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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이냐 실체냐 (로마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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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9-12 ㅣ No.123390

 

표적이냐 실체냐

(로마 9:4-5)

4 나의 동족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고 하느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고 참된 예배가 있고 하느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아멘

 

성경의 독자는 성도입니다. 아무에게나 막 읽으라고 준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의 독자는 영적 이스라엘인 거예요. 저 민족적 이스라엘이 아니란 말입니다. 민족적 이스라엘에게는 양자 됨과 아들 됨과 영광과 언약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과 또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조상들이 있고, 그 조상들은 전부 아들을, 씨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준 게 율법이고, 그리고 육신의 예수도, 그들에게서 나왔다. 라는 겁니다. 바오로가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는 육신의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이시다 라고 못을 박아요. 그리스도는 육적으로 난, 너희에게서 난 그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아들인 예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보지 못하면 그 예수는 그리스도일 수 없다. 라는 말이에요. 그리스도는 다른 게 아니잖아요. 메시아, 구원자, 예수를 그냥 예수로 봐 버리면 나에게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럼 한번 생각해보자구요. 지금 바오로가 나열한 것들이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고, 배경들임에는 틀림없죠? 그것이 없으면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는 거죠? 율법, 언약, 약속, 아들, 조상 이런 게 없이 어떻게 진리를 이해해요. 당연히 꼭 필요한 도구들입니다. 그러나 그것 것들을 가지고만 있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건가요? 예배당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그 예수를 예수로 부른다고 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겁니까?

 

조상이라는 게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통하여 그 씨, 아들을 설명해 주기 위해 그 조상들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근데 그 씨가, 그 조상들에 의해, 제대로 설명이 되어지지 않았으니까, 문자로 펼쳐준 게 율법이죠? 그래서 율법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알면, 그 율법은 그냥 풀리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이건 좋은 거란 말예요.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그냥 구원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지금, 바오로가 나열하고 있는 것들이, 진리로 깨달아지지 못하면, 그런 것들은 그저 표적에 불과한 거다라는 말이에요. 쎄메이온, 표적. 양자됨, 언약, 율법, 약속, 예배, 조상, 예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렇게 나타난걸, 영광이라고 하잖아요? 그릇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내용을 담아서 보이는 그릇으로 주어진 그것, 그걸 표적이라고 그래요. 뭘 가리키는 것이다라는 의미에서 표적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씨그널, 싸인 이런 뜻이죠. 심지어 육신으로 오신 예수도, 그리스도의 영으로 받지 못하면, 그 자체로는, 표적에 불과한 거에요.

루가복음 212절 보세요. (루가2:12) 12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 보는 표이다' 하고 말하였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누구예요 예수죠? 근데 그걸 성경이 표적이다 이렇게 이야길 한단 말이에요. 그 예수 안에 아들, 양자, 언약, 약속, 율법, 조상 이런 개념들이 모두 들어가 있는 거잖아요. 오늘 나열된 모든 것이.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그 아브라함이 이해한 그 씨대로, 그 말씀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이야기 하니까 주님이 뭐가 아브라함이 니네 조상이야 아브라함은 아들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니까 근데 너희들은 엉뚱하게 보고 있잖아 니들 아비는 마귀야. 무슨 니들 조상이 아브라함이야 니들 아비는 마귀지. 니들 조상은 마귀야 이렇게 얘기했단 말입니다.

 

여기에서 구유라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되는데 그 구유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에부스 라는 말인데요. 그 단어는 하느님께서 성전을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주심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이 이제는 조금 이해를 하셔야 되는데. 싸멕이 언약의 기둥있죠? 기둥을 위에서 이렇게 내려다 본 거예요. 요렇게. 그래서 이거를 보이는 약속, 언약, 기둥, 십자가도 이거거든요 이거 기둥, 눈에 보이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하느님께서 성전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에부스, 구유라고 읽어요. 그리고는 이 모음만 빼버리면 이게 먹이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구유라고 쓰는 거예요.

구유가 먹이를 담는 거니까. 그죠? 그런데 어떤 형국이냐면 지금 그 구유에 하느님의 그 하늘 그 성전이 보이는 약속으로 나타난 그 구유에 그게 양식인데 그 구유에 예수가 케이마이놓여져 있는 거예요. ? 보라고. 어떻게 보라고? ‘케이마이해서 이렇게 던져주면 우리는 호라오하고 봐야 되는 거죠? 그러면 구유에 그 예수가 양식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놓여서 제시되어지면 그걸 우리는 그냥 그대로 보면 표적, 그걸 내용으로 보면 진리인 거예요.

그게 참 양식 하늘의 양식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걸 표적이라 그래요 그게 하느님이 그 하늘을 약속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으로 준 거니까 그렇게 나타난 걸 하늘의 영광 그 영광은 땅의 에이레네평화를 갖다 주는 거죠? 그러면 절 앞에다가 아무렇게나 이렇게 막 써 놓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요즘은 절에도 갖다가 붙여 놓더라고요 크리스마스 때 보면.

자 그렇게 예수와 구유가 하나가 되어 있는 그 형국, 그건 표적이에요. 예수는 아들을 주어서 아들을 만드시겠다는 하느님의 언약과 그 약속을 눈에 보이는 그런 형상에 담고 온 표적인 거예요. 근데 그 표적이신 예수를 내용으로 보지 못하고 그냥 그 예수의 기능이나 능력이나 행한 일이나 그이 말 등을 그냥 표피적으로 받아들여 버리면 그게 표적으로 예수를 받는 거고 그걸 성경이 악이라 그래요. 심지어 간음이라 그래요 그거를.

마태복음 161절 보세요. (마태16:1-6) 1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속을 떠 보려고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표가 될 만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자 2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저녁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3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천기라는 건 호 우라노스의 프로소폰. 그 하늘의 껍데기는 볼 수 있으면서 프로소폰이 나타난 밖의 것이잖아요. 그걸 천기라고 번역해 놨어요. 그래서 무슨 점쟁이들이 쓰는 천기누설 이렇게 그냥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냥 그 하늘의 표피적인 그것, 그게 그거 얘기하려고 하는 거겠니 아침에 하늘이 붉고 노을이 지는 게 너희들 보고 그거 보라고 그러는 거겠어 거긴 내용이 있는 거 아냐 그러니까 너희는 그렇게 하늘의 프로소폰, 껍데기는 분별한다고 하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그 시대 카이로스가 담고 있는 그 내용으로써의 그 표적은 너희들이 모르는구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4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나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뒤에 두고 떠나 가셨다. 5 제자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가면서 잊어버리고 빵을 가져가지 못하였다. 6 그런데 예수께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시자

너희들이 천기, 그 프로소폰 호 우라노스 그 하늘의 껍데기만 보는 거 그게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가인의 누룩이야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연결해 나가고 있단 말입니다. 누룩은 뭐예요? 절대로 재물에 섞으면 안 되는 거죠? 섞음, 변질의 대명사가 꿀과 누룩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만나를 하느님이 음식으로 줬더니 꿀 섞인 과자’, 이렇게 자기들이 이름을 붙였다니까요. 바오로가 지금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면서 그 하늘의 프로소폰을 그냥 껍데기로 봐 버리면 그것이 바로 율법이고 바리새인과 사두가인들의 누룩인 거고 그런 이들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표적으로만 보면.

