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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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으로/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아라.(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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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2-19 ㅣ No.118406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아라"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중심 교리는

'하느님의 나라' 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의견이 갈라지는 것은

하늘나라의 '' 이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한두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린다고 하는 주제는

되풀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구하면 구할수록,

그분의 지배는

더욱 완벽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에

자유롭게 "" 라고

말해야 한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 나라는 두 면을

가진 동전과 같다.

하느님 쪽에서는

천국은 하느님이

양자를 삼는 것처럼

사랑을 가지고 자기에게

오라는 초대이고,

우리쪽에서는 그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

"그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고 우리 인간 가족이

사랑으로 뭉쳐서 하느님께

함께 갈 것을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쪽에서 보면,

천국의 초대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쪽에서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데

조건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가야 한다.

우리는 홀로 오라는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고,

함께 오라는

초대를 받은 것이다.

우선 서로

사랑하라는 것에 대하여

""라고 말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 라고 할 수가 없다.

이제 때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복음서는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때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답을

세 가지나 보고하고 있다.

첫째, 하늘나라는

이미 여기에 있다.

둘째,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세대에 찾아올 것이다.

셋째, 하늘나라가

다가올 날짜와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이 세 가지 대답은

모두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도래에 관한

묘사의 한 부분이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남성이 데이트를 하자고

여성에게

신청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첫번째 초대이다.

 뒤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자신의 졸업 반지나

사교 클럽의 핀을

갖겠느냐고 물어본다.

이 두 번째 초대는

좀더 밀접한 관계로의

진전을 암시한다.

그리고 자기와 결혼해

주겠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궁극적인 초대로,

남편과 아내의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이 이러한

초대들에 대해서 반드시

""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

하느님의 사랑의 왕국에 대한

초대는 이와 비슷하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하느님의 상호이해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초대는

이미 바로 자신의 인성에까지

확대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 된 것이다.

이미 하늘나라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악마가 추방당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관해 듣게 되었다.

하늘나라의 초대는 여기,

예수님의 인성과

능력 안에 있는

우리 속에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초대가 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은 죽음, 부활, 승천을

아버지와 하느님의 백성에게

 내려오신 성령에게

그 영광을 돌리고 있다.

요컨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발 내 죽음을

비극으로 보지 말아라.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생명을 바쳤다.

나는 피로써

하느님과 새롭고 영원한

성약에 봉인할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 아버지는

나를 부활시키고,

나는 승천할 것이다.

거기서 나는 아버지께

 너희에 관해 얘기를 하고,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할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너희에게 협조자인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은 성령의

선물과 함께 신약성서의

초대의 제2단계이다.

새롭고 영원한

성약(聖約) 안에서

하느님께 속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결혼과 같다.

이 초대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실제로 교회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이며

최종적인 초대가 있다.

이것이 찾아올 때,

아무도 그것이

종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해 온 이들은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영원하리라고 부르짖으며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나라를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복음서의 세 가지

설명은 예수님의 설명과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이고 일관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 나라의 소우주이고,

우리 모두에 대한 하느님의

성서적인 초대의 개인판이다.

하느님은 매일 우리에게

친교를 맺자고 초대하신다.

하느님의 친교에의 초대는

어느 때나 올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찾아 오신다.

매번 하느님은

우리의 삶 안에 들어와서

새로운 친밀함으로

우리를 초대하는데,

그것은 독창적인 체험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꼭 지켜보고

기도해야 할 하느님의 시간이다.

(믿음의 눈으로)

정성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  

-존 파웰 지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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