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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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렬신부(현대의 영적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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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0-17 ㅣ No.115501

 

"현대의 영적박해"

+ 찬미예수님!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목요일에는 청주교구,

그것도 영광스럽게

우리 서운동 성당에

 전 세계를 순례하는

파티마 성모님이 하룻밤을

머무르고 가셨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나오시어

성모님께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마 철야를 여건 때문에

못 나온 분도 있고,

또 나갈까 망설이다

못 나온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살아가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영적충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때가

덜 묻은 사람은 그런 충동이

올 때마다 많이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해요.

이것저것 따지거나 묻지 않고

마음속의 성령이 이끄는

영적충동이 있을 때는

그냥 합니다.

그런데 복잡한 사람들은

수십 번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강한 부르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걸로 끝납니다.

심리적으로 한 번 일어났던

좋은 충동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불 지피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앞으로 마음속에

 ‘꼭 가봐야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면,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지지 마시고

그냥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파티마

순례성모님 상이 또 올지,

어쩌면 마지막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보신 분은 행복하여라! 아멘.

 순교의 반대말이 뭡니까?

순교의 반대말은

교순도 아니고 배교도 아니고

순교의 반대말은 박해에요.

박해가 뭐냐?

뭘 박해라고 그래요?

아주 간단하게 군더더기

 떼버리고 박해의 정의는

‘하느님을

못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못 만나게

하는 것이 박해에요.

리 박해받으면

무섭고 두렵죠.

‘십자가 밟아라.

하느님 안 버리면 목 자르겠다.’

어느 누구라도 그 앞에서

두려움을 안 느낄 수 없어요.

하지만 십자가만 밟고

나가면 내 목숨은 사는데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는

끊어져버려요.

박해를 영적인 표현으로 하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끊어놓으려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박해는 계속 될 겁니다.

 초대교회 때 로마의

신자들을 박해했던

이유가 뭔지 압니까?

 너무너무 웃겨요.

교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죽였어요.

첫째, 천주교 신자들은

식인종이라고 그랬어요.

뭐 가지고 식인종이라는

말을 꺼냈을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요 살과 피다.’

천주학쟁이들은 모여서

살과 피를 뜯어먹고 마신다고

인육을 먹는다고 소문을 냈고,

많은 로마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둘째, 아주 풍기가 문란한

집단이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또‘저 인간들,

언젠가는 불 지를 거야.’

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는 세상에 불 지르러 왔다.’

고 했거든.

그걸 이용한 황제가 네로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미운 네로황제는

자기가 몰래 불 지르게 해놓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천주학쟁이들이 드디어

 그들이 읽는 성서에 쓴 대로

 세상에 불을 지르고

다닌다.’고 했어요.

그때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었잖아요?

그때 돌아가신 사도가

누구에요? 바오로 사도.

로마 시내에 불 지른

괴수로 돌아가신 사도가

바로 바오로 사도에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죠?

식인종, 풍기 문란한 집단,

세상에 불 지르러

인간들이라니!

그러나 사실 이것 보다

더 큰 이유로 박해를

했는데 우상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로마시대 때는

 ‘하느님이 누구였어요?’

로마황제.

그런데 로마황제를 신으로

받들지 않고 로마황제의

동상 앞에서

절하지 않았다 말이에요.

 그럼 200년 동안

우리 조선 신자들이

 박해당한 이유는 뭐에요?

어디에다가 절 안 했어요?

신주에다가.

신주를 안 모신다는 것이

박해이유였어요.

두 번째는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이용했어요.

예를 들어 대왕대비 김씨.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서 죽게 뒤에서

조정한 것이

대왕대비 김씨 에요.

사도세자가 죽고 그 아들

정조가 왕이 된 다음에

대왕대비 김씨는 처음에는

벌벌 떨었어요.

그런데 정조는

통이 큰 사람이에요.

살려줬어요.

그리고 천주교에 관심이

많은 신(新)학자들을

관직에 앉히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 했어요.

죽을 줄만 알았다 살

아난 대왕대비 김씨는

다시 세력을 잡으려고

온갖 모함을 합니다.

정조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짧은 임금을 하고 1800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1801년에 7살짜리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그 뒤에 휘장을 치고

대왕대비 김씨가

 섭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궁내 천주교

관리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일으킨 박해가 바로

1801년 신유박해입니다.

이렇게 대왕대비 김씨가

정권을 잡기 위한

신유박해 때부터

4대 박해가 시작됩니다.

나중에 고종 황제의

아버지인 대원군 시대에도

 얼마나 천주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합니까?

처음에는 프랑스를

끌어들이려다 마음대로

 안 되니 등을 돌리고

정말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이렇게 조선초대교회의

박해 이유는 알고 보면

죽을 이유가 없는

이유 때문에 다들 죽었어요.

 그럼 현대의 박해는 무엇인가?

현대 박해를

영적 박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들이 받는 박해는

외부에서 온다기보다는

내부에서 내 마음

안에서 나옵니다.

쉽게 풀이하면

사탄에게

내 마음을 뺏깁니다.

이용당합니다.

 현대 영적박해를 크게

4가지로 분류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을

우상숭배하려고 하는

성향으로 빠집니다.

자기의 지식, 자기의 고집,

교만, 편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전부 다 우상입니다.

온종일 자식생각만하고

5분도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아니라

우상덩어리입니다.

내 몸뚱이 어떻게 하면

건강만 하면 자갈밭이라도

팔아서 투자하지만,

그 정성의 100분의 1도

하느님에게 안 하고 산다면,

그건 몸뚱이가 아니라

우상덩어리입니다.