 

그러면 지금부터 왜 바오로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렇게 장황하게 나열을 하고 그것이 하느님과의 그 하느님과의 끊어짐이라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 바오로는 8장 말미에서 아들이 된 자들은 절대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라고 단언을 해 버리죠? 피조물이 하느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우리를 진리로 얘기해줄 사람이 빨리 나타나야 돼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들이야 라고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 아들이 되면 절대 그 어떤 것으로도 하느님과 끊어질 수 없어 라고 이야기했단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되어 선이 되기 때문에 선으로 몰입이 되기 때문에 그런거다 라고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러고는 9장으로 넘어와서 하느님으로부터 끊어져 있는 어떤 모델을 제시하여 그 구원에 필요한 어떤 이들을 지금 이스라엘로 등장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바로 율법과 희생 제사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애를 쓰고 있었던 육적 이스라엘이었단 말입니다. 바오로가 9장과 10장에서 설명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율법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은 이 유한 존재의 그냥 절망적 한계, 실체 실존인 거예요. 실존임과 동시에 성도들의 옛 모습이며 그리고 진리를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있는 그러한 율법이라는 배설물 찌꺼기를 아우르는 아주 적당한 모형이 육신적 이스라엘이었단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상탠데 하느님은 반드시 너를 온전한 이스라엘로 만들어 내고 말 거야 가 910장이라니까요. 율법으로 에 이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경고를 육적 이스라엘을 예로 들어서 교회에게 던지고 있는 거예요. 바오로가 율법주의에 빠져 있던 갈라디아의 교회에게 아주 보다 원색적으로 꾸지람을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이 문제였어요. 그러니까 사복음서를 잘 알면 그깟 書信書는 안 봐도 되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54절을 보세요. 4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졌고 은총에서 벗어났습니다.

이게 진짜 끊어짐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부정적 끊어짐. ‘카탈게오 아포 호 크리스토스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로마서 9장에 처음에 나오는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는 그 카탈게오란 단어가 없어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 그래서 멸망해 버리는 자 그리로 갈 수 밖에 없는 자를 끊어졌다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카탈게오’. 어떤 자들이에요? 그들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이 이야기해 주고 있단 말입니다. 그들이 바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야곱의 얍복강 이후의 삶, 즉 이스라엘로서의 그 삶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 요셉이 나오는 거라 그랬죠? 그리고 요셉의 그 인생에는 하느님이 내려와서 이야기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왜? 진리를 마음에 가진 상태를 설명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 요셉의 삶은 유다의 안경으로 보라고 요셉의 삶이 펼쳐지는 중간에 유다라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끼워 넣은 거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유다나 이스라엘이나 같은 개념으로 이렇게 쓰이는 거라 그랬어요. 그래서 남유다, 북이스라엘 이거 같은 거예요. 이스라엘을 유다라고도 하고 이스라엘이라고도 하는 건 그 유다와 그 이스라엘은 곧 요셉이 설명하는 거니까.

 

그 유다와 이스라엘이 같은 내용을 담고 이 땅에서 아나데마의 삶을 살다가 간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냥 유다 이스라엘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유다의 후손으로 아들이신 예수가 메시아가 오셔야 하는 거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르우, , 벤 야민 이것이 아들이다 아들의 완성이야 이렇게 아들 열둘로 등장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유다도 아들로 끝나고 이스라엘도 아들도 끝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아들이 그 씨가 그들을 구원해 내는 그 이야기를 성경이 일부러 친절하게 그렇게 예를 들어 이솝 이야기처럼 설명 해 주는 거에요. 유다도 씨에 의해 아들에 의해 아들이 자손이 누구예요? 메시아니까 유다 너에게서 실로가 온다 그랬으니까. 당연히 그 씨가 없으면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으면 유다는 죽는 겁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죠. 요셉에 의해 이스라엘, 야곱이 살아나는 거에요. 안 그러면 굶어 죽을 뻔 했다니까요.

자 생각해 보세요 유다는 메시아를 낳아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에요. 그는 그 아들에 의해 구원을 받아요. 근데 유다는 그 자손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그러니까 그 후손이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나 몰라라 해요. 그게 우리의 모습인 거예요. 그게 나중에 예수 팔아먹은 가롯유다와 똑같은 놈이에요. 그래서 유다라니까요. 그 메시아가 안 오면 안 돼요. 그 메시아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으면 우린 죽는 거니까. 그래서 하늘의 아들이 땅의 창녀로 부정한 자로, 율법으로, 간음한 자죠 그 율법이라는 게. 그분이 내려오는 거예요. 그게 창녀의 모습이라니까요.

 

죽어야 할 부정한 여자가 하느님 앞에, 그 씨의 주인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 바로 지팡이와 인이다 라고 설명해 드렸지만 뒤집어 설명해도 똑같은 이야기인 거예요. 그렇게 씨에 대해서 관심 없는 자에게 하늘의 아들이 이 땅의 부정한 여자, 우리의 모습이죠, 그걸 간음하는 여자라고 하니까, 성경이. 창녀로 내려와서 합방을 해 버리는 거예요. 이는 관심도 없어 알지도 못해요. 그러고는 씨를 만들어 낸다니까요. 그러고선 뭘 받아 내냐면 염소를 주겠다는데 절대 그건 안 받고 인과 지팡이만 받아 낸다니까요. 염소를 받으면 큰일 나는 거예요. 희생 제사거든요 그게, 재물이니까.

