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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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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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121248

 


2018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열왕 21,1ㄴ-16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복음 마태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다른 이들에게서 모욕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욕감의 대부분은

말에서 시작됩니다.

“너는 늘 그 모양이야.”,

“남자는 다 그래!”, “

너는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아!”,

 “호박에 줄 근다고 수박이 되니?”,

 “누구는 이런데 너도 도대체 왜 그래?”

등등의 말을 통해

우리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바로 과장의 말, 비꼬는 말,

비교하는 말을 통해

모욕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욕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이 말에 동의할 수 있다면

 꾹 참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동의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는 나일뿐인데,

이 나를 부정하게 만드는 말에

어떻게 동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싸움의 결과는

 상대방뿐 아니라 내 자신도

큰 상처를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욕의 상황은 지금 뿐만이

 아니라 과거 예수님 시대에도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라는 말씀을 하시지요.

누가 오른뺨을 치려면

어떤 손을 이용해야 할까요?

 바로 왼손입니다.

당시에는 왼손이 불결한 일을

 위해서만 사용했기에 왼손으로

누군가를 때린다면 부정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공동체에서

10일 동안 쫓겨나는 벌을 받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왼손으로

누군가를 때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른뺨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른손 손등으로 상대방의

오른뺨을 친 것입니다.

바로 상대방을 향한 모욕의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치면 기분 나빠하지요.

 마찬가지로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하찮은 상대를 모욕할 때 했던

행동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욕을 당했을 때

많은 이들은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행동을 합니다.

끝이 없는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욕을

당했을 때 왼쪽 뺨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즉, 모욕 말고 때릴 거면 제대로

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처하게 된다면

상대방은 어떻게 할까요?

 ‘뭐 이런 사람이 있어?’하면서

오히려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로 나의 선에서

그 모욕의 굴레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율법의 명령에 따라 누구에게나

 악을 악으로 갚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모두 사악해지고 율법의

 기반인 사랑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억울한 고통을

견뎌 냄으로써 악에 맞서는

 방법으로 악을 끊을 수 있습니다.

이로써 악이 사라지고

주님의 사랑이 세상 안에서

환하게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기억하면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 줄 수 있고,

천 걸음 가자는 자에게

이천 걸음을 가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세상 안에

드러내는 커다란 역할을

지금 내가 행하는 것이니까요.


모욕의 길처럼 보이는 십자가의 길을 우리는 걷습니다.

"인생은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좋은 글’ 중에서)

인간은 엄청난 호기심과

삶의 에너지를 안고 태어나며

그래서 아이는 뭐든지 궁금해 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을 탐험하려 듭니다.

아이처럼, 무한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배우는 것이

 "본능적이고 바람직한 삶의 자세"

 인데 무리한 교육과 선행학습,

지나친 경쟁의식은 삶에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생활 태도와

자세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집니다.

그 에너지야 말로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며,

인생이란 별거 없으니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경쟁사회 속에서

누구나 삶의 무게에 지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럴수록 삶에 대해서 호기심을

놓치지 말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애써야 하며 멈춰 있지 말고

계속 성장하면서 생동감 있게

순간순간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한번 지나간 시간은

절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며

소중한 시간들을 불평이나

 한탄으로 날려버리는 것만큼

미련한 게 없습니다.

생각지 못한 고난이

찾아와 시험 볼 때,

누군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떨칠 수 없을 때,

사는 게 죽을 것처럼 힘들 때

이 말을 떠 올려 보십시오.
인생은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정말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인생 뭐 별거 있겠습니까?

지금에 충실하면서

참 기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야생화에도 감동을 받습니다. 인생 별 것 없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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