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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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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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3-15 ㅣ No.119000

 

 2018년 3월 15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복음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예전에는 나이가 차면

 ‘똥차 치운다.’라는 말도 있듯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사고방식은 아예 없습니다.

이제는 내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해도 결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혼자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낫다.’
이런 식의 비혼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왜 이런 비혼주의가

많아지는 것일까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세상이고,

함께 함으로 인해 더욱 더

성장하는 우리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결혼한

사람들의 후회를 많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괜히 결혼했어.’라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쏟아내는지 모릅니다.

저는 종종 강의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결혼 전에 연애를 할 때,

연애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신 것 같았어요?”

라고 말씀을 드리면,

대부분이

 “그냥 계속 같이 있고 싶었죠.

하루 종일도 가능했어요.”

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자기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을 때에는 상대방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그가 아무리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도 귀담아 듣지요.

상대방이 아무리 형편없는

행동을 해도 멋있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면 상대방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지루한 이야기만 하는지,

행동은 얼마나 남부끄러운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결혼 전의 나와

결혼 후의 내가 다른 것일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바뀌었을까요?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열렬히

환영했지만 그 마음을 바꿔서

이제 고소하려고만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 역시

주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소하려고만 합니다.

결국 이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율법을 받은

모세까지 고소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바뀐 것은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 큰 잘못을

행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은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의 뜻과

늘 일치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내 안의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일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새뮤얼 존슨)

어제 강의를 했던 수원 성북동 성당 자모회.

"주님의 뜻을 잊지 맙시다."

만 5세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실험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선생님이 하나의 놀이를

지정해주었습니다.
“지금부터 쌓기 놀이만

하는 거예요. 알았죠?”
두 번째 그룹에게는

권유를 합니다.
“지금부터 쌓기 놀이를

하면 좋겠어요. 어때요?”
마지막 그룹에게는

선택권을 줍니다.
“어떤 놀이를 하고 싶어요?

(대답을 듣고)

그럼 지금부터

그 놀이를 하면 돼요.”
선생님의 요구에 따라

아이들은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5분 후에

선생님이 다시 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놀이를 계속하고 싶은

친구들은 계속하고요.

바꾸고 싶은 친구들은

새로운 놀이를 해도 좋아요.”
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첫 번째, 두 번째 그룹

모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난감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그룹은

처음 선택한

놀이를 계속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를 보였을까요?

자신이 선택한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간섭이 들어간

놀이에는 쉽게 흥미를

 잃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신

그 깊은 의도를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 삶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신다고

불평불만을 던집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의 뜻에 철저하게 따른 성모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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