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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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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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7-21 ㅣ No.122111

 

불교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시간 사찰에서 염불하고, 목탁을 치고, 설법하던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주막에서 오랜 시간 웃음을 팔고, 술을 팔고, 안주를 팔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죽었을 때 스님은 극락으로 가고, 여인은 지옥으로 갔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스님은 지옥으로 갔고, 여인은 극락으로 갔습니다. 두 사람의 지향과 갈망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목탁을 치지만 마음은 주막에 가서 술을 먹고 싶었고, 여인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여인은 술은 팔지만, 마음은 스님을 부러워했습니다. 스님처럼 염불을 외우고, 사찰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스님의 염불은 공염불이 되었지만, 여인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가르치고, 성전에서 지내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말은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단식은 하지만 단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부정한 여인의 죄를 묻지 않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리들을 받아 주셨고, 복음을 전하는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생각과 기준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의를 전하는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성서를 어떤 분들은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을 다스릴 사람을 당신의 모습을 닮도록 만드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은 하느님의 뜻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였고, 그로 인해 죄와 죽음이 생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의 결과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때로는 직접 사람들을 고통과 절망에서 희망과 기쁨으로 인도하셨으며, 때로는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역사의 순간에 함께 한 사건이 모세를 통한 이집트의 탈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였습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틀을 벗어나셨습니다. 이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구원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제물이 되셨고, 우리에게 성사를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표지인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표지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바로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다른 의미로 신비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다른 교회 모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 한 몸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각 교회는 다른 교회를 위해서 도움을 주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몸이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고, 치료하듯이 신비체인 교회는 다른 교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런 신비체인 교회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됩니다. 그로 인해 가톨릭 사회교리가 생겼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를 통해서 공동선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를 위해서, 도시 빈민을 위해서, 장애인을 위해서 교회가 함께 하는 것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며 한 몸을 이룬다는 신비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파스카라는 말은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절망, 고통, 좌절, 슬픔에서 기쁨, 희망, 위로, 행복으로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파스카는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는 파스카의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는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함께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편에 계셨습니까? 낮아지지 않는 영광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도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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