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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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5 -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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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9-25 ㅣ No.114974




2017
09 25 () 가해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에즈라기 1,1-6
루카복음 8,16-18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
등불 >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게 마련이다.”

루카는 8, 10절에서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말로 제자들과 다른 이들과의 차이점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해야 한다. 이런 제자들의 의무를 생각하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하도록 하자.

우선 등불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등불이란 어둠에서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마치 밤에 방향을 잃어버린 배들의 길을 안내해주는 등대처럼 등불은 어둠 속에 사는 이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빛이다. 따라서 등불은 등불 자체로 어둠을 비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등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빛은 예수님이시다. 요한 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빛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이 세상에 왔다."(요한 1,4.9)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루카도 즈가리야의 입을 통해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 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라고 노래했고 시므온을 통해서도 "계시의 빛"(루카 2,32)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제자들이란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자기 안에 받아들여 빛이신 그 예수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바로 빛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곳이다. 만일 교회가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있다면 다른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교회의 특성은 그리고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에서 빛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며, 그 예수님의 빛을 비추어 주기 위함이다. 교회의 이런 사명은 이 세상 극변에까지 그리고 이 세상 마칠 때까지 해야 할 의무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누가 이 위대한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가? 물론 복음선포의 사명은 성직자 수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사명이고 의무이다. 그래서 미사가 끝날 때마다 사제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말하면서 파견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위대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가?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코린 9,16)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1코린 9,23)라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등불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등불을 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등잔에 등불을 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기름을 부어야 한다. 그리고 불을 붙여야 한다. 등잔에 기름을 넣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18)고 말씀하신 것이다. 기름이 없으면 탈 수 없듯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등불을 켤 수 없다. 나 자신이 빛은 아니다. 빛은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빛이신 예수님은 오늘 날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따라서 빛이신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일 때 내 안에 작은 빛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등불을 켠다."는 것은 "말씀을 내 안에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말씀의 뜻을 알아듣고 그 말씀에 따라 생활할 것이며 그러면 자연히 말씀의 빛이 발산하게 될 것이다. 신자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과는 전혀 관계없는 생활을 한다면 꺼진 등잔일 뿐 결코 빛을 비추는 등불은 되지 못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정치, 경제, 법조계, 의료계, 학교, 언론계 등에 있지만 그들이 신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인으로서의 빛을 비추지 못하니까 빛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신자들이 성직자 수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각각 자기 자리에서 등경 위에 켜 놓은 등불처럼 빛을 비춘다면 우리 사회는 이렇게 어두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등불을 켜면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지 않는다. 아니 둘 수가 없다. 그러나 꺼져있는 등잔은 한쪽 구석으로 쳐 박아 두거나 아니면 마치 골동품처럼 장식용으로 쓰여질 뿐이다. 등잔은 등불을 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등불로 사용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등불이 아니라 꺼진 등잔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 특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이 덮어져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속성상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등불은 그 자체로 빛을 비추게 되어있다. 등불을 켰으면 그 자체로 이미 주위를 비추고 있는 것이지 주위를 비추기 위해 또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는 본질상 세상에 빛을 비추는 등불인 것이다. 빛이신 말씀이 살아 있지 않은 교회,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활화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꺼진 등잔일 뿐 등불은 되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말씀을 듣고 생활하는가에 따라 우리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리스도 신자는 숨겨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나게 해야 하고 감추어진 것은 훤히 나타나게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생활화 함으로써 서서히 숨겨진 것이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이 알려져 훤히 비추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걸음이며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생활해야 하는 이유이다.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아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내 안에서 숨겨져 있고 감추어 있을 것이다. 이런 신앙생활은 나 혼자에게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결코 빛으로 나오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헤매이며 살도록 놔두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신앙 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느님의 나라를 알 수 있는 많은 특권을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를 사용하지 않을 때 결국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고" 이 은혜를 잘 사용하는 이는 즉 하느님의 말씀을 알려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생활하는 이는 "가진 자는 더 받을 것이다."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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