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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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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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3-19 ㅣ No.119099

 

2018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2사무 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제2독서 로마 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
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 마태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주 인상적입니다.
우선 10대에게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응답자의 약 75%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단 41%만이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바를
 들으려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실 부모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면 아이는 자존감이
높아질 뿐 아니라 독립심이
 강해져서 사회적인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부모들은 아이들의
 말과 생각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부모 자신의 말과 생각에
자녀들이 무조건 귀 기울이고
따르기를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또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분명 한쪽에서는
아픔과 상처를 안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려고 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 늘 주님께 대한
불평불만만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요셉 성인을 떠올려봅시다.
그는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수로 일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즉,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약혼한 마리아가 같이
살기도 전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인간적인 판단을 하게 되면
자신의 아기가 아니니 파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알려서 공개적인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듣고 또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에서 들은 주님의
천사의 말씀을 듣고는
이해해서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들으려고 하지 않고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면
꿈에서 들은 메시지를 따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기준보다는
하느님의 기준을 늘 이해하려고
했기에 꿈에서 들은
메시지라도 소홀히 하지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기준에 따라서 듣고
이해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넓은 마음이 하느님의
아드님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어떻게든 듣고
이해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정문정)


성 요셉과 어린 예수님.

 "나의 관심은?"

“신부님, 제가 가이드를

잘 하기 위해 제일 많이 보는

책이 무엇인지 아세요?”
“관광 가이드 책이나

역사책이 아닐까요?”

라고 답하니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식물도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그 지역에 대한

 질문이나 유적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나무나 꽃을

가리키면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너무 자주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 지역에 오래 살았어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나 꽃이

아니고서는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겠지요.

저 역시 갑곶성지에 있는

모든 나무와 꽃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나무와 꽃을

가리키며 물어보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관심 있는 것이

궁금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관심이 없으면 질문도 있을 수 없으니까요.

즉, 질문이 있는 곳에 나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께 관심은 있는 것 같습니까?

주님께 대한 질문이 없다면

그만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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