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 |
---|
※ 아름다운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 ! 1929년 벨기에 브뤼셀의 한 병원. "우리 딸이 며칠 전부터 심하게 기침을 합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마른기침을 숙직 의사는 청진기로 이리저리 "단순한 감기가 아닙니다. 백일해입니다" 기관지 폐렴이나 폐에 공기가 들어가지 의사의 말에 아기의 엄마는 "선생님, 꼭 좀 살려주세요. 다행히도 아기는 의사와 엄마의 하지만 걸음마도 떼기 전에 죽음의 문턱을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 열 살이 나치 추종자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고 아이는 이때부터 "난 발레리나가 될 거야" 하지만 170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키가 문제였다. 발레리나는 신체적인 조건으로 이룰 수 헵번은 짐을 꾸려 영국으로 건너갔다. 우연히 브로드웨이 연극 〈지지〉에 캐스팅이 되었다. 오드리 헵번의 사실상 데뷔작 〈로마의 휴일〉은 공주 역을 맡았던 <오드리 헵번>과 신문기자 역의 <그레고리 팩>은 외모뿐만아니라 뛰어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후 〈사브리나><전쟁과 평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1989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에서 우정 출연으로 등장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영회는 오드리 햄번의 공식적인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제2막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해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되었다. 그녀는 유니세프를 찾아갔다. 헵번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전쟁 피해 아동의 구호와 저개발국 아동의 복지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연합 특별기구인 유니세프는 백일해 때문에 죽음을 경험했던 오드리 헵번에게 숙명처럼 다가왔다. 보수는 1년에 1달러뿐이었고 교통비와 숙박비 외에는 아무 것도 제공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열정을 다해 헌신했다. "오드리 헵번이 인기가 떨어지니까 별 쇼를 다하는구만." 과거의 은막 스타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 이들의 슬픈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곤경과 죽음에 처한 아이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발길은 아프리카 전 지역을 비롯해 비행기를 타고 버스로 이동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녀의 끝없는 행보에 언론과 병에 걸린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만지고 고통 앞에 각국에서 구호물자와 기부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992년 소말리아를 방문했을 때 마을 공터 그건 다름 아닌 아이들의 시체였다. 그 순간부터 오드리 헵번은 소말리아에 그리고 언론을 향해 소말리아 어린이들에게 방문하기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것이 두려워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녀는 아랫배에 강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진통제를 맞으며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오드리 햄번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명망 있는 의사들이 앞 다투어 그녀를 살려보겠다고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오드리 헵번은 고개를 떨군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걸요. 그래, 신이 제게 주신 시간이 얼마쯤 남았지요?" "한 3개월쯤 남았습니다." 오드리 헵번의 암소식이 알려졌을 때 누군가가 물었다. 오드리 헵번이 대답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 오드리 헵번은 은퇴 후 오랫동안 살았던 보냈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그녀는 기족들을 불러 모았다.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히루에 한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1993년 1월 20일, 그녀는 눈을 감았다. 향년 63세였다. 그날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던 날이었지만 그를 조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티파니 보석가게는 일간지에 광고를 싣고 전 세계의 매장에 다음과 같은 글을 붙였다. "오드리 헵번. 1929 ~ 1993. 우리의 영원한 친구. 티파니 사."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류애를 실천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2004년 2월에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루를 그냥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하지 않고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