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 (화)
(백)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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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렬신부(초대(招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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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8-17 ㅣ No.113975

 

"초대(招待)"

†찬미예수님

요즘은 배티성지의

비수기입니다.

예약자가 아닌 개인 순례자가

오시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처음오신 분께는 아쉽지만,

다음 성수기에 오시어

배티성지의 영성과

은사에 대해 들으시고,

오늘은 리플렛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전에 저와 임의롭게

지내던 신자 한 분이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신부님의 사제 생활하시면서

교우들에게 서운함을

느껴보신 적이 없습니까?”

그래서 “서운한 것은 없다.

물론 어느 본당가든지 속 썩이는

신자야 있지만, 그것 말고 정말로

내가 미워할 수밖에 없을 만큼의

 상처를 준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참 럭키한 사제다.”고 했어요.

그렇게 헤어지고 난 다음

그 양반이 나에게 왜 그것을

물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 분과 있을 때는

 서운한 것이 없었는데,

그 분이 떠나고 나니 자꾸

서운한 것이 생각이 났어요.

그러면서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는데, 일번이 뭔지

짐작 안가세요? 안가시죠?

일번이 신자들이 집에

초대해서 밥을

안 먹인 거예요.

물론 구역 반모임

그런 것 말고요.

“신부님,

된장찌개 끓였으니

오시어 식사 하시죠”

이렇게 소탈하게

초대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신자들이

나를 싫어하나보다

생각했었는데,

 어려워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하다못해 여기 오기 전

감곡서 정말 고생하며 살았는데,

자기 집에 초대하는 집이 없었어요.

그래서 떠나기 전 총회장에게

이런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하니,

“신부님이 이해하셔야합니다.

감곡은 모두 노인들뿐이고,

신부님은 외국도

많이 다니시고 하니,

이런 시골음식은 아예

 안 드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 모시고 싶어도

김치찌개 하나로

 어떻게 모십니까?”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거든요.

여기 배티와서도

봉사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식복사 휴가니,

제가 차가지고

갈테니 저희 집에

오시어 밥 한 끼 드세요.”

하는 봉사자 없어요.

밖에 나가서 먹자는

사람은 많은데,

나는 외식 싫거든요.

처음에는 이런 것이

상처가 되었었어요.

“신부님, 생신이 다가오는데

저희 집에서 식사하지죠?”

하면 나는 정말

행복했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소문이

이상하게 났었어요.

내가 젊었을 때 장난기가

발동을 해서 가정방문을 가면

옷장을 열어보았어요.

그러면 신부 온다고 하니

대충해서 옷장에 구겨

넣었던 것이

와르르 쏟아졌어요.

그 전과가 다른 본당을 가도

 쫓아다니는 거예요.

“신부님은 가정방문하면

찬장이니 옷장부터 뒤진다.”

사실은 그것이 아닌데..

사실 여러분도 신부님 초대

안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막상

대접하려면 어렵잖아요?

그래서 포기를 하게 되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복음에 보면 주님이

우리를 당신 집에 초대하십니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사제가 가정방문을 다녀보면

문을 열면 공기가 달라요.

어느 집 문을 열면 따뜻한

공기가 나오고,

어느 집은 문을 열기도 전에

찬바람이 쌩 나와요.

집이 좋고 안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달동네 쓰러져가는 집이라도

편한 집이 있어요.

그런 집에서는 라면하나

 먹어도 다리 쭉 뻗고 편히

오래 머물고 싶어요.

사제가 오래 편히 머물고

싶다는 말은 하느님의 축복도

오래 머문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으리으리한 집인데도

들어가는 순간부터 불편해요.

그리고 집이 추워요.

내가 볼 때 그 자매는 복에 겨운

여자인데 나오는 말마다,

“미치겠어요.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지겨워요.”

감사할 줄 모르는 집에는

사제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요.

 빨리 성수뿌리고 나오고 싶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겠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내가

오늘 너를 치유시켜주겠다

하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면 여러분이 배티에

오기까지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성지는 말 그대로

거룩한 땅으로 현재 거룩하게

살고 있어야만 발 디딜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발 디디셨잖아요?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거룩한 분인가?

아닙니다. 사제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거룩한 땅을

 밟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이 초대하지 않으면

올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 순간부터라도

마음을 바꾸세요.

“아! 주님이

나를 오늘 부르신 거구나!

나를 초대하신거구나!

감히 이 거룩한 땅에 발도

 디딜 자격도 없는 나지만

오늘 나를 부활시키시려고

초대하셨구나!”

 사람들은 가려가면서

초대를 합니다.

어려운 사람, 싫은 사람,

불편한 사람 절대 내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 명단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초대는 세속의

초대와 전혀 그 성격이 다릅니다.

모여서, 술이나 춤이나 근사한

음식이 있는 그런 초대가 아닙니다.

괴로워하는 자와 같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자와 같이 울어주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초대입니다.

한마디로 평화의 초대입니다.

 오늘 성지에 와서 여러분은

그런 대접을

분명 받으실 거예요.