그 씨는 유다가 반드시 생산해 내야 했던 약속의 자손이에요. 실로란 말이에요. 거기에서 족보 그 족보에서 다윗도 나오고 솔로몬도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도 오는 거예요. 그렇게 씨가 생기자 유다의 정체가 폭로되죠? 어떤 자로? 마누라 죽은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창녀하고 잠잔 자로 폭로되는 거예요, 씨가 생기자 그 씨에 의해. 그 여자가 입만 뻥끗하면 유다가 돌에 맞아 죽을 판입니다. 이게 율법이에요. 그런데 그 다말이 입을 닫는 겁니다. 씨를 가진 그 존재에 의해서 죽어야 할 유다가 살아나는 거예요. 다말은 그 시아버지의 불의를 자신이 다 짊어져 버리죠? 그냥 창녀로. 그러나 시아버지가 용서해 준 그런 자로 그냥 남아버려요. 저 사람이 이 씨의 주인이다 이렇게 폭로 안 한다니까요. 그럼 죽는 거예요. 그 때 유다가 다말에게 네가 이렇게 얘기해 준다 말이에요. 다 복음을 설명하는 거예요.

유다는 반드시 도장과 지팡이를 표로 보증으로 갖고 있어야 된다 그랬죠? 다말이 유다고 유다가 다말이니까 . 반드시 그 보증으로 그 표로 표시로 도장과 지팡이를 갖고 있어야 돼요. 그게 유다에요 이스라엘이에요. 그 표라는 것이 쟈칼이라고 했고요. 쟈칼을 네케바라는 여자가 딱 품으면 그가 아들이 된단 뜻이에요. 그걸 표라고 한다니까요. 그리고 그 둘이 이렇게 연합이 되면 그것을 하 아담’ ‘사람이라 그래요.

 

성경에 흙이 나오죠 흙이요. 그 흙은 땅에서 나오죠? 그걸 하 아다마라 그래요. 근데 이 하 아다마는 반드시, 여기에서 이제 아담, 사람이 나오는 거라 그랬어요. 근데 이 사람은요 진리가 된 사람도 여기에 포함되고 안된 사람도 여기에 포함돼요. 근데 왜 다 이걸 아담이라고 하느냐면 모든 건 다 하느님의 피, 이게 하느님의 다미 피니까 하느님의 피로, 하느님의 것으로 생겨난 거니까 하 아담이고 그리고 그건 하느님이 구별하신 진리라고요. 우린 다 진리라니까요. 저 절에 있는 중들도 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이다. 저기 뭐 히말라야에 있는 그 도인들도 다 진리를 담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진리인 줄 모르고 그냥 사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말도 그렇게 진리로 다 하고 우리는 사는 거 먹는 거 모든걸 다 진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하는 건데 우리가 그걸 못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담은 반드시 소리를 가진 아담이 돼야 된다 말이에요. 말을, 그 말씀을 내 마음에 가진 아담이 돼야 되죠? 그걸 그래서 성경이 하 아담이라 그래요. 그 사람이라고. 그래서 이 관사가 안 붙은 아담과 하 아담이 명확하게 구별이 되어 있어요 성경에는. 근데 예수님이 당신을 그 사람의 그 아들이라 그래요. 그냥 사람의 아들이라고 안 그래요. 그래서 인자라고 한다니까요. 그 사람의 그 아들 그 라인에 우리가 들어가 있는 거죠.

 

이 아담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하느님의 그 말씀이 이건 보이지 않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 말씀이 아담을 만들어 내는데 이 말씀도 보이지 않는 거 이거는 안 보이니까 이 안 보이는 것을 우리에게 뭘로 주냐면 아파르로 준단 말이에요. 이걸 우리가 티끌이라고 번역을 해 놨어요 성경이. 그래서 어떻게 이해하느냐면 땅에서 티끌을 모아 물을 부어 반죽해서 구워 갖고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이해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근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진리에서 하느님이 보이는 이것으로 우리에게 주었을 때 이것이 뭔지를 알아버리면 우리가 하 아담이 되는 거고 이게 뭔지 모르면 모래 티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떨어버리는 거예요 그것을. 이게 그러면 율법이 된다니까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줘 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비를 내리는데 비를 모래처럼 내릴 거야 그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을 율법으로 봐 버리면 그냥 죽는 거예요. 유다 이스라엘 반드시 이 유다와 이스라엘은 그 씨를 갖고 있어야 돼요. 표를 갖고 있어야 돼요. ‘자칼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의 그 중심이 어떤 지파였어요? 민수기 2장에 분명히 나오는데, 유다 지파에요. (찍어도 알겠네. ㅎㅎ 유다 얘기하고 있는데 유다 지파겠지 그럼 내가 딴 걸 물어보겠느냐고요) 유다 지파가 깃발을 가지죠? 이게 표에요 표적이란 뜻이에요. 깃발이라는 게. 깃발을 꽂으면 그리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게 표에요. 유다 지파가 깃발을 갖고 남동서 뭐 이렇게 주위에 다른 지파들이 쭉 포진을 하고 그리고 거기에 성막을 짓게 돼 있어요. 그리고 거두어서 유다 지파가 또 먼저 가는 거죠. 이 유다가 유대인 이스라엘이에요.

 

메시아를 낳아야 하는 유다가 열두 아들의 대표로 등장하는 거예요 ~ 유다라는 말 자체가 뻗다 펼치다 이런 뜻이거든요. 성전을 펼치는 존재에요. 그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그 성전을 펼쳐내는 역할로 부름을 받은 거예요. 그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민족적 이스라엘도 어느 순간까지 그걸 펼쳐내는 도구로 사용된 거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그런 역할일 뿐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하고. ? 성전을 펼치는 역할을 하는 게 이게 뭔지를 내 뻗는 역할을 하는 게 유다니까. 그래서 그들이 깃발을 갖고 있었고 표적을 갖고 있었고 나머지가 그 주위를 둘러쌓고 거기에 성막이 지어졌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유다 지파에서 성전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하고 완성 성전인 여러분이 오는 거예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말하는 성전으로 왔지만 난 아직도 율법이니까 옛 성전하고 자기를 지금 연합시키는 거예요. 헐어라 세 번째 걸로 세울께. 그걸 바오로가 고린도서에서 너희들이 성전이지 성령이 너희 안에 임하니까 너희들이 성전이지 이게 완성 성전이라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다라는 과정을 거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아들이 되는 게 하느님 백성들의 창조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유다는 하느님의 표를, 깃발을 진리로 가지면 살고 못 가지면 죽어요 그래서 가롯 유다가 성령 그 깃발 그 표적 그 보증이 오기 전에 죽음으로 이 유다는 안 되는거야 라고 그렇게 죽은 거예요. 그게 육적 이스라엘이라니까요. 저렇게 쫄딱 망해 갖고 저거. 그 이스라엘이 그 유다 역할을 한 거예요 역사 속에서. 다시 저렇게 세우면 안 되는 거라니까요. 아니 안 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세워져야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또 저걸로 말씀을 하시죠. 인간들은 못 알아먹는다. 이렇게. 그래서 유다 지파에서 예수라는 그 표적이 나오는 거예요. 그 성전 진짜 성전 완성 성전을 이루실 그분이 나오는 거예요.

