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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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강론.“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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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7-11-20 ㅣ No.116298

 

루카 18,35-43(연중 33 )

 

눈이 멀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물론,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혹은 주위에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곧 자신 안에 빛이 없어, 보지를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리고의 눈먼 거지(바르티메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눈 먼 이가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그냥 길가에 앉아구걸하고 있었습니다. 혹 지금 우리도 가야 할 길을 두고, 그냥 길가에 앉아 있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니, 길을 가는 이들에게 손을 벌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길을 따라 걷지는 않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른 이들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9)

 

그분의 지닌 메시아의 권능을 믿고 부르짖었습니다.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나온다는 <이사야>(11,1) 예언서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가 가까이 오자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예수님께서는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유도하고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물으십니다. 곧 당신께 대한 믿음을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믿고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청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청하고 있는 것을 넘어서, 진정 청해야 할 바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진정 원해야 하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는 이미 성인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빤히 아시지만, 우리 자신이 그것을 알도록 우리의 진정한 원의를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대한 믿음을 보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청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께 대한 진정한 믿음으로 청하기 원하십니다. 곧 당신을 신뢰하고 의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기를 원하시는 것을 청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기를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거지 장님은 이렇게 청했습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

 

대체 무엇을 보아야, 다시 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마치 어린애가 잃어버린 엄마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 하듯이, 하느님을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요?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보다(anablefo)라는 단어는 위를 쳐다보다’, ‘새로운 것을 보다’, ‘다시 보다’, ‘시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이 눈을 뜨기 위해서는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일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을 보는 눈이 다시 보는 눈이요 새로운 눈이요 영적인 눈인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눈을 치유 받는 것을 넘어서, 영혼의 눈을 뜨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아직도 우리가 눈을 뜨고도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보지 못한다면, 아직 영의 눈이 먼 까닭일 것입니다.

 

이제는 눈을 떠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물질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이제는 신앙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그 눈은 사랑을 보는 눈, 빛을 보는 눈입니다. 곧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는 눈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길을 동행하고 계시는 그분을 보는 일입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이처럼, 빛의 세계로 나아감을 말해줍니다. 그는 이제는 길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동행하시는 당신을 따라니다. 육적인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축복을 입어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8,4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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