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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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용서의 결실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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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6-27 ㅣ No.112880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용서의 결실인 평화!"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비가 올듯 하면서도 가

뭄이 계속되니까

기다리던 마음도 쩍쩍

갈라지는 듯합니다.ㅠㅠ

형제 자매님,

요즘은 강론을 보내드리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지난 금요일

예수성심대축일이

사제성화의 날이라고

사제관 식당에서

회를 준비했는데...

회를 먹고 심한

식중독을 앓았습니다.

몇 번이나 토하고 설사하고

위를 완전히 쥐어짜서

물 한방울 남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다 내보냈습니다.

병원에 다녀와서

겨우 안정이 되어서

차츰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도저히

강론을 보내드릴

생각을 못했었는데

오늘 아침엔

상태가 좀 더 나아져서

이렇게 늦게나마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더운 여름 식중독

정말 조심하세요!!

형제 자매님,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교회가 오늘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장벽을 넘어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 은총의 결실인 평화의

실현을 하루 빨리

앞당기자는 것입니다.

올해는 특별하게 날짜가

625일이라서 더 의미 있는

 날로 다가옵니다.

지금 우리 민족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한 겨레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미워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외국인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Korea!” 라고

대답하면 꼭 다시 묻습니다

“North? or South?”라고!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분단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대립의

상태를 끝내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서,

외국에서 단 하나의

 “Korea”로 불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의 정착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평화가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평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누릴 수

 있게 된 평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데

힘을 다 낭비했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서로의

상처와 깊은 불신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서로 피를

 나눈 형제이면서도

세상의 그 어떤 나라나

민족보다 미워하도록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북한사람을 그리면 모두

빨갛게 색칠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빨간 피부를 가졌고

머리에 뿔이 달린 이상한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북한이 핵무장을

서두르고 있어서 어느 때 보다

긴장이 고조된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옛날에 비하면 많이

바뀌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작은 일에서부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어제 밤에 몸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TV를 틀었더니

마침 무주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북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한 장면이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큰 일치에로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우리 가까이에서부터

착실하게 출발을 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본당을

생각해본다면,

본당 모든 신자들의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우리 가정, 우리 반,

우리 구역 그리고

우리 본당,

이렇게 점점 큰 공동체로

나아가면서 일치를 이룬다면

본당 전 신자의 일치도

충분히 이룰 수가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친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참으로

 예수님의 이름 곧 사랑으로

한 마음이 된다면

당신께서 함께 계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참된 평화를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공동체가 참으로

평화를 누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참된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잘못을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에는 몇 번이면

족하다는 선이 없고 끝없이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속으로,

에이 신부님, 한 번

용서하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끝없이 용서를

할 수가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제를 통해서

당신의 용서를 베푸십니다.

형제 자매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받았던

고백성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 자매님이 죄를 고백했을 때,

사제가 당신은 용서해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하느님은 우리를 그렇게

무한히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이런 큰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잘못을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똑 같은 일을 두고

내 탓이오!”하면

웃음이 흘러넘치게 되지만,

네 탓이오!” 라고

하면 싸움이 일어납니다.

두 가정이 있었습니다.

똑같이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뛰다가 방바닥에 있던

물그릇을 쏟았습니다.

안드레아의 집에서는,

먼저 할머니께서

 아가 괜찮나?

내가 아까 방을 닦으면서

치운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렸구나.”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아닙니다. 어머님,

제가 먼저 봤는데,

요놈의 신문을 다 보고

치운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엄마는 제가 설거지

시작하기 전에 치웠으면

되는데 제 탓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당사자인

안드레아가

제가 똑바로 안 보고

뛰어서 그랬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라고

머리를 걸쩍거렸습니다.

이런 안드레아 가족들은

모두가 늘

웃을 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집에서는

신문을 보던 아버지가

바로 신문을 말아들고는

요셉의 머리를 세게 때리면서

너는 눈도 없나?”

라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엄마가 아버지께

! 당신은 손모가지도 없나?

 쫌 치우면 안 되나?”

라고 받아쳤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또 지랄들 한다.”라고

혀를 찹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요셉이

우리 집은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네!”라고

함치면서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그런 요셉의 집에서는

싸움이 거치지를 않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도 가정에서

서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감싸준다면

우리 가정에

늘 평화가 넘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활 가운데서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가정과 공동체는

평화를 누리게 되고,

우리는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파할 수 있고,

나아가서

우리 교회에 더 나아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까지

기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미사를 통해서 우리가

더 이상 말로써 사랑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용서하는 사랑,

가족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작은 일 하나하나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평화를 건설하는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하면서

또 그런 우리의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효성 캠퍼스에서

-박영봉안드레아신부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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