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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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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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2-18 ㅣ No.118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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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창세 9,8-15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
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제2독서 1베드 3,18-22
사랑하는 여러분,
18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르 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어느 유명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뜬금없는 질문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질문은 “너는 뭐가 되고 싶으냐?”
라는 것이었지요.
마흔을 훨씬 넘어선 중년의 딸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아버지를
이해하기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혹시 아버지께서 어디 잘못되었나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을 눈을
응시하면서 진지하게 물으셨습니다.
“뭐가 되고 싶으냐?”
이 물음에 “저 지금 작가하고 있잖아요.”
라고 대답했더니 아버지께서는
 “쳇, 너는 꿈도 없냐?”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이었지요.
작가는 아버지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 한 순간을
지내는 것에만 급급했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꿈을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물론 막연하게 어떻게 되고
싶다는 말은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이지 않으면
그 바람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냥 시간 가는대로 급하게 살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특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꿈을
꾸고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또 잘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러한 꿈을 꾸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세상의 흐름에 젖어서
지금 한 순간만을 잘 지내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에 대해서 묵상을 해 봅니다.
왜 하느님이신 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렵고 힘든 일을 자청하셨을까?
 내 자신에게 그런 위치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꼼짝하지
못하도록 할 것만 같은데
주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셨지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부족해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무엇이 부족할까요?
왜 하느님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야 할까요?
우리들을 빠짐없이 구원하시기 위한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받는
유혹들을 직접 당신의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이겨내심으로 인해,
우리들 역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지요.
이렇게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구원의 길은
더욱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 어떤 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네.
그러저 행복하려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

 

예수님께서 40일동안 유혹을 받으셨다는 유혹산.
"복음의 기쁨 82항"
(프란치스코 교황)
“어떤 이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추진하기 때문에
 그러한 나태에 빠집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과정이 무르익어
가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허황된 성공의 꿈과
특정 계획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지 않고
사람보다는 조직에 더 치중하는
 사목 활동의 비인간화로,
길을 걷는 것보다 ‘도로 지도’에
더 열정을 쏟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다릴 줄 모르고
삶의 흐름을 지배하려 들기 때문에
그러한 나태에 빠집니다.”
불가능한 계획을 추진하기 때문에
나태에 빠질 수 있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가능한
꿈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나태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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