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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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참회 예절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2018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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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jjwriter] 쪽지 캡슐

2018-03-19 ㅣ No.119089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7.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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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39일 금요일[사순 제3주간 금요일]


[참회 예절 강론 당일 복음 말씀] 요한의 첫째 서간 3,1-10, 19-22


마태오 복음 26, 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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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예절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

 


바티칸 대성당

2018 3 9


 


우리가 방금 들은 성 요한의 말씀으로 우리가 받는 기쁨과 위로는 얼마나 큰지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셨고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직접 뵈올 때 우리는 그분 사랑의 위대함을 그 전부를 더욱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요한의 첫째 서간 3,1-10, 19-22).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항상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것보다 더 위대합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단죄하는 어떤 죄도 뛰어 넘어 가 닿기까지 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고 끝이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편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 놓아 두고는 하는 모든 저 장애물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고 우리에게서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줍니다.

 


우리는 죄의 상태가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사실 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죄에서 비롯되는 나약함과 혼돈의 상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가깝게 머무르시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것에 대한 확신이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우리와 동행해야 합니다. 사도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그리고 망설이지 말고 성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신뢰를 두어야 한다는 확신을 다시 보증하여 줍니다.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요한 첫째 서간 3,20)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현존을 거부함으로써 저질러 온 그 어떤 죄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은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희망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그분의 은총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그 방향을 잃는다는 것을 때때로 우리가 깨닫도록 만드는 것은 이 희망입니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오 복음 26,74-75). 복음사가는 지극히 냉철합니다. 닭의 울음소리는 갈피를 못잡으며 당혹스러워하는 한 남자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장막이 걷힙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눈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심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 그리스도는 매맞고 모욕당하시는 분, 베드로가 직접 부정했지만 베드로를 위해서 지금  죽으러 가시는 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기를 원했던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돌아가시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스승님을 가르치고 싶어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에 앞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위해 죽으러 가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과 마주합니다. 결국 그는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그 자신이 사랑받도록 놓아 두라고 청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언제나 그 자신이 사랑 받도록 놓아 두기를 거부해 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가 언제나 오로지 예수님께 스스로 구원받도록 놓아두는 것을 거부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예수님께서 그를 온전히 사랑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이 사랑 받도록 놓아두는 일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요!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일부분이 감사의 빚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반면 실재로 우리는 온전히 빚을 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사랑으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는 그분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는 은총을 이제 주님께 간청합시다.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사랑으로 정화되도록 합시다!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cA_SD_sYpDQ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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