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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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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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6-23 ㅣ No.121370

 


2018년 6월 23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열왕 24,17-25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

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

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

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

 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

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

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

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

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복음 마태 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세상에서는 황당한 법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실행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실행되고 있는 황당한 법을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저녁 식사 때에 먹은

음식이 좋지 않은 지

계속해서 속이 좋지 않습니다.

결국 밤 11시에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았습니다.

 일을 보고서 변기의

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웃주민의 신고로

벌금을 내고 말았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저녁 10시

이후에는 변기 물 내리는

 행동이 불법입니다.

 일본에도 황당한 법이 있습니다.

바로 비만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0~74세의 시민들은

규칙적으로 자신의

허리 사이즈를 재야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허리 사이즈가 85cm를,

여자들은 90cm를 넘으면

안 된다고 하네요.

참고로 비만인 사람들이

감옥 가는 것은 아니고,

대신 건강 교육 프로그램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가 간질간질해서

손으로 코를 만졌습니다.

그런데 벌금이 날아왔습니다.

자그마치 우리나라 돈으로 82만원.

싱가포르에서는 운전할 때

코를 만지면 벌금 82만원입니다.
그밖에도 태평양 근처에 있는

 사모아 섬에서는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리면 하룻밤

감옥에 가야한다는 법,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죽일 수 있다고 되어 있는

홍콩의 법도 있습니다.

단, 맨손으로 죽여야 한다고 하네요.

 아프리카 말라위에는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방귀를 뀌는 것을

구속하는 황당한 법도 있습니다.
환경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서

이런 법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거야?”

라고 말하면서 인정하지 않고

또 따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 황당한 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 나라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는 이렇구나.’

라면서 그냥 인정하고 따르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법규는 간단합니다.

 그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세상과 다른 점은

무조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합니다.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그냥 거부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러한 결정을

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당신의 나라에 맞지 않으니

나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이 안에서 커다란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

기서 하느님의 법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한 가지.
사람은 인정받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어린 딸이 아빠에게 “아빠!

나는 커서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래요.”

라고 말하면 너무나

기쁘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주님께서는 어떠하실까요?

 당신의 법을 인정하고 따르는

우리들을 얼마나

예뻐하시겠습니까?

더 커다란 사랑과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인정은 가슴에 남는 기억이다.

(안데르센)

쓰담쓰담 묵상집 7월호가 나왔습니다.

이걸 보며 한숨이 나옵니다. '8월호 써야하는구나,"...

"감사합니다."

어제 우편물 하나를 받았습니다.

신학교의 은사 신부님께서

보내신 우편물이었습니다.

이 안에는 ‘본당 신부 하루 일과표’가

코팅이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뭐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일과표를 보다보니 맨 위에

저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대학원 1학년 때,

사목신학 시간에 교수 신부님께서

과제로 내주셨던

‘본당 신부 하루 일과표’인 것입니다.

은사 신부님께서는 예전의 마음을

기억하라면서

제게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쓴 일과표이지만

참으로 성의 없이 그리고

 잘 몰랐을 때

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도 이를 보면서 예전의

순수했던 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사제로 열심히 살려고 했던 마음,

그 마음을 다시금 새기면서 안일하고

나태하게 살고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을 다시금 추슬러 봅니다.
이렇게 기억은 지금을 더욱 더

잘 살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단순히 과거를 후회의

시간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으로 과거를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오랫동안 제자들의 과제물을

소중히 간직해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리면서,

아울러 이번에 원로사목자가

되시는 신부님께서 영육간에

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부님은 수원교구 손골성지에 계시는

윤민구(도미니코) 신부님이십니다.

 

대학원 1학년 때 쓴 본당 신부 하루 일과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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