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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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5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복음 묵상 - 이장환 마르티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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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7-25 ㅣ No.113437




2017
07 25 () 가해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복음 묵상


코린토 2 4,7-15
마태오복음 20,20-28


이장환 마르티노 신부님


<
예수님의 쓴잔을 제일 먼저 마신 야고보 사도 >


사도 야고보는 사도 요한과 함께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갈릴레아의 어부였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와 배를 뒤에 남겨놓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그 후 12사도 명단에서 베드로에 이어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 인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야고보를 따로 불러 그 일을 보여 주시기도 하고 특별한 말씀을 들려주시기도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시중들던 열성적인 부녀자들 가운데 하나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밑에 있던 거룩한 부인들 중의 한 사람이며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 관계라고 믿어져 왔기에 사도 야고보와 예수님과는 외사촌 형제 관계에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관계 때문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대한 기대도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유대인들이 하느님께 요청을 드릴 때 취하는 태도인 엎드려 절을 하면서 예수님께 '영광의 나라에서 저희들을 하나는 당신 오른편에 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합니다. 요즈음 이야기로 하면 측근의 지위를 이용한 고위직 인사 청탁비리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청탁의 시점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세 번씩이나 하고 난 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며칠 뒤에 닥칠 수난의 비극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시며 이 고난의 순간은 부활의 영광을 받기 위해서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난 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수난의 비통한 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영광의 때가 온다는 말씀에만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열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이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는 것은 그 형제가 옳지 못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가깝지 못해서 그런 청탁을 드리지 못한 자신들을 향한 것이며 한 발 늦은 자신들에 대한 화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 형제만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 뿐이지 모든 제자들의 마음은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줄곧 따라다니면서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계속 들었건만 세속적인 생각에 여전히 잠겨져 있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불러 놓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 통치자들이 하는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스스로를 높이지 말고 낮추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늘 높고 낮음을 따져 왔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면 내 지위가 더 높은지 낮은지를 따졌고 내 학벌이 더 높은지 낮은지를 따졌습니다. 그래서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했고 종이 되기보다는 주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이렇게 높고 낮음을 따지는 데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높고 낮음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서로 시기하고 서로 모함하고 서로 짓밟는 미움과 경쟁의 세계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세상의 지배원리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높음과 낮음의 차이에서 오는 힘입니다. 힘센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더 큰 힘을 가지려 하고 힘없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힘겨워합니다. 세상의 지배원리가 통용되는 곳에는 힘있는 자의 우월감과 힘없는 자의 패배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힘이 아니라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힘있는 자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힘없는 자는 자신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높은 사람이 섬기는 세상이고 종이 으뜸인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 즉 힘이 지배하는 사회는 억압과 복종이 있을 뿐이지만 사랑이 지배하는 사회는 봉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지상의 하느님 나라 즉 교회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랑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군림과 통치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봉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수난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영광이란 수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주어진 영광이 있다면, 우리가 받을 보상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고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신 수난의 길을 뒤따른 데 따른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그 분의 영광을 바라보거나 그 분의 영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모범을 보이셨던 섬김의 길을 뒤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 사도도 세속적인 가치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청탁했지만 결국 예수님과 같은 쓴잔을 마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42년 헤로데 아그리빠의 손에 순교하심으로써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그 뒤를 따라간 제자가 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축일을 지내는 오늘 예수님의 길을 가장 모범적으로 따라갔던 사도 야고보의 삶을 본받아 우리도 열심히 예수님의 뒤를 따르도록 노력합시다.


이장환 마르티노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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