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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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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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12-16 ㅣ No.116861

오늘 성서 말씀은 엘리야 예언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엘리야 예언자를 묵상하면서 예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14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교육 때문에 대방동 성당엘 갔습니다. 제가 책임을 맡았던 교육이기에 2시간 전에 도착했습니다. 봉사자들과 인사를 한 후에 저는 성당 앞에 있는 불가마 사우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저를 찾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는 목욕탕에서 저를 찾는 방송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강사 신부님이 교통이 너무 막혀서 늦을 거라고 전화를 하셨고, 봉사자들은 제가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와 시간을 바꾸면 문제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저는 성당에도 없었고, 사제관에도 없었고, 성모상 앞에도 없었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목욕탕으로 저를 찾아왔고, 저는 목욕탕에 있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나온 저는 정신은 없었지만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갈멜 산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천둥소리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거센 비바람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조용한 침묵 속에 있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음성을 외부의 환경에서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깊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다시금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대림시기를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기다리는 이들의 자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기다림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인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나타날 어떤 것이 숨겨져 있다는 믿음으로 그 상황 가운데 기꺼이 살며, 그 곳에 기꺼이 머무르고자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늘 다른 어떤 곳에서 진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다른 곳으로 가보지만 그 곳에는 인생의 쓴 뿌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을 맺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루가 8:15)” 세상의 끝 날의 징조에 대해서는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루가 21:19)”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3-4)”

 

인내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약속이 있는 그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인내하는 삶이란 현재를 능동적으로 살면서 하느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태중에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다림의 사람들은 항상 깨어 있어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샘에서 물을 마시는 목마른 사슴처럼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둘째,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은 우리에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대부분은 소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은 집을 가졌으면, 물질이 풍족했으면, 좋은 직장을 가졌으면, 이 고통이 지나갔으면우리에게는 소원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다림은 그런 소원과 맞물려 있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의 시작은 길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한 길이입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기다림을 시작하고 끝을 내려하기 때문에 하느님 사랑의 기쁨을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망하게 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리던 진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면 하였을 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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