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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16,1-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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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6-27 ㅣ No.130644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16,1-2.15-16)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하가르가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줄 때,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 살이었다."  (15-16)


성경에는 하가르가 아브람에게 다시 돌아갔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아브람이 지어주었다는 창세기 16장 15절의 기록을 보면, 하가르는 주님의 천사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브람에게 즉각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가르는 주님의 천사를 만난 사실을 아브람에게 소상히 이야기했고, 아브람도 이를 받아들여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로 지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스마엘을 이름 지을 때 창세기 16장 15절은 '뻬노'(beno) '그의 아들'(his son)이란 표현을 써서,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그의 아들로 여겼음을 확인해 준다.

이것을 볼 때 여종 하가르의 몸을 빌려 자녀를 얻자는 사라이의 인간적인 생각에 의해 시작된 아브람 가문의 분쟁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해결되었다.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 살이었다'  (16)

 

창세기 12장 4절에서 아브람의 나이가 일흔다섯 살로 소개되어 나온 이후 두번 째로 그의 나이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물론 창세기 16장 3절의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의 내용을 보아서,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람의 나이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로서는 이스마엘을 낳은 아브람의 나이를 분명히 명시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86이라는 숫자가 히브리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히브리인의 개념에서 완전함을 나타내는 3,7,10 이라는 숫자와는 별개의 숫자들이 조합된 86이란 숫자는 이스마엘을 출산할 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면에 아브라함이 백 살 되던 해에 이루어진 이사악의 출생(창세21,5)은 약속의 씨가 완전함을 상징하는 '10'이란 숫자가 연결되어 이것이 큰 의미를 지닌 사건임을  암시한다.

 

굳이 '86'이란 숫자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쉐쉬'(sheshi; 6)란 숫자이다. 이것은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 '7'에 미치지 못하는 숫자로서 완전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만일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가지는 의미와 약속의 씨의 출생이 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독자는 분명 '86'이라는 숫자 다음에 올 수 있는 의미있는 숫자로 이루어질 아브라함의 나이를 기대할 것이고, 그것이 곧 '100'이라는 숫자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사악의 출생이 예고된 창세기 17장 1절이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었음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러한 추정은 신빙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7;2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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