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9일 (화)
(녹)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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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박희순,남명혁,권득인님의 순교 (순교일; 5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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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욱 [uiuihhh8] 쪽지 캡슐

2019-05-23 ㅣ No.129876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5월24일(금) 음4/20

박희순,남명혁,권득인순교하신 날

 

         
  

 

          

 

 

 


 

 


  성녀 박희순 루치아

 
관련성지서소문 밖순교일

1839.5.24

 







 

   

동정녀이며 순교자인 박희순 루치아님은
뛰어난 미모와 재주 때문에 어려서 궁녀로 뽑혀 궁궐에 들어갔으나,
어린 순조의 유혹을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 그 명성이 세간에 널리 퍼졌다.
 
30세경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하였으나
궁녀의 신분으로는 신앙 생활이 어려워 병을 핑계로 궁궐을 나왔다.
그 뒤로 조카의 집에 살면서 언니 박 큰아기님과 조카의 식구들을 입교시켰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자

박희순님은 조카의 가족들과 함께 전경협(全敬俠)님의 집으로 피신하였으나

4월 15일 전경협님의 집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함께 체포된 많은 사람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였으나
박희순님은 언니 그리고 전경협님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또한 다리가 부러지고 골수가 흐르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교우들에게 권면의 편지를 써 보내 교우들을 감동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열정적인 신앙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 낸 박희순님은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39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아름다운 용모의 궁녀로서 왕의 유혹을 물리치고 30세에 입교하여

출궁으로 신앙과 동정녀의 길을 지키다가

       

전경협님 집에서 체포되어 다리가 부러져 골수가 흘러내리는 모진 고통 끝에

언니 박 큰아기님, 전경협님과 같은 해에

순교의 월계관을 쓰신

39세의 동정 순교자 성 박희순 루치아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주님 사랑의 지고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성 남명혁 다미아노

관련성지서소문 밖순교일

1839.5.24

 

 

  

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님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님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 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님을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광헌 님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리기를 바랐던 남명혁님은

한창나이인 38세에 자신의 뜻대로 순교하셨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방만했던 젊은 시절을 정리하고

이광헌 님과 함께 회장직을 수행하다가

   

3개월 후에 순교한 아내 이 연희 마리아님에게

천국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남기고 장렬히 순교하신
성 남명혁 다미아노 님이시여
       
묵은 삶을 과감히 정리하고 믿음의 기쁨에 몰입한

님의 용기를 본받을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성 권득인 베드로

관련성지서소문 밖순교일1839.5.24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님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읜 뒤 혼인하였다.
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聖物)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 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권득인님은 1839년 1월 16일 아내, 처남, 어린 자녀 등 4명의 가족
그리고 김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그의 신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뒤에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권득인님은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 뒤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주교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성물 성패를 만들어 팔며 가난하게 살았으나

새벽마다 촛불을 켜고 기도드렸던 태중교우

       

아내, 처남, 어린 자녀 등 가족들이 고문의 고통을 못이겨 배교했을 때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글을 남기고

35세에 주님만을 의지하며 순교한 성 권득인 베드로 님이시여

주님을 향한 길에서 세속의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 없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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