 

유다 즉 이스라엘은 그 예수를 진리로 가지면 살고 표적으로 가지면 죽습니다. 그 표적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에서 찾으면 오트라는 단어거든요. 그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한 번 보세요. 예수가 표적이라 그랬어요 그리고 사도바오로가 그 예수 안에 담겨 있는 언약 약속 뭐 이런 것들 아들 조상 이런 것들을 지금 쭉 펼치고 있잖아요.

출애굽기 1213 집에 피가 묻어 있으면, 그것이 너희가 있는 집이라는 표가 되리라.(뭐가? 피가. 어린 양의 피가.) 나는 에집트 땅을 칠 때에 그 피를 보고 너희를 쳐 죽이지 않고 넘어 가겠다. 너희가 재앙을 피하여 살리라.

~ 이스라엘을 살리는 표적 이 깃발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유다가 갖고 있던 깃발 표적, 어린 양의 피가 표적이다 그래요. 그게 깃발이다 그게 표야 그게 보증이야.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그 표적을 진리로 갖고 있는 이들이 심판을 면한다는 거예요. ? 피는 물이고 물은 성령이니까. 요한일서 5장 그 셋은 같은 거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출애13:15-16) 15 그 때 파라오가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으므로 야훼께서는 에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을 모조리 죽이실 수밖에 없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처음 난 것은 모조리 죽이셨다 그래서 나는 처음 태를 연 수컷을 모두 야훼께 제물로 바쳐야 하고 아들들 가운데서도 맏아들은 물러내어야 하는 것이다. 16 이것을 너희 손에 새긴 표나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표지처럼 여겨라. 야훼께서 그 강하신 손으로 우리를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시지 않았느냐?'

손과 이마의 표, 인을 가진 이가 애굽에서 살아 나온다는 거예요. 하느님의 장자의 희생으로 대속이 된다. 라는 은혜의 그 언약, 이게 표적이라는 거예요. 깃발이에요.

그런데 그 표를 갖고 있는 유다가 몇 번째 아들이죠? 성경에서 숫자는 항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랬어요. 네 번째 아들입니다 유다가. 그러니까 넷이라는 유다 이런 말이에요 . 그래서 그 표적이라는 단어가 제일 처음 나오는 곳이 어디냐면 창세기의 네 번째 날이에요. 넷이라는 날이라 그래요.

창세기 114절 보세요. 14 하느님께서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 밤과 낮을 갈라놓고 절기와 나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무슨 말인지 아세요? 징조와 절기와 연한이 이루는 게 뭐예요? 국어사전을 찾아 봐도 모르겠어요. 하느님께서 하늘의 궁창 그 라키야’, 그 궁창이 뭐라 그랬죠? 금을 얇게 펴서 조각목을 덮는 그 성전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게 타베크’, 위와 아래의 가운데 그러니까 위와 아래가 만나는 교집합을 타베크라 하는데 거기에 궁창을 하느님이 만들라고 그랬으니까, 그게 뭐예요? 성전이고 예수잖아요 그것이, 말씀이고.

~ 궁창에 광명을 두세요. 광명이라는 단어가 마오르라는 단어입니. ‘오르에다가 이라는 문자를 붙여서 장소를 만든다 그랬죠. 그래서 오르는 빛이라는 뜻이니까 빛이 있으라의 그 빛, 빛이 비추어 지는 어떤 장소, 빛이 빛을 비추는 어떤 기구, 이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마오르라고 그래요. 그 단어는 성경에서 이 이후로는 전부 성소 안에 등대를 가리키는데 쓰여요 마오르. 그러니까 성경은 그 광명이라는 걸, 큰 광명 작은 광명을 단순히 이 크로노스의 세상을 비추는 태양이나 달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담은 그 표적으로서의 성전과 연관시켜서 설명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마오르’, 창세기의 일곱 말, 일곱 언약에 쓰인 그 단어를 성소 안의 기명인 등대를 가리키는데 계속 사용하는 거란 말입니다 연결을 시켜서.

그 궁창에 세워진 그 등대에 의해 무언가가 성취되게 하겠다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지금 우리가 읽었던 징조 절기 일자 연한을 성취하겠다 이런 말이에요. 뭘로? 궁창에 있는 마오르. 성전 안에 그 등대로 그 빛으로, 그 눈으로 그 말로 그 성령으로 다 같은 말이었죠? ~ 그게 성취되게 하는 게 마오르에요. 이게 넷째 날의 이야기잖아요. 그 넷이라는 단어도 레비라는 단어잖아요. 레비라는 단어 자체가 뭐냐면 하느님이 성전을 아래 것으로 말하기 시작하시다 라는 의미에요 문자적인 의미가. 그게 넷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말하면 내 마음에 눈에 안 보이는 것으로 받아 가지면 되죠? 그걸 성취라 그래요 완성이라 그래요 그걸 넷이라고 하자 그래요.

 

징조와 절기와 일자와 연한이 넷으로 완성이 돼야 그게 하느님의 언약의 성취인 거라 말입니다. (숫자만 나오면 다 졸라 그래요.ㅎㅎ) 여기에서 징조라고 번역이 된 이 오트라는 단어가 표, 깃발, 표적, 기적, 증거, 표징 이런 의미의 단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쫙 펼친 다음에 내려가서 그때부터 기적을 행했죠? ? 내가 말해준 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해 줄께 그래서 기적을 행한 게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뭐 병고치고 죽은 사람 살리고 이건 이 세상을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좀 건강하게 살아라 이런 의미에서 해준 게 아니에요. 그러면 하느님이신데 그냥 아예 아픈 사람 다 나와라 그러면 되잖아요. 앞으로 질병이라는 것은 없어져라 그러면 되지 뭘 일일이 하나하나 만나가지고 고치냐고요. 필요할 때만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이세상이나 성전이나 율법이나 예수 그리고 그 분이 행하신 기적이나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전부 표적이라는 거예요. 그건 반드시 밝은 빛으로 이렇게 밝혀지고 나타내져야 되는 거에요.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90%이상의 기도원에서 전부 그 짓만 하고 있다니까요 고치지도 못하면서. 요즘 열심히 돌아다니는 아무개 성도가 우리 청년 어머니가 암에 걸려 가지고 말이죠. 또 거기 가서 기도를 받았다네요. 근데 완치가 됐대요. 꼭 그래가지고 내가 곤란한 지경에 처해요.ㅎㅎ 근데 얼마 전에 또 재발을 했대요. 그건 뭐 어떻게 된 거냐고요. 더 낙심했어요. 지금 또 가야 되나요 그럼 또? 복채 들고?

