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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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과 함께하는 그 배려만이 / 부활 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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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9-05-16 ㅣ No.12971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떤 이가 너무너무 용을 좋아했단다. 용 그림은 물론이고, 가구와 장식품에도 온통 용 문양을 새길만한 곳곳에 다 새겼단다. 수저와 술잔도 용 문양이 없으면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니 가히 그 정도가 짐작이 든다. 정원에도 죄다 용 조각한 작품으로 진열하였고, 심지어는 연못까지도 용을 꼭 닮은 그 모습이었단다. 이렇게 집 안팎이 그야말로 용으로 치장되었다. 이에 하늘의 진짜 용이 이 소문에 가만히 내려와서는 그 집 정원에 섰다.

 

마침 용만을 좋아한 그이가 그곳에 나왔다가 그 진짜 용을 봤다. 처음에는 그런가하였지만 용이 꼬리를 살짝 흔들자 이게 웬일인가라며 벌벌 떨면서 사색이었단다. 그러더니 그만 걸음아, 날 살려라.’라며 줄행랑이었다나. 그토록 그가 기대한 좋아한 용이 왔는데도 왜? 이는 그가 좋아했던 것은 진짜 용이 아닌 용 그림자였다. 그는 다만 용에 대한 심미안을 인정받길 바랄 뿐, 아니, 용 좋아한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그것만을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유다인들도 매한가지, 메시아를 그토록 갈망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오시니까 모른 척 오리발이다. 그 예수님은 당신을 믿어야만,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겸손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발을 씻어주신 다음 이렇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나는 나를 파견한 이보다는 결코 높지 않다. 오로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만이 정녕 행복하다.”(요한 13,16-17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발을 씻어 주셨다. 사람의 몸 가운데 가장 밑에 있는 더러운 부위가 발바닥이다. 매우 소중하면서도 그리 대우받지 못하는 게 발, 그런 발을 몸을 굽히시어 씻어 주신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함의 극치라 하겠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는 자세가 아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일 게다. 요즘 서비스 업종의 직원들이 고객을 극진히 섬기는 모습을 종종 본다. 어디를 가나 때론 과도하다 싶을 정도일 때도 있다.

 

이처럼 섬기는 이 모습과 분위기는 합당하고 아름답다. 그런데 과연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에서도 이런 섬기는 분위기가 있는가라고 물으면 다소 씁쓸해진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섬김의 문화라기보다는 군림의 문화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에 그럴 수도. 따라서 그만큼 우리 사회에 은연중 군림하고자 하는 천박함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게다.

 

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허영심으로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리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군림하는 것이 아닌 섬기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최후 만찬 때 제자들 발을 몸소 씻어 주셨다. 그리고 참 행복은 이렇게 주는 것,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섬기는 것이란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에는 부모 잘 만난건지는 모르지만, 가끔 돈과 그 힘을 섬기면서 약자를 무시하면서까지, ‘비굴한 만족을 추구하는 작자가 쾌나 있는 것 같더이다. 언젠가 개망신 당할 그들이다.

 

암튼 선택은 우리 몫이다. 예수님 사랑은 제자의 배반까지도 승화시켰다. 유다는 떠나지만 스승은 전혀 이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 뜻으로 받아들이셨다. 우리도 사랑하고 겸손해야 할 그분 제자이다. 신앙은 한 번으로 끝나는 행위가 아닌, 끝없는 겸손이 만들어 낸 배려의 과정이다. 이것들은 가슴에 늘 담아야만 가능하다. 그리하면 언제나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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