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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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7 -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권동성 폰시아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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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6-27 ㅣ No.112873




2017
06 27 () 가해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창세기 13,2.5-18
마태오복음 7,6.12-14


권동성 폰시아노 신부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이 황금과 같이 귀하고 중요하다고 해서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황금률’은 그리스도교 윤리 도덕의 기본이며 대원칙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다른 종교에도 황금률과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토비트가 아들 도비아에게 가르치는 말 중에 ‘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아라!’하는 말이 있고, 공자의 논어에도 ‘자기가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마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없거나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에게는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황금률은 사랑의 계명과 연결됩니다. 황금률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고,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가장 근본적인 계명으로 ‘하느님을 온 마음과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황금률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규범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웃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노력하고, 그대로 해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는 말씀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원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할까요? 때때로 우리는 친절을 베풀었는데, 결과는 오히려 안 좋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어느 마을의 빵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빵집에는 마음 착하고 평소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주인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이 빵집에 초라한 행색을 한 젊은 청년이 와서 식빵을 사갔습니다. 그 청년은 매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가장 저렴하고 맛없는 식빵을 사갔습니다. 마음 고운 아주머니는 초라한 행색의 청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참 먹고 일할 나이에 저런 식빵으로 어쩌나? 그렇다고 그 청년에게 빵을 덤으로 주자니, 오히려 청년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청년을 도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 청년이 사가는 식빵에 청년 몰래 버터를 잔뜩 넣기로 한 것입니다. 겉모양은 똑같으니 청년이 식빵을 사가면서도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서 그 청년에게 줄 식빵을 만들었습니다. 맛있는 버터를 잔뜩 넣어서 말입니다. 이윽고 초라한 행색을 한 청년이 식빵을 사러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모른 체하면서 그 청년에게 특별히 만든 식빵을 건넸습니다. 청년이 돌아가고 빵집 아주머니는 흐뭇한 엄마 미소를 지었습니다. 청년이 식빵을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해할까? 맛있게 먹고 힘내서 빨리 좋은 직장을 구했으면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고 그 청년이 다시 빵 가게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울상이 되어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청년이 다짜고짜 하는 말이 ‘대체 왜 그러셨어요?’라고 따지는 것입니다. 아니 기껏 친절을 베풀었더니, 이거 너무하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난 아주머니는 자신의 친절이 오히려 그 청년의 인생을 망치고 말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고, 마침 미술대전을 앞두고 몇 달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그렸고, 이제 완성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사갔던 식빵은 먹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목탄을 지울 때 사용하는 것이었지요. 식빵 안에 버터가 든 것을 모르고 그림을 고치다가 그림을 망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랑은 때로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모두가 원하고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베풀고 요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이해가 없는 사랑은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권동성 폰시아노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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