자 그걸 그냥 껍데기로만 보면 그게 바로 어두움이에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짓거리들이라니까요. 지금 이 넷째 날이 창세기의 첫째 날과 짝이라는 건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시죠? 창세기 첫째 날에 하느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근데 그 앞에서 그 어두움이 뭔지 이미 밝히셨어요 뭐라 그랬죠? 흑암은 깊음의 이름이다 파님이다 그랬다 말이에요.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이렇게 번역을 해 봐서 이상한데 흑암은 깊음이라는 것의 파님, 이름을 우리가 어두움, 흑암이라고 하자 하느님이 그렇게 약속하셨다니까요. 그게 어두움이야. 근데 그 밑에서 깊음은 모인 물이고 모인 물은 바다라 하자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래 것, 아래의 물, 위의 그 물 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샴마임이 거기에 그 물이 있는 곳이니까, 그 하늘을 그 물을 가진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 아래 물로 우리에게 주신 걸 하느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호쉐크이걸 어둠이라고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빛의 이름을 이라 그래요. 그게 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거예요. 낮이나 날이나 그게 빛이잖아요. 빛을 날이라고 하자 낮이라고 하자 하느님이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그냥 알면 돼요. 빛을 낮이라고 하고 어두움을 밤이라고 하자 그랬어요.

근데 이라는 단어 자체도 라일이라는 단어 자체도 가르치다. 란 뜻이에요. 우리에게 뭘 가르치기 위해 그 밤을 허락한 거지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니까요. 근데 그 이라는 단어가 그 이라는 단어가 진리를 주다. 라는 말이란 말에요 문자적 의미를 파자를 해 보면. 그러니까 진리를 주는 이 날들은 이 수많은 날들, 그리고 이 밝은 낮은 우리에게 진리를 주기 위한 하느님의 선물인 거예요.

그걸 날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진리를 주는 걸, . 그래서 주님은 빛이신 당신이 이 세상에 계시는 그때를 낮이라고 한 거예요. 낮이 12시간이 아니냐? 우리 성경에는 12시간이냐 이렇게 되어 있나? 12시간이잖아 밤이. 12시간이고 열둘 그 낮 동안에 열둘이 돼야지 아들이 돼야지 그런 말이에요. 래서 내가 온 거 아니야. 주님은 어둠이라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그 속에 빛을 담고 오셨어요. 그 육신 자체, 아래 것 자체가 어두움이라고 했으니까 하느님이 창세기 12절에서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 어두움을 그릇으로 갖고 그 안에 빛이신 진리를 담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란 말이에요. 세상은 그 어두움을 통하여, 율법으로 오신 주님을 통하여 진리를 알았어야 됐어요. 그러면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낮이라니까요. 근데 아무도 몰랐어요 다. 어두움에 속해 있어서. 어두움에 속했다는 건 눈을 감았단 뜻이거든요. 아무도 못 봤다는 말이에요. 빛이 왔는데 세상은 여전히 어두운 밤이었던 거예요.

 

표적으로 오신 예수가 그냥 표적으로 인식이 된 후에 죽임을 당해 버린 거예요 껍데기로만 인식이 된 후에. 온통 어두움으로 눈이 먼 세상에 의해서 빛을 담고 있던 어두움이라는 그릇이 그냥 어두움으로, 율법으로 죽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은 그 표적을 인으로 지팡이로 쟈칼로 당신의 택한 백성들 안으로 그냥 뚫어서 넣어버리셨어요. 인투루젼(intrusion), 침략해 버렸어요 침로 해 버렸어요. 당신의 백성의 심비에 새겼다고 하는 거죠 그걸. 심비에 새겨 버렸어요 밖에 있는 율법을. 돌비에 새겨져 있는 것을 돌판에 새겨져 있는 돌비에 새겨져 있는 그것을 심비에, 마음으로 그냥 새겨 버렸다니까요. 어떻게요? 성령을 보내서. 그게 성령이에요.

그렇게 표적은 반드시 진리로 완성이 돼야 되는 거예요. 오르로 시작된 그 빛이 반드시 오트오르가 빛이잖아요. 하느님이 시작한 걸 하느님의 완성으로 우리가 가져야 돼요. 그 완성을 위해 우리에게 준 게 표적, 깃발, 표 라는 거예요. 이 안에 예수가 들어가 있고 언약, 율법, 조상, 모든 게 다 이 안에 들어가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표적은 오르오트로 완성이 돼야 되는데 그게 바로 오트의 목적과 의미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게 표적은 진리로 완성이 되지 못하면 그것 자체는 아무리 우리 눈에 신기해 보이고 우리의 육적, 이 뭐 배고픔이나 해갈에 도움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건 멸망시키는 양식이에요.

요한복음 626-27절 보세요. 오병이어, 분명히 육신의 배가 불렀습니다. 26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이게 호라오에요. 표적이 뭔지를 분명히 마음으로 깨달아 알아야 되는데 그 표적을 표적으로만 받아서 너희들 배만 두들기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는 그거를 위해 날 찾아왔다는 거예요.) 27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게 호 불러시스 호 아풀루미가 뭐냐면 너희를 파괴하는 양식이야 그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너희가 내가 너희에게 내려 준 그걸, 그 표적을 진리로 받아내지 못하면 그게 너희를 파괴하는 양식이야. )

 

누가? 그 사람의 그 아들이, 하 아담이에요 그 말을 갖고 있는 그 아들이 너희에게 양식을 줄 거라는 거예요. 인자는 아버지 하느님의 인치신 자(인을 받고 있는 자) 그 표, 그 깃발을 성령으로 보증으로 갖고 있는 그 자들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 위의 것을 먹어야 사는 거예요. 아래 걸 많이 먹잖아요? 그러면 일찍 죽어요 여러분. 왕들이요, 옛날 왕들이 하루에 다섯 끼를 드셨다네요. 그래서 일찍 죽는 거예요 너무 많이 처먹어서.ㅎㅎ 소식하세요. 하루에 한 끼 먹는 게 신들의 양식이래요. 세 끼는 그건 야만인이고. 누가 세 끼를 먹어요 요새, 와이프 고생스럽게 ㅎㅎ.