조금 더 배웠다는 교만,

능력 있다는 교만,

신앙생활 오래했다고

하는 교만도 우상입니다.

교회 안에 이성주의가

들어오고

합리주의가 들어오고,

신앙을 머리를 가지고

따지려고 합니다.

바깥의 마인드(mind)와

성당 안에서의 마인드가

똑같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위험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입니다.

신앙 자체가

합리주의가 아닙니다.

믿음 자체가 어찌

이성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냐?

내 눈에는 시커먼데

하느님은 하얗다고 하시면

하얀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요령이 필요 없고

신앙 잘하는 학원 없습니다.

배운 대로 들은 대로

우직하게 무식하리만큼

그냥 믿는 대로 한눈팔지

않고 가는 게 신앙입니다.

같은 날 세례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1년 후 보면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이 보면 오래 전에

 세례 받은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의 문제입니다.

모태 신자, 세례 받은 기간,

회장경험, 이런 게

하느님 앞에서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나를 닮고 살았느냐?’

고 물으시지 뭐하고 살았냐고

심판 때에 안 물으실 겁니다.

 두 번째 영적박해는

물질에서부터

떠나지 못하는 겁니다.

물질을 통하여

우리를 박해합니다.

하느님보다 돈을 선택하고

돈을 잡을 수만 있다면

하느님을 배반하고

유다스 짓을 합니다.

저는 사제생활동안

군대에서 지은 성당을

 합하면 4번을 성당과

박물관을 하나 지었습니다.

처음 성당 지을 때 건축업자들은

거의 백프로 신자들입니다.

돈 있을 때는

 ‘신부님 고기 사 드릴게요’

하다가, 만일에 원하는 대로

돈이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사제고

 뭐고 없습니다.

내 멱살 잡고 흔듭니다.

언제라도 쌍욕을 합니다.

그 물질이 무엇인데 신앙이고

뭐고 없이 물질이 앞섭니다.

 우리에게 돈은 필요한 겁니다.

그러나 그 돈 때문에 신앙을

잃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수의에 왜 주머니가

없겠습니까?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하느님이

주시면 감사하고,

남보다 여유가 있으면

여유가 있는 대로

 이웃에게 베풀고,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쪼개서 가끔은

이웃을 향해서 눈을

돌리는 게 바로

물질의 선용입니다.

특별히 현대인들은

 두 번째 박해인 물질의

박해에 아주 약합니다.

물질만 챙길 수 있다면

언제라도 하느님을 떠날 수

있다는 마몬에 대한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세 번째 영적박해는

성의 박해입니다.

성에 대한 유혹이

끊임없이 옵니다.

나이가 70, 80이 되면

성의 유혹이

없어질 것 같습니까?

천만에. 몸뚱이는

마음대로 안 되도

마음속으로는 얼마든지

성의 유혹을 받습니다.

눈만 뜨면 우리를

성적으로 유혹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남녀가 같이 활동하는 단체들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신문에만 안 나고 쉬쉬하고

사라질 뿐이지 얼마나 많은

스캔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성적인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네 단어로 요약이 됩니다.

첫 번째는 분명히

자기의사를 밝히는‘싫습니다.’

어떤 성적인 유혹이

나를 괴롭힐 때는

내 의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양 다리 걸치면 분명히

그쪽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마치 벌이 꿀을 찾아

꿀 속에 들어가듯이.

두 번째는 멀리하는 겁니다.

촛불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손이 뎁니다.

초에다 손을 데면서도

손이 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무식한 겁니다.

화상 입지 않으려면

멀어져야 됩니다.

나를 유혹하는 자로부터

 멀어져야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보고 가슴이

쿵쾅 뛰면 멀어지십시오.

세 번째는 멀어져도

통하지 않으면 도망치십시오.

그러나 싫다는 표현도 하고

 멀어지고 도망쳐도 그래도

그 유혹이 나를 휘어잡을 때

마지막 우리의 무기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가 솔직히

몰라서 죄 짓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풍랑 같은

마음을 잠재웁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보고

계실 터인데 나중에 어찌

하느님의 얼굴을 볼 것인가?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서

소돔과 고모라로

내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만이

우리를 성적인 유혹으로부터,

성의 박해로부터 물리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영적인 박해는

 회개치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불감증!

죄를 졌는데도

죄를 못 느끼게 합니다.

처음에 하얀 종이에 죄를

지으면 까만 점이 찍힙니다.

자꾸 죄를 지어 까만 점이

찍히다 보면 나중에는

 까만 바탕에 하얀 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래는 바탕이 하얀데,

처음에 까만 점이 찍혀 있을 때

그때 하느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사방이 다 까맣게 되면

 죄를 모릅니다.

그것을 불감증이라고 그럽니다.

 현대 박해는 지금 말한

것처럼 영적박해입니다.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오고

주변 환경에서 옵니다.

많은 경우에는 사탄은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이용하여 극대화를 시킵니다.

첫 번째가 자신을

우상숭배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물질을 통해서,

돈을 통해서 박해한다.

세 번째는 성적인 유혹을

가지고 박해하고 마지막

네 번째는 회개치

못하게 해서 박해한다.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죽으면

더 이상 증거 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목이 잘리는

순교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얘기 한 대로

네 가지의 영적인 박해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가려하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네 가지의 영적박해를

늘 경계하고

묵상하도록 합시다. 아멘.

 2017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09/17)

서운동성당 김웅열

(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서운동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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