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2일 (일)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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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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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05-17 ㅣ No.129738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길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옛것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이유를 알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면 기억이 떠오른 경험이 있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문제가 생기면 자꾸 만지기보다는 전원을 껐다 켜면 문제가 해결되는 일도 있습니다.

 

김길수 교수님의 하늘로 가는 나그네를 읽으면서 온고이지신의 뜻을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초대교회에는 있었습니다. 정하상 성인은 사제를 모시기 위해서 북경을 아홉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사제가 없는 교회를 영적으로 굶주린 교회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정하상 성인의 간절한 편지는 로마의 교황님께 전달되었고, 교황님은 한국에 사제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오랜 박해도, 사제가 없는 영적인 목마름도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 사제의 부족, 지리적인 문제, 박해의 문제로 선뜻 한국으로 사제를 파견하지 못할 때 자원해서 한국으로 오겠다고 하신 분이 있습니다. 한국의 초대 교구장인 부르기에르 주교입니다. 재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제가 부족하다면 본인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지리적인 문제보다는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박해를 받아서 순교한다면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한국 땅을 밟지는 못하고 순직하였지만, 부르기에르 주교님의 열정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은 파리 외방 전교회 사제들이 한국으로 오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 진리, 생명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산에 오를 때 먼저 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작은 표시는 큰 힘이 됩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은 먼저 간 사람들의 땀과 노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 사랑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군중들의 모욕이 있었고, 제자들의 배신이 있었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부활의 길이었고, 희망의 길이었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공식을 알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었습니다. 원리와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지도와 나침판을 가지고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유가 없는 진리는 때로 독선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광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참된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독점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압니다. 진리는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작됩니다. 알은 깨어지는 아픔을 거쳐야만 비로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야만 비로소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고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순교하였지만, 교회는 온 세상으로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 명예, 성공을 추구하는 생명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생명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생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는 생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참된 생명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로마의 철학자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를 믿는 이웃들과 평화롭게 융화하면서 살면 안 되는가.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별을 바라보며, 같은 별을 딛고 사는 동승객인데, 궁극의 진리를 찾기 위해 각자가 어떤 길을 가든 그게 무슨 대수인가. 존재의 신비는 너무나도 심원해 답에 이르는 길이 없거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과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신앙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말로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고백하면서 행동은 다른 길을 찾고, 다른 진리를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 항해하는 배를 안내하는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밝은 빛으로 안내할 뿐입니다. 밤길을 안내하는 등대도 배가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등대는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등대가 밝히는 빛을 따라서 암초를 피하고,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우리의 온고이지신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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