~ 그렇게 우리는 그 하늘의 그 양식을 반드시 진리로 받아먹어야 돼요. 표적으로 먹으면 안 돼요. 그냥 죽습니다.

하느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후손인 이사악을 주시면서,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시죠? 그리고는 그게 표적이다 그래요.

창세기 1711절 보세요 11 너희는 포경을 베어 할례를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다. (이게 표적이라는 단어에요. 깃발이라 똑같은 단어에요)

할례가 표적이다 근데 언약을 담은 표적이래요. 어떤 언약이죠? 약속의 자손 아들은, 아들들만 할례하죠? 아들은 팔의 날에, 할례가 뭐예요? 생식기를 생명의 근원을 잘라버린다는 의미예요. 팔의 날에 그 육을 부정 당하는 자가 그게 아들이다 라는 거예요. 그게 언약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표적으로 근데 그냥 육의 할례만 해 버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선민이다, 이거는 이게 멸망시키는 양식을 먹는 거라니까요. 그래서 바오로가 그러는 거예요, 야 육신의 할례가 할례냐?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육신의 할례 받고 그것으로 우리가 할 걸 다 했다 그러면 그게 바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말이에요. 그냥 표적으로만 봐버린 거니까. ~ 왜 아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팔의 날에 할례를 받아야 되는지 다음 주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 거예요.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하느님은 표적을 주시는데 한번 보세요. (9:13) 13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무지개는? 일곱 색깔입니다. 일곱.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무지개 언약이라 그러죠? 그 다 언약을 무지개를 언약의 표적이라 그래요 또. 근데 일곱으로 표적을 주시고는 그들을 끌어내는데 여덟로 끌어냅니다. 베드로서에 보면은. 그렇게 표적이라는 건 하느님의 언약, 하느님의 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오트라는 거 다음에 모예드’ ‘절기가 이어지는 거예요. 단순히 사계절 계절 이런 뜻이 아니에요. 그 단어는 예드’ ‘야드라는 단어 자체가 이라는 문자와 야드라는 단어의 조합인데요. ‘은 항상 장소나 어떤 것을 만드는 접두어로 쓰이는 거라 그랬죠? ‘야드가 뭐냐면 이 단어에서 에덴이 나온 거예요. ‘에덴’ ‘야드같은 단어예요. ‘에덴’ ‘야드기쁨이란 뜻도 있지만 정한 때’ ‘약속하다’ ‘약혼하다이런 말이에요. 그걸 절기라 그러죠. 그러니까, , 여름, 가을, 겨울, 이스라엘의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수장절 이 넷의 이런 것들은 다 이 표적이라는 것을 이렇게 펼쳐서 그것을 우리에게 언약으로 준 어떤 것들이란 뜻이에요. 사계절도 마찬가집니다. 씨를 뿌리고 그리고 이것들이 자라나고 추수가 되어 곳간에 들이는 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에요 여러분. 그러면 그것을 깨끗하다 그래요. 그래서 하얀 눈이 겨울에만 오는 거예요. 그걸 그렇게 그리워해서 한국에 왔더니 세상에. 일 년의 반이 겨울이에요. 왠 겨울이 이렇게 길어요.ㅎㅎ 빨리 봄이 보고 싶어요. 난 거기가 그립더라니까.

 

그게 바로 모예드’, 절기라는 거에요 절기. 절기, 모예드라는 건 그 쟈칼과 네케바의 그 연합 혼인을 목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모예드가 약혼하다 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거예요. 하느님은 그 혼인의 약속을 절기로 주셨어요 유월절에. 로마서 7장에 그 첫 남편이 죽는 거죠. 어린 양이 죽잖아요. 첫 남편이 죽는 거예요. 고기가 죽는 거죠. 그리고 무교절에 하늘 양식이 무교으로 광야에 떨어지죠. 누룩 없는 빵으로 떨어진단 말이에요. 그리고 오순절에 새 남편이 성령으로 오시죠. 그리고는 수장절에 추수가 끝난 알곡으로 하늘 백성들의 천국 잔치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게 절기에요. 그게 모예드라니까요 이것이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주어진 절기 자체가 그 표적이라는 것의 내용을 설명하는 거예요. 언약으로 설명해 주는 거라 말이에요. 그리고 그 내용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의 혼인잔치인 거고 자~ 그 절기를 그 모예드를 거시적으로 보면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그걸 전부 이렇게 그려 내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우리의 이야기이고.

 

스테파노가 그 광야 사십 년을 교회라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은 뭐 하는 기간이에요? 이게요 하느님과 우리가 혼인하는 기간이라니까요 결혼을 하는 거예요. 이제 하나하나 준비를 해서 하느님과 혼인하는 기간인 거예요 이것이, 그게 모예드니까. 그래서 하느님과의 혼인을 진리로 설명해 주는 이들을 바오로가 중매쟁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너희를 순결한 처녀로 하느님께 중매할 거야 처녀는 안되니까 남자를 반드시 알아야 되거든 그래야 남자가 되니까, 쟈칼이 되니까 그죠? 중매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중매쟁이가 소개하는 남편이 보기에도 연한 순 같고 볼품도 없고 못생기고 그 흔한 대학, 예수살렘에만 정규대학 4년제 대학이 두 개나 있었대요. 전문대학은 무지하게 많았고 근데 무학이야, 스펙도 형편없어, 아버지는 누군지도 몰라 동생도 또 왕창 많아 이게 남편이, 이게 소개할만한 사람이 아닌 거라. 그러니까 안 받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렇게. 딴 사람 없어요? ㅎㅎ 그런데 어떤 정신 나간 이들이 그 남편을 중매쟁이에게 소개받더니 자기 남편으로 꼭 붙들고 있는 거예요. 그 남편을 만나면 내 존재 육적 자아가 또 부정까지 돼 죽어야 돼 그 남편 앞에서 누가 그런 남편을 만나냐고요. 그게 하느님이 결혼이라는 걸 우리에게 준 목적인 거예요. 이 땅에 천국에는 있지도 않은 그런 결혼이라는 제도를 준 목적이 그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성도라는 사람들까지도 이 땅에서 자기의 배우자를 찾는데 예수와 반대되는 스펙을 가진 이들을 찾아요. 아닙니까? 배우자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 기도 제목 갖고 와봐요 다들. 확인해 보게.ㅎㅎ 무슨 그런 기도가 다 있어 참나. 아니 기도 하나도 안 해도 저런 완벽한 사람을 하느님이.ㅎㅎ 우리 집 사람은 그냥 기도한 그대로 됐대요.ㅎㅎ 진짜예요.

