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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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강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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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빈 [ssk5762] 쪽지 캡슐

2017-10-16 ㅣ No.115488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의 강론에서(Hom. 2 de laudibus sancti Pauli: PG 50,480-484)
나는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흡사 자신이 하늘 나라에 있는 것처럼 느꼈고, 상처와 채찍을 받을 때 상을 받는 이들보다 더 큰 기쁨을 지녔습니다. 그는 상급에 못지 않게 고통을 사랑했습니다. 고통은 상급을 얻게 해주므로, 그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에게는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상급이고 육신 안에 사는 것은 투쟁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상급을 뒤로 미루고 투쟁하는 것을 더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오로에게 있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는 것은 큰 투쟁이고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투쟁보다 큰 투쟁이고 다른 모든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상급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상급보다 투쟁과 고통을 택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투쟁과 고통을 겪는 것을 즐거운 일로 여겼다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이 점에서 나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우리에게 슬픔의 원인인 것은 그에게 가장 큰 즐거움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무엇 때문에 위험과 환난을 상기하는 것입니까? 바오로는 어떤 때 큰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고린토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바오로 사도의 놀라운 덕행의 모범을 경탄하는 것으로만 만족치 마십시오. 여러분은 또 그 모범을 본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의 승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바오로와 같은 공로를 지닌 사람이 그와 같은 상급을 얻으리라고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도 바오로의 다음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바오로가 우리 모두를 자기 자신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초대한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같은 영광의 월계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그 선물들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오로가 지닌 덕행들의 위대함과 탁월함을 그리고 그렇게도 큰 영광을 얻게 한 그의 열성과 견고성만을 생각지 말고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똑같은 그 인간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려운 것은 쉽고 가벼운 것으로 보일 것이고, 잠시 동안 여기에서 노력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총으로 부패함이 없는 불사 불멸의 월계관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과 권세가 있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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