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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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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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12-17 ㅣ No.116879

연일 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변에 추위를 이겨내기 힘든 분들은 없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분, 몸이 아픈 분, 혼자 외롭게 지내는 분, 채무가 있는 분들에게는 더욱 춥게 느껴질 것입니다.

 

앵무새 죽이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써야했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이가 누명을 쓴 것을 알면서도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익명성 뒤에 숨어서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일삼았던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행위로 판단해야 합니다. 사람의 죄는 행위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소설은 사람의 인격이 피부색에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는 피부색에 의해서 정해지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노동을 하지만 먹을 것은 늘 부족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신들은 그런 사람들을 외면했습니다. 이집트의 신들은 제사장들과 권력자들과 가진 자들에게 축복을 주는 신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 배고픈 이들, 병든 이들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신의 이름은 야훼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신만이 유일한 하느님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하느님, 아픈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억울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신분, 피부, 혈연, 세대, 계층, 이념의 벽을 허물어 주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산은 평평하게 깎아 주시고, 깊은 골짜기는 메워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그런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응답송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과 예수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랐던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픈 이들이 고통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외로운 이들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집트의 신을 섬기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인지 모릅니다.

 

한 신학생이 제게 작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청소년들이 지내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늘 남이 입던 옷을 입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보세 옷가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옷 가게에는 평소에 입고 싶었던 옷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옷을 살까, 아니면 평소에 입고 싶었던 그 옷을 살까! 통장에는 200,000원 밖에 없었습니다. 큰맘을 먹고 아이들을 위해서 옷을 사서 사회복지 시설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설에 계시는 수녀님께서 신학생에게 선물을 하나 준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입고 싶었던 가벼운 패딩 잠바였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학생은 보세 옷가게를 다시 찾았습니다. 수첩을 놓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옷가게 사장님이 신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아이들을 위한 옷과 양발을 한 보따리 주셨습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학생은 그날 저녁에 본당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본당 신부님께서 성탄을 축하한다고 하시면서 봉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봉투에는 그날 자신이 사용한 금액인 200,000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신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눔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은 보다 안전한 곳에 나의 것을 모아 놓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좋아하셨고,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노래가 생각납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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