 

그렇게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아버지와 그 하느님과 혼인하는 과정으로의 이 신앙생활을 사는 거예요. 근데 고대 때 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졌다 그랬죠? 남자가 먼저 부모를 떠나서, 아버지 엄마하고 같이 안 와요, 신랑이 먼저 밤에 신부의 집으로 가요. 가서 근데 언제 올지를 몰라. 그러니까 신부는 기다리고 있어요 밤에. 그래서 신랑이 오면 잔치가 칠일 간, 왜 또 칠인지 몰라. 칠일 간 계속 밤마다 열려요 잔치가. 그러면 그렇게 남자가 장인 장모가 있는 그 집으로 가는 걸 장가간다 라고 그래요. 그러면 거기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되냐면 잔치가 끝나고 바로 오는 게 아니라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장가에서 살아야 돼요. 그리고 첫 아이를 아들로 낳으면. 아들인지 딸인지 다 괜찮아요. 하여튼 아들, 씨를 낳으면 그 아이와 함께 시부모가 있는 시집으로 가서 거기서 계속 사는 거예요 인제. 그러면 이게 완성이에요 혼인의 완성.

 

그렇다면 반드시 우리의 혼인은 그 표적이 그 모예드라는 그 절기, 그 기간 동안에 그렇게 잘 이루어져서 그게 뭔지 그걸 언약으로 잘 알아서 이제 완성으로 돼야 되는 거죠. 그걸 내가 진리를 갖는다 라고 하잖아요. 그게 내가 씨를 갖는 거잖아요. 근데 잘 보세요. 표적이나 그런 절기나 이런 것들은 다 눈에 보이는 거죠? 역시 어두움입니다. 그거는요. 근데 그걸 그게 뭔지를 잘 알아서 그 혼인이 어떤 혼인인지를 잘 깨달아 알았어요. 그러면 그걸 내가 이제 진리로 가지면 그걸 누구에겐가 줄 수 있죠? 그게 뭐예요? 그게 날이예요 날, ‘’. 빛을 날이라 하자 할 때 욤, 이게 문자의 의미가 뭐냐면 진리를 주다 란 뜻이에요. 그게 징조 절기 일자 라고 돼 있어요. 성경은 의미로 보는 거라니까요 그렇게 껍데기로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알면 우리가 어두움에서, 징조와 절기라는 어두움에서 날, , 빛을 비추는 자가 되는 거예요. , 그리고 그렇게 어두움과 이 낮을 동시에 살죠? 짝으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동시에 살면 그걸 쉐님이라 그래요. 그걸 연합이라고 해 놨다니까요. 그러면 완성이잖아요.

이 땅에 어차피 우리는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어두움을 살아야 된다니까요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러나 여기에서 카이로스를 살면 그 양자를 사는 거죠? 그걸 쉐니라 그래요. 연합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오트, 모예드, , 쉐니는 반드시 넷으로 완성이 돼야 되는 거죠? 근데 그것이 뭣에 의해? 광명. 마오르에 의해 그 넷은 완성될 거야, 그 표적은 반드시 쉐니로 완성이 될 거야, 라는 게 넷의 날이에요. 그래서 유다가 넷의 아들인 거고, 그 유다가 깃발을 갖고 있는 거고, 그 깃발은 예수라는 표적, 깃발인데, 그것은 그 피는 그 물로 그 성령으로 우리에게 마음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거예요. 그게 이스라엘이죠. 바오로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끌어다가 로마서 910절을 쓰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자 그러니까 이런 거죠. 하느님은 어두움이라는 표적을 통해서 빛을 보아 아들이 되라고 우리에게 세상도 주시고 성전도 주시고 율법도 주시고 예수도 주셨어요. 그걸 다른 말로 언약이라고도 하고. 그 언약은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과의 그 연합, 혼인잔치를 목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렇게 어두움이라는 표적으로 통해서 하느님의 언약을 잘 깨달아 혼인잔치가 완성이 되면 그게 날, 욤 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어두움이라는 표적 속에 담긴 언약을 진리로 잘 깨달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동시에 사는 거고 그것이 바로 연한, 샤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넷이라는 광명, 마오르가 이루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표적으로 주신 그 열의 율법을 넷으로 준 거예요. 복음서도 마태 마르코 루가 요한 넷으로 준 거예요. 예수님도 겉옷을 넷으로 주시는 거예요. 그 넷은 반드시 완성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넷을 세상의 숫자라고 하기도 하고 그 성전을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이에요 여러분. 나중에 요한묵시록으로 가도 정사각형으로 돼 있고, 성경은 알면 그냥 하나로 뻥 뚫리게 돼 있어요. 하나도 어려운 게 없다니까요. 자꾸 수수께끼로 봐서 그렇지.

자 그렇게 이제 말씀이 완성이 되잖아요? 그러면 그게 말씀의 완성, 맴 타우 해서 무트 라고 해요. 그건 우리의 육이 죽는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완성이에요. 율법이 죽는 거예요.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고 율법이 나에 대하여 죽어 버리는 거예요. 진리로 깨달아지니까. 그 표적의 총화가 바로 예수라고 했잖아요 그렇죠? 그 예수를 히브리서 저자는 약속이라고도 하고 언약이라고도 하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 조상들을 통하여 설명된 것도 바로 그 예수잖아요.

그 아들은 율법으로도 설명이 되었고 성전으로도 설명이 되었고 그래서 예수가 그 성경이 나에 대해 기록한 거지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 내가 씨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게 그 진리라는 씨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 진리 앞에서 깨져야 할 표적이요 그릇들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런 것들을 표적으로 붙들고 있으면서 그걸 열심히 행하면 우리가 선민이다 라고 우기고 있었단 말이에요.

