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하느님 맛 -죄에 대한 근본적 처방-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스크랩 인쇄

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8-05-24 ㅣ No.120665



2018.5.24.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야고5,1-6 마르9,41-50




하느님 맛

-죄에 대한 근본적 처방-



“하느님을 떠나 갈 곳이 없다!”

어제 미사후 저절로 나온 제 말에 제가 놀랐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 '하느님의 일'인 기도, '하느님의 사람'인 수도자들, 그러니 하느님은 수도자의 전부요 존재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떠나 갈 곳이 없다!”

말을 바꿔 ‘수도원을 떠나 갈 곳이 없다!’로 말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우리 수도자의 영원한 정주처, 안식처, 피신처인 하느님을 상징하는 곳이 바로 수도원이기 때문에 살아갈수록 수도원을, 하느님을 떠나 갈 곳이 없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수도형제들의 공통적 고백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과 제1독서 야고보서를 묵상하며 문득 떠오른 강론 주제는 “하느님 맛-죄에 대한 근본적 처방-”입니다. 흡사 예수님과 야고보서의 말투에서 강경한 예언자의 모습을 대하는 느낌입니다.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예언자 예수님의 추상같은 명령이요, ‘부자들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는 에언자 야고보 사도입니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죄가 얼마나 무섭고 파괴적인지 깨달으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단호하고도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하느님과 죄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반대편에 있는 죄입니다. 사람을 하느님에게서 떼어 놓는, 단절시키는 무서운 죄입니다. 하여 미사가 시작되자 마자 죄로부터 단절과 용서를 상징하는 참회예식과 더불어 자비송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지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어 고립단절될 때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지옥은 장소개념이 아니라 관계개념입니다. 환경에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하느님과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참 의미심장한 지체가 손과 발과 눈입니다. 죄의 하수인이 될 수도 있고, 하느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죄를 지었다 하여 손과 발과 눈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손과 발과 눈을 죄짓게 한 마음을 봐야 합니다. 마음의 회개가, 마음의 순수가 답입니다. 회개한 순수한 마음 따라 움직일 때 비로소 손과 발과 눈도 하느님 은총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부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도 충격적입니다. 역시 탐욕에 빠져 가난한 이웃을 방기한 부도덕한 부자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재물이 남용, 오용되는 것에 대한 야고보 사도의 강력하고도 격렬한 질책입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여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옷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그대로 탐욕의 죄에 빠진 오늘날 부도덕한 부자들에 대한 예언자의 경고처럼 들립니다. 자선을 통해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보물을 탐욕으로 하늘이 아닌 땅에 쌓아놓은 어리석은 부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탐욕입니다.


부자들이 늘 염두에 둘 바 나의 부로 인한 맞은 편 궁핍, 결핍된 이웃들입니다. 내가 배부를 때 맞은편에는 굶주린 이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잊어버린 무분별한 탐욕이 죄입니다. 탐욕에 눈 멀어 마음의 순수를, 참 나를 잃어버린 부자들입니다. 회개를 통한 마음의 순수, 무욕의 마음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이래서 새롭게, 절실히 부각되는, 죄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입니다. 사실 죄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사랑이신 하느님뿐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아 마음의 순수가 아니라 사랑할수록 마음의 순수입니다. 


지엽적인 죄의 가지를 잘라내는 일은 끝이 없습니다. 아예 죄의 뿌리를 근절根絶시키는 일이 근본적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처방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한 마음의 순화淳化요 성화聖化인 것입니다.


언젠가 수도원을 찾은 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잊지 못합니다. 피정강의 때마다 늘 인용하는 변함없는 고백입니다.


“수도원에서 무슨 맛, 무슨 재미, 무슨 기쁨으로 살아갑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저뿐만 아니라 우리 수도형제들의 이구동성의 고백입니다.

“하느님 맛으로, 하느님 찾는 재미로, 하느님 찬미하는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죄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하느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세상맛, 돈맛, 밥맛, 술맛, 일맛 등이 아닌 하느님 맛이 우선입니다. 날로 깊어가는 하느님 맛과 더불어  저절로 세상 맛도, 탐욕 맛도, 죄의 맛도 잃어 죄로부터의 이탈이 이루어져 마음의 순수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도 참 적절합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마음에 하느님 말씀의 소금을 간직하고 지낼 때 비로소 서로 평화롭게 지낼수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이자 빛입니다. 말씀의 소금이 내 자신은 물론 서로의 부패를 막아주고 삶을 맛있게 합니다. 참 좋은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마음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어 더욱 당신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피신하는 사람!”(시편34,9). 아멘. 






3,94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