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수석으로 입학했거나
꼴등으로 입학했거나 그 대학의 다 똑같은 학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꼴등으로 입학했던 학생이라도 훌륭한 전통과 교수진 등
그 대학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냥 성실히 학교생활을 잘 해 나가면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쉽게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수많은 성인들,
그분들이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여러 영성들,
그분들이 부분적으로 언급하셨던 말씀 중에서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영성)"은
많은 성인들의 공통적인 언급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훌륭한 모범이 되시는
"아브라함", "성모님",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사셨던 삶이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이셨습니다.


훌륭한 선생을 만나는 것이 모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브라함, 성모님, 예수님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이
그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하느님을 믿고 따랐던 모든 훌륭한 성인들이
모두 다 그분들의 모범을 따르려 했던 사실만 보아도
우리가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일류학교에 입학하면 인생의 목표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처럼,
탁월한 영성(삶)을 살면 인간의 삶의 목표인 하느님 나라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체의 운동도 크게 두 종류의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답니다.
추체로계(錐體路系)의 운동과 추체외로계(錐體外路系)의 운동입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제가 이 운동을 쉽게 설명 드린다면
추체로계의 운동은 우리가 보통 건강을 위하여 하는 의식적인 운동을
말하며, 추체외로계의 운동은 우리가 의식을 하지 않아도 우리의 몸이
저절로 알아서 하는 무의식적인 운동을 말합니다.


무의식적인 운동은, 우리가 피곤하면 저절로 하품이 나오고 기지개를
피게 되며 먼지가 들어오면 눈을 깜박거리고 숨 쉬고 소화시키고
신진대사를 하는 우리 몸의 모든 무의식적 운동을 말합니다.


저는 과거에 "활원운동"을 해 보았기에 추체외로계의 운동을 더욱 쉽게
이해합니다. 몸이 아프면 몸이 저절로 치유하는 능력, "자연 치유력"이
발동하게 됩니다.


이 자연 치유력을 더 활성화시키는 운동이 활원운동이며,
저는 이 활원운동을 통하여 교통사고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고 전보다 더욱 건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활원운동을 하게 되면 자연 치유력이 저절로 몸을 돌아다니며
몸의 안 좋은 부분을 다 치유시켜 줍니다.


제가 이 운동을 체험하고 얼마나 하느님께 눈물의 감사의 기도를 올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를 잘 못합니다.
이해를 잘 못한다고 그 운동을 부정해서야 되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적으로 증명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은 것이며, 특히 신앙적인 차원의 문제는 영적으로 낮은 차원의 사람이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잘 이해 못한다고 그 영성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탁월성은 내맡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제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원래 하느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좋아하던 신부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을 살다보니
이제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것보다 하느님의 것들이 더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관계된 것이면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지금의 이러한 처지까지 올라오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노력한다 해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하느님께 부족함과 죄마저도 다 내맡겨 드렸더니
하느님께서 오늘의 저의 모습까지 다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끌려 나왔을 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삶(영성)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왜 이렇게 내맡김의 영성을 부르짖고 전합니까?
저의 무엇을 위해서?


저에게는 이미 저를 위한 삶은 없어졌습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한 삶,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 드리는
도구로서의 삶이 제 인생의 큰 기쁨이요, 제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를 자랑하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로부터 자랑거리가 되는 것을 전혀 원치 않습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저의 이 고백을 믿으시고 저처럼 부디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너무 쉬우면서도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영적 방황을 끝내주는 영성"입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면 이 세상 출세가 거의 보장되듯이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받아들이면 참으로 하느님 나라가 완벽히
보장됩니다. 죽은 다음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보장해 줍니다.


하덧사 여러분!
부디 어서 빨리 "거룩한 내맡김의 삶(영성)"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http://cafe.daum.net/likeamaria/

 

(소리로 듣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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