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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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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1-20 ㅣ No.116300

 


2017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1마카

1,10-15.41-43.54-57.62-64

그 무렵

10 죄의 뿌리가 나왔는데,

그가 안티오코스 임금의 아들로서

로마에 인질로 잡혀갔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왕국 백삼십칠년에

임금이 되었다.
11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
12 이 말이 마음에 들어,

13 백성 가운데 몇 사람이

임금에게 기꺼이 나아가자,

그는 그들에게 이민족들의

규정을 따라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14 그리하여 그들은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15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저버렸다.

이렇게 그들은 이민족들과

한통속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였다.
41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42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

이민족들은 모두 임금의

말을 받아들였다.

43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
54 백사십오년

키슬레우 달 열닷샛날,

안티오코스는 번제 제단

위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을 세웠다.

이어서 사람들이 주변의

유다 성읍들에

제단을 세우고,

55 집 대문이나

거리에서 향을 피웠다.
56 율법서는 발견되는 대로

찢어 불태워 버렸다.

57 계약의 책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따르는 이는 누구든지

왕명에 따라 사형에 처하였다.
62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63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64 크나큰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내린 것이다.

복음 루카 16,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어떤 아이가 울면서
엄마 앞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엄마, 제가
이런 잘못을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떻게 할까요?
물론 큰 잘못이라면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혼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서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자녀가 더 예뻐
보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울고 있는 아이를
꼭 껴안으면서 이런
식으로 말할 것입니다.
“그래. 네가 잘못을
인정해줘서 얼마나 고맙고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리고 네가 잘못을 잘 알고
있으니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엄마는 믿을 거야. 그렇지?”
엄마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엄마를 찾아서
용서를 청하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어쩌면 고해성사를 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믿음이 있어야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는 통회를
할 수 있고 고해소에
들어와 죄를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할 것이고,
또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고해소에 들어와서
이상한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의 죄보다는 남의 죄를
 많이 말씀하시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아무것도
느끼는 것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이제는 아시겠지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하나의 짐으로만
 여기는 것입니다.
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서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곧바로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지만 볼 수 없는 사람이
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거친 만류에도
상관없이 끈질기게 애원합니다.
비록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의 믿음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다가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한 믿음만이 주님을
알아볼 수 있게 하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인생이란 원래

다른 사람과 엮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인과 부딪치고

마음이 멀어졌다가

그것을 또 초월하여

 깊이 이어지는 인생.

그것이야말로

좋은 인생이다.

(다사카 히로시)

고해소.

"지평선 같은 마음"

(정용철, ‘행복한 동행’ 중에서)

"잘하겠다"는 정성입니다.

  "더 잘하겠다"는 욕심입니다.
"사랑한다"는 아름답습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허전합니다.
"감사합니다"는 편안함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는 두렵습니다.
우리 마음이 늘 지평선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일도 사랑도 감사도

 늘 평평하고 잔잔하여

멀리서 보는

지평선 같기를 바랍니다.
아득한 계곡이나

높은 산 같은 마음이 아니라

들판같이 넉넉하고

순박한 마음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렇게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쉼입니다.
앞만 보고 오를 때는

발끝만 보이지만

멈추어 서서보면 내 앞에

지평선이 펼쳐집니다.
마음도 쉬어야

넓고 부드러워집니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할까요?

 여유를 갖고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을 청해봅니다.

그러한 마음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 진정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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