 

오늘날에도 그렇게 엉터리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마다 예배를 한다고 하고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찬양을 하고 언약을 이야기하고 약속을 말하고 기도를 하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를 한다고요. 근데 전부 껍데기로만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섬기고 예수의 하신 일만 찬송하고 그 율법을 그냥 지키려고 하고 그 성경에 나오는 그들을 롤모델을 삼으려고 하고 저 육적 이스라엘까지도 여전히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거예요. 표적으로만 보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들이.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놓고 열심히 그를 섬겨요. 그게 묵시록에 나오는 죽은 것 같았으나 살아난 짐승으로서의 예수예요. 예수님이 그렇게 오해된 예수를 뭐라고 부르셨는지 아세요? 당신이 세상 임금으로 죽겠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좀 있다 뭐라 그러시냐면 세상 임금이 다시 올 거라 그래요. 무슨 말이에요? 어떤 이들에게는 죽은 내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보여지지 않고 여전히 세상 임금으로 보여질 거라는 거예요. 세상 죄를 짊어지고 죽었는데 그게 세상 임금이지 뭐예요. 근데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세상 임금으로 보일 거라는 겁니다. 그들이 죽은 예수를 살려 놓고 섬기는 예수예요. 여러분 죽은 이를 다시 만지면, 그리고 그가 묻힌 곳이 성전이죠?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전부 그 조상들이 막벨라 굴, 양 우리 라는 뜻이에요, 그 성전에 다 묻히는 거예요. 당연히 예수도 거기 묻히죠? 유대인들은 그렇게 부모가 됐던 누가 됐던 무덤을 한번 쓰면 거기는 다시 가면 안 돼요. 만져도 안돼요. 그래서 혹시 지나가다가, 이렇게 평토장을 해 봤거든요, 그러니까 혹시 밟을 수 있으니까 회칠을 해 놨다니까요 이렇게 안 밟으려고.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열심을 회칠한 무덤아 이렇게 이야기해요. 밟으면 어떻고 안 밟으면 어떻고. 그런데 메시지가 있단 말이에요. 죽은 건 다시 만지면 안 된다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서 생명으로 살아서 우리에게 온 것이지 십자가 진 그 예수로 다시 살아난 게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전부 거기에 감동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 감동은 쉽게 또 사라져요 지속되지도 않고. 그게 인간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그래요 세상 임금이 올 건데 그 세상 임금은 나와 아무 상관없다 그런다고요. 그게 어떻게 너희의 구원자가 되겠냐 그랬다니까요. 그럼 우리가 자꾸 이렇게 국어사전적 의미로만 성경을 보니까 세상 임금 그러면 무조건 사탄 마귀, 뱀 그러면 그럼 그게 마귀새끼지 뭐. 다 이렇게만 알아요.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구별될 수 있는 거면 누가 속냐고요.

 

자 생각해 보세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씨였어요 씨. 그건 아들도 아니에요 그냥 씨라니까요. 제라가 뭐냐면, 내 안에 있는 생명, 진리의 말씀 하느님이신 그 말씀 그 진리를 이야기하는,, 그게 씨예요. 근데 그걸 그 아버지를 이 유한 존재 절망적 한계 이 실존이 못 받으니까 아들이라는 것 안에 넣어서 준 거 아닙니까 그게 약속의 후손 이사악이죠. 그러니까 이사악은 아버지를 닮고 온,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 씨를 설명하기 위해 하느님이 눈에 보이는 아래 것으로 준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그걸로 그 아버지를 알았어요. 아브라함이 안다니까요 창세기 21장에서 그래서 브엘셰바로 딱 찍어 버리고 그러니까 하느님이 그러면 이제 그거 네가 아버지를 알았으니 너의 백세에 나은 그 섬김의 대상인 그 아들 죽여라 그 아버지가 더 중요한 거니까. 그거 알라고 우리에게 자식들도 허락하시는 거예요. 그 자식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죠?

하느님은 가족들을 끊어내라고 준 거라니까요. 그래서 검을 주러 왔다라고 주님이 하시고는 그 검으로 제일 먼저 끊어낸 게 그 관계였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거를 우리에게 알라고 준 거예요. 그래서 그걸 알았으면 이제 그거는 당연히 나의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그럼 그 아버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아버지가 나에게 허락하신 아들이네 그러면 내가 아들을 섬겨야 돼요? 근데 하느님이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이신 예수 안에 아버지를 담아 이 땅에 보내셨어요. 그래서 주님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아들이 우리에게 지금 그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주신 예수잖아요. 그러면 알았어요 내가 그 아버지를 알았어요. 진리를 깨달아 알았으면 그 아들은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이 아들이듯 내 아들인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렇게 내가 나은 아들이 되지 않으면 예수가 내가 나은 그 아들이 되지 않으면 그는 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니까요. 그냥 표적이지. 그럼 그 예수가 내 아들이 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걸 섬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그래서 우리에게 씨를 가져라 아들을 낳아라 하는 거예요. 어떤 아들? 예수라는 아들을 낳으라는 거라니까요. 그래야 내가 씨를 갖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덟의 때가 되면 그 아들을 할례 해 버리는 거예요 죽여 버리는 거라니까.

 

그래서 하느님이 니고데모에게도 성령은 소리는 들리지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거야. 근데 흔적은 남지 않냐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다 이러하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자, 아 모르겠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지금 보인다는 거예요. 하느님이 성령으로 눈을 뜨게 해 주는 거예요. 표적,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봐야 다 쓰레기인 겁니다. 아무리 많은 기적 체험해 봐야 허탈하기만 하지. 그게 여러분의 신앙에 무슨 도움이 되던가요?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죠? 그 짜릿했던 전율이. ㅎㅎ

자 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렇게 표적을 그 진리로 우리 마음으로 주는 것이. 근데 주님이 그 성령을 생수라고 했습니다. 배에서 성전에서. 코일리아가 성전이니까 성전에서 흐르는 생수. 그러면 그 성령의 물이 넷으로 흐르던 어떤 곳이 있었죠. 에덴 아닙니까? 그게 모예드의 그 에덴이라 그랬죠? 정한 때, 정한 때에 어떤 그 때에, 주님이 늘 말씀하신 때가 되지 않았으니. 그때에 성령이 물로 오시죠? 그러면 에덴의 그 네 강의 이야기도 그 이야기겠네요. 표적과 진리의 이야기.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하느님 세상은 표적을 보고 광분하고 그 표적을 또 보여 달라고 그러고 있지만 하느님 우리는 그 표적의 의미를 알기에 더 이상 표적에 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 그렇게 표적이 깨지고 그 안의 내용이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로 새겨지게 된 이 엄청난 기적과 은혜를 마음 깊이 찬송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기서 로마서 해설을 접습니다. ? 그분이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지급까지 설교내용 잘 복습하셔서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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