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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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 곁에 머문 평범한 열두 사도 / 연중 제2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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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8-01-19 ㅣ No.11767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는 권한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3-19 참조)’ 이처럼 사도는 그분 곁에 머물고, 때로는 파견되는 이다.

 

그분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 이 사도는 교회 공동체의 표상이다. 예수님으로부터 말씀 선포와 마귀 쫓는 권한을 받은 그들은 평범한 이들이었다. 뛰어난 학식도 없었고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다.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 사제에 속하지도 않는다. 이는 평범한 이도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아, ‘예수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거다.

 

수석을 좋아하는 부자가, 하루는 어떤 이 집에서 아름다운 돌을 보았다. 돌 모양새가 너무 마음에 들어 부자는 값은 충분히 줄 테니 팔라고 했다나. 그러나 주인은 더 많은 돈을 바라며 팔지 않았다. 뒤에도 몇 차례 더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주인은 핑계 대며 머뭇거렸다나. 어느 날, 그는 가격을 더 올릴 방도로 예쁘게 갈아야겠다고 느껴 정성스레 돌을 갈았다. 그 후 부자가 다시 찾았다. 주인은 허세 부리며 그 돌을 내놓았으나, 부자는 한 번 흘끗 보더니 그냥 돌아가 버리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단다.

 

열두 제자는 타고난 모습 그대로를 지닌 평범한 이들이다. 꾸밈이 있었다면 선택되지 않았을 수도. 그러므로 주님 앞에는 언제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할 게다. 감추고 싶어도 감추어질 게 없기에. 꾸미고 싶은 마음은 언제라도 유혹이리라. 평범한 그들을 예수님께서는 사도로 만드신 거다. 세상은 점점 지식과 학식으로 꾸며진 이들을 요구한다. 교회 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이게 복음적인 순수한 모습만은 아닐 수도.

 

사실 그분께서는 제자 선발부터 인간적인 기준을 뛰어넘으셨다. 당신을 배반할 저 유다를 열둘에 포함시킨 것은 분명 구원사의 신비라 할 수 밖에. 복음사가는 이 부끄러운 일조차 숨기지 않았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부인하였으나 교회의 반석이 되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당신 때가 가까이 오자, 당신께서 원하시는 열둘을 손수 뽑으셨다.

 

제자들은 장차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분과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때가 되면 그분께서 파견하실 게다. 그들 스스로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시리라. 이런 과정도 없이 갑자기 사도가 될 수가! 그분 곁에 없던 이를 어찌 감히 파견을? 이렇게 예수님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함께 머물러야만. 이 시각 그분과 함께 머무르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도 의로운 예수님 제자로 살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려면 먼저 그분 곁에 머무르는 게 필요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예수님 곁에 머무르는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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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복음 선포,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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