그렇게 준비 다 해놓고,

주님은 오늘 여러분을

부르신 거예요.

그런데 이 안에서도

눈을 맑게 하고,

 귀를 열고, 마음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엠마오로가는 두 제자들이

 세 시간동안이나 예수님과

있으면서도

예수님인줄 몰랐듯이,

하루 종일

성지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옆에서

계신 것 못 볼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초대는

세상의 초대와는 다릅니다.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를 초대할 때

손익계산을 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 대접하고 몇 갑절 얻어

보고자 하는 이기심의 초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갖은 자보다는

 가난한 자를, 권력자보다는

약자를 초대하십니다.

세상 사람은 보통 내게

잘해주는 사람,

뭔가 빚이 있는 사람,

마음이 맞는 사람, 친

척이나 친지 등 잘 아는

가까운 자를 초대하지만,

주님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초대하시고

당신의 도우심을

애타게 기다리고,

당신을 지극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초대되어 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곳에 온 후 ‘나는

 배티성지를 우리 천주교

 신자들만의 성지나

청주교구만의 성지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라고 늘 말했습니다.

신자든 아니든, 불자든

개신교신자든 누구든 들러서

 힐링되어 나가는 곳이지요.

 정말 참 많은 외인들이

지나가다 성지에 들릅니다.

차 한 잔 마시고,

둘러보고 갑니다.

요즘 같은 때는 신자보다

신자아닌 분들이

더 많이들 와요.

어제도 어떤 분과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고개 넘어 안성에

사는 불자래요.

그런데 일주일에 3-4번은

성지에 와서 저 밑의

 커피숍을 들린대요.

문을 다 닫아도 상관없대요.

혼자 그냥 앉아있다 갔었는데,
용기를 내어 올라와 보니 뭔가

하나씩 계속 나오더래요.

자기는 저 밑에 보이는 것이

다 인줄 알았대요.

“신부님, 너무 좋습니다.”

결국 어제 맨 뒷자리에서

 미사까지 하고 갔어요.

 이렇게 주님의 초대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그 주님의 초대에

 응할 자격은 무엇인가?

우리가 누구에게 초대받아

갈 때는 하다못해

뭔가 준비해가든,

옷을 제대로 입고 가잖아요?

주님의 초대에 응할 자격은

딱 하나, 어린이와 같은

손만 있으면 됩니다.

겸손과 온유한 마음만

으면 된다고 했어요.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들에게는

숨기시고 초대를 했지만,

그들은 이미 슬기롭다고

생각을 했기에

초대를 거절합니다.

다시 말해 지적인 교만에

 빠져있는 자는 절대로

주님의 초대에

응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율법학자요

바리새이파였습니다.

그렇게 초대했건만 그들은

예수님에게 적개심만

가질 뿐 있었죠.

 어떤 성인이 “하느님의

말씀의 정착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살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지적인 교만에

빠져있는 자라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마틴 루터가

누구인지아시지요?

그 당시 대 성서학자로

 아우구스 수도회의

수도자, 사제였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신학자

마틴 루터는

교만했기 때문에

분열을 일으킨 겁니다.

복음을 영접해

들이는 것도 겸손입니다.

솔로몬만큼이나 지혜롭다

해도 그의 순진성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다면

분명 신앙인이 아닐 겁니다.

겸손은 모든 미덕의

어머니이고,

교만은 모든 악덕의

뿌리라는 것을 우리는

 늘 명심해야 합니다.

일류 첫 조상의 교만은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고,

천사의 교만은 악마로

변화되어 영원의 불속에서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만할 때

늘 회개해야합니다.

교만이 커질수록 우리는

악마의 모습과 비슷하게

닮아갑니다.

주님의 집에

초대되기는커녕

지옥불의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멍에는

가볍고, 짐도

가벼울 것이라

이야기하십니다.

나이가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이 소아마비입니다.

그 옛날에는 학교를 가려면

 십리를 걸어가야 하고,

체구도 별로 차이가 안 났어요.

그런데 그 형은 그 동생을 업고

6년 동안 학교에 갑니다.

동네사람들이

보기가 딱해서 물었어요.

“너 힘들지 않니?”

그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은 딱 한마디,

“내가 사랑하는 동생인데요.

안 힘들어요.”

사랑으로 지고 사랑으로

운반하는 짐은 언제나

가벼울 겁니다.

우리는 각자 각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 십자가 없이

 편하게 사는 것 같지만,

이 세상에 십자가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제들은 없겠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으로 지면

오늘 주님께서는 내가

가벼이 할 것이다 하십니다.

오늘 하늘과 가까운,

순교자들의 피와

최양업신부님의 땀과 신앙이

어려 있는 배티성지에

여러분들이 선택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불러주셨다고

하는 것 명심하면서

배티에서 주는 치유의 은사,

구마의 은사, 믿음의 은사와

순교의 은사를 간절히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2017년 연중 제14주일(07/09)

-배티성지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배티성지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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