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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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답이다 -경외와 겸손, 신뢰의 믿음-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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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10-20 ㅣ No.115569



2017.10.20.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로마4,1-8 루카12,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믿음이 답이다

                                                                -경외와 겸손, 신뢰의 믿음-



믿음이 답입니다. 강론 제목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답은 믿음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은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이고 후반부는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입니다. 한편 제1독서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이 두려움에 대한 답임을 은연중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정서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 포위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개방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 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져 있는 말마디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바로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답은 주님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께 대한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 하셨는데 이런 위선은 믿음 약한 인간의 보편적 현상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투명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좋아지면서 위선은 치유되어 안팎이 같은 투명한 사람이 됩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안팎이 다른 위선자로 만듭니다. 참으로 믿음이 좋아짐에 따라 위선의 탈은 저절로 벗겨지기 마련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할 때 세상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점을 강조하십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 담긴 외경畏敬의 두려움입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참새보다 더 귀합니다. 


마치 예수님의 육성을 듣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수중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눈길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우리를 다치지 못합니다. 이런 하느님 믿음이 부족하기에 침투하는 두려움입니다. 탓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부족입니다. 


믿음은 빛입니다. 태양빛에 사라지는 밤의 어둠처럼, 믿음의 빛앞에 저절로 사라지는 두려움의 어둠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꼭 따라붙는 말씀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합니다. 믿음이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서게 합니다. 누군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지 역시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죽음도 영원한 삶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신뢰할 때 죽음의 두려움은 물론 모든 두려움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우리에게는 무한한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닌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믿음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움직여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투신하게 만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브라함, 다윗뿐 아니라 믿음의 삶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선물같은 말씀입니다. 바로 화답송 시편 32장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는 사람!”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들의 참행복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믿음과 의로움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재입니다. 참으로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은혜로운 용서의 현실입니다. 이런 믿음이 세상 모두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롭게 합니다. 


모든 두려움에 대한 답은 하느님 믿음 하나뿐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믿음은 모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두려움을 말끔히 몰아내시고 회개로 깨끗해진 우리 모두에게 이런 참 좋은 믿음을 선물하십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마음 바른 사람들아, 모두 환호하여라.”(시편32,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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