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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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나 41 【참행복2】 “슬퍼하는 사람" 십자가의 길 제9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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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cham3385] 쪽지 캡슐

2017-12-14 ㅣ No.116828

[하늘땅나41] 【참행복2】 “슬퍼하는 사람" 십자가의 길 제9처 3
<내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로>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세 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한두 번 실패하는 것은 그래도 봐줄만 하지만 세 번이나 실패를 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서도 신용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당신은 세 번째 넘어지시어 온 몸과 지존하신 당신의 얼굴까지도 더럽기 그지없는 땅에다 갔다 대시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되기만을 바라며 실패하는 것을 참으로 두려워하였습니다. 실패한다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며 남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당신께서 먼저 친히 그렇게 하시었고 제게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 저도 실패를 거듭하여 저의 자존과 체면을 다 버리는 이 일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당신과 맞지 않는 저를 둘러싼 껍질을 다 벗어버릴 수 있게 넘어지고 실패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제게 주십시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실생활과 일기 >
1982년 1월 15일에 예수 그리스도님의 부끄럽지 않은 정배로 살겠다고 허원을 하고, 2월말에는 77년 3월 5일부터 계속 살았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소임을 받아 가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다짐하며 새 노트의 첫 장에 “하늘에 계신 너희 성부 완전하심 같이 너희도 완전한 자 되어라.” 는 말씀과 “날마다 죽으면서 살아간다.” 는 말씀과 함께 ‘주님! 모든 일에 있어서 당신 사랑 안에서 당신 영광만을 위해 하게 하소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나도.. 허원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생활을 당신 뜻에만 맞아지기만을 바라며 최선을 다하리라. 나의 개인 뜻, 체면, 위신 등. 「나」의 모든 것에서 죽게 하소서.’ 라고 말씀드리며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3월 24일에는 죽어 가는 많은 이들을 살리시려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로써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천상 정배 예수님, 당신 닮아 가시관을 쓰기 원하였사온데 아직 받을 준비가 덜 되었습니까? ..... 가시관을 쓰신 저의 천상 정배님, 제가 가시관을 두려움 없이 받아쓰게 하소서. 체면도, 명예도, 모든 인간적인 것일랑 다 벗어 던지고 오로지 당신 가시관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이후로 4월 19일까지 커다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유치원생부터 대학생들까지 있는 그 곳 아이들을 보면서 창설자 신부님(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고해사제)에 대해서 밑바닥부터 꼭대기에 이르도록 모든 면에 의혹을 품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러한 모든 것들을 만나는 형제들과 떠버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성소 전반”에 걸쳐 송두리째 뒤흔들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대 혼란들이 거짓말 같이 하루아침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계속하여 할머니와 부모님의 선종을 위한 54일 9일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날! 바로 그날! 4월 19일에 할머니께서 선종 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내리누르고 찌르던 가시관의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넘어질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선 후에 지금까지 제 몸밖에 있던 것들을 떼어버리려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살과 피를 나눈 형제에 대한 사랑과 애착심, 살아오는 동안 저를 사랑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애착심,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보다도 더 큰 것은 ‘저 자신의 체면에 대한 애착심’이기에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에 걸쳐서야 이제 겨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남들 앞에 드러내고 높이 보이고 싶어 하는 교만을 없애버리는 일이 어찌 그리도 힘이 든단 말입니까? 이제 저에게 남은 힘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저의 몸을 감쌀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몸을 숨기고 옷을 입은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만으로 인해 더럽혀졌기에 부끄러워서 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짐승처럼 죽게 되었던 더러운 나’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욕심을 다 버렸기에
더 이상 ‘자신의 몸’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 어릴적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뛰어 놀던 -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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