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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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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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7-27 ㅣ No.113473

 

2017년 7월 27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

19,1-2.9-11.16-20ㄴ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바로 그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2 그들은 르피딤을 떠나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곳 산 앞에 진을 쳤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다가가겠다. 그

러면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 너를 언제까지나

믿게 될 것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주님께 그대로 전해 드리자,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에게 가거라.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11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16 셋째 날 아침,

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영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17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18 그때 시나이 산은

온통 연기가 자욱하였다.

주님께서 불 속에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며 산 전체가

심하게 뒤흔들렸다.
19 뿔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말씀을 아뢰자,

하느님께서 우렛소리로

 대답하셨다.
20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모세를

그 산봉우리로 부르셨다.

복음 마태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언젠가 아주 어린 아이가

 젓가락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어린데도 불구하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젓가락질을 하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저는 저만한 나이 때

그렇게 젓가락질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젓가락을

주먹 쥐듯이 잡았습니다.

그렇게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밥과 반찬을

집을 수는 있었지요.

하지만 이 상태로는 제 위의

형 누나들을 따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형제가 많은 우리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서는 젓가락질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뀐 모습이

젓가락질을 엑스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보다 정확도와 속도가

붙었지만 이 역시 형제들을

따라잡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서

 지금의 정상적인 젓가락질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젓가락질을

 할 때에 편했을까요?

아닙니다. 불편했습니다.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을

하면서 젓가락질을 했습니다.

이쪽 손가락과 이쪽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어느 부분에

힘을 주고, 음식을 많이 잡을

때에는 어떻게 하고.... 등등

계속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계속해서 생각을 하면서

젓가락질을 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역시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젓가락질을 한 번에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계속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처럼,

주님 앞에 한 번에 제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계속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과정을

건너뛰려고 합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지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해주시지요.

 처음부터 주님 앞에 제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러한 단계가

필요함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모든 것을 다 얻으려고만

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실 기도와 묵상 등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

점점 주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할 뿐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요?

 당신께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비유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좀 더 주님을

알 수 있도록 또 함께 할 수 있도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석원)

이런 젖가락이 있어서

쉽게 배우더군요.

"홈런"

요즘에 프로야구가 한창입니다.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순위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더욱 더

흥미진진하게 보게 됩니다.

이 프로야구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터질 듯 말 듯 한

투수전도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인 홈런이

 야구의 재미를 더하는 것 같습니다.

이 홈런으로 거의 지게 된 경기도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글쎄 홈런은 직구보다는

변화구에서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지요.

공이 휘어지는

 변화구가 더 홈런을

치기가 힘들 것 같지만,

 일단 치기만 하면 회전이

 많이 담겨 있어서 큰 타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회전 많은 변화구처럼 도저히

견디어 내기 힘들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변화구가 홈런 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것처럼,

내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이

나를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힘들고 어려운

변화구가 많이

날아오고 있습니까?

축하합니다.

당신은 홈런 칠 수 있는

 기회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얻은 것입니다.

동창신부와 함께 야구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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