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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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신부님복음묵상(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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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4-20 ㅣ No.119881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요한 6,52-59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표징은,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살게 하는 힘

시골 작은 마을 외딴집에

어머니와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밤손님이라도 들어올까 봐

해만 지면 문고리를 이중 삼중

잠그는 게 일이었습니다.

딸은 촌구석에 풍경화처럼

묻혀 살고 있는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도시가 그립고 라디오를 들으며

상상해 온 화려한 세상에

나가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딸은 가슴 속의

그 허황된 꿈들을 좇아

어머니 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잠든 사이 몰래

집을 나온 것입니다.

엄마, 못난 딸 없는 셈 치세요.’

딸은 쪽지 하나 달랑 남기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가

꿈꾸던 것처럼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 딸은

더 이상 갈 데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뒤에야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딸은 좁은 방에

웅크린 채 엄마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엄마...

그렇게 10년이 흘러 어느새

어른이 된 딸은 병든 마음과

누추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

창틈에선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지만 방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습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

문고리를 잡아당긴 딸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상하다. 단 한 번도 밤에

문 잠기는 걸 잊은 적이

없었는데...

어머니는 깡마른 몸을

차가운 바닥에 눕히고 가련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딸은 엄마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은 채 흐느꼈습니다.

엄마, 흑흑...

딸의 흐느낌에 잠을 깬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딸의 그 지친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고 난 딸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엄마, 그런데 오늘은

왜 문을 안 잠갔어?

누가 오면 어쩌려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오늘뿐이 아니란다.

혹시 네가 밤중에 왔다가

그냥 갈까 봐 10년 동안 한 번도

문을 잠그지 못했어.”

천천히 방을 둘러보던 딸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하루같이 딸을

기다리던 방안엔 라디오도

책들도 모두 10년 전

그대로였습니다.

모녀는 그날 밤 10년 전으로

돌아가 방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편안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1,잠기지 않는 문]

나의 어머니와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면 나의 자녀와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 어디를 돌아다니며

찾아봐도 어머니만큼 나를 안아줄

따뜻한 집은 없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녀를 위해서라면 문을 절대

걸어 잠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마음 안엔

항상 자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 또한 어머니의

그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이 바로

표징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사랑의 표징들을 받아들인

자녀는 멀리 떠나도 어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그 표징들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자녀의 가슴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을 나간 딸도 결국

어머니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가슴엔 딸이 살고,

딸의 가슴엔 어머니가 삽니다.

그 이유는 둘 사이에 오고간

사랑의 표징들 덕분인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

이 신비는 바로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님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그 안에 아버지를 품고

당신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 성령을

아버지께 보내시며 그분의 손에

당신의 영을 맡깁니다.

그렇게 서로의 품 안에 살게 되는

신비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 신비인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이 곧 성령이신 것처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둘 사이를 오고가는 사랑이

곧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마치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이렇듯 표징은 그 사람이 내 안에,

또 내가 그 사람 안에 머무르게 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축성된 그리스도의 성체도

그분의 사랑의 표징이기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시기에

그분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그분의 성체와 성혈을

모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이 곧

당신의 살과 피인 것입니다.

그것을 영함으로써

그 분이 내 안에 사시지만,

나 또한 그분 안에 살게 되어서

죽음의 힘도 나를 해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딸이 표징을 통하여 어머니의

사랑을 믿게 되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인 성체와

성혈을 믿어야합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품에 들어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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