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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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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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1-21 ㅣ No.116319

 

 

2017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복음 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어렸을 때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 숫기도 없고

또 자신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 역시

자신 있게 할 수가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 역시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요.

소위 짝사랑이라는 것을

하게도 됩니다.

숫기 없는 저였지만

저 역시 이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음에 드는 아이가 생겨서

짝사랑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마디의 말도

걸어보지 못한 채 마음

 앓이만 했습니다.

그 아이의 앞에만 서면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군요.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보려고

기타도 배워보았지만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친구들은

신학교까지 들어간

제가 이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사제로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 역시 성소라고 하면

 성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우연히 옛날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벌써 30년 전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 속에는 제가

짝사랑을 했던

여자 아이가 있더군요.

사진 속의 이 아이를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패션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입고 있는 옷과

머리 모양 등이 왜 이렇게

어색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더군요.

또한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마음을

두고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에 따라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미녀의 기준 역시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 역사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동서양을 대표한다는

절세미인 양귀비,

 클레오파트라가 지금의

미녀상과 비교하면

아주 볼품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판단이 무조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되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변화지 않는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족이 찾아오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은 혈연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실행해 나갈 때,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서

차츰 벗어나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참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길은

순간순간을

낭비하지 않는 기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기적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마가렛 제임스)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

"감사하는 습관"

어느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날은 저녁식사

반찬으로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이 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돈가스를 1인당

2개씩 나누어 준다고 하여

신이 난 것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소스가 없다는

 이야기에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부식 담당 병사가 실수로

돈가스 한 상자와

소스 한 상자가 아닌

돈가스 두 상자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기저기 병사들의

불평이 들렸습니다.
"맛도 없게 소스도 없이

돈가스만 2개를

먹으란 말이야?"
그때 한 선임병이 말했습니다.
"다들 그만 불평하자.

분명히 어떤 부대에서는

지금쯤 돈가스 없이 소스만

 2인분 먹고 있을 거야."
우리에게도 많은 선택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불평과 감사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나도 많은 감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만을 바라보면

세상의 어떤 것도

불평의 이유가 됩니다.

그렇다면 불평과 감사 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사람이 행복할까요?
행복은 내가

 선택할 수 있나 봅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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