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자유게시판

★ 은혜는 약속의 통로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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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찬 [jesus_maria] 쪽지 캡슐

2019-07-11 ㅣ No.218274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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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은혜는 약속의 통로로 흐른다


우리에겐 아직도 정복해야 할 많은 땅이 남아 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주님처럼 되기를 원하신다. 그렇기에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을 방해하고 망치려 하는 모든 것을 뿌리 뽑기 원하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고 꿈꿔 보지도 못한 방식으로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축복하기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괴롭히는 염려와 걱정들을 제거하고 싶어하신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고 우리를 소생시키기 원하신다.

우리가 이러한 복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하느님이 이 일들을 친히 이루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같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에게 힘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이셨다. 우리 역시 그분을 힘의 근원으로 삼고, 하느님의 약속을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느님의 은혜는 그분의 약속의 통로를 따라 흘러들어 올 것이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일들을 먼저 우리에게 행하셔야 우리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의 근원이시며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 “풍성한 축복” 중에서 / 짐 심발라 )






조롱을 당하시는 가시관 임금님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포악한 자들이 나를 구타하다 지쳤는지, 가시나무 가지를 왕관 모양으로 만들어 나의 머리 위에 눌러 씌었다. 그리고 내 주변에 둘러서서, "유다인의 왕, 만세!"라고 소리지르며 나를 조롱하였다. 심지어는 가시관에 찔려 피가 흐르고 있는 나의 머리를 때려, 고통에 고통을 더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 여론의 노예 되어 있는 영혼들, 자존심 때문에 교만으로 남을 업신여기는 죄에 빠진 영혼들을 위해, 나는 가시관의 고통을 감수하였다. 자신들을 낮추기를 거부하는 영혼들, 그들의 교만과 오기를 대신 보속하기 위해 가시관의 고통을 참아 받았다.

어떠한 길을 가던지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길이라면 그 길은 절대로 비천한 길이 아니다. 너희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합리화 시킨다면, 그 길은 하느님의 뜻에 배치되는 그릇된 길이다. 이러한 길에는 헛수고만 하고 있을 뿐, 진정한 즐거움도 평화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분의 지시에 따라 실천할 때에만, 진정한 즐거움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마음속의 욕구를 성찰하고 지난 생활을 반성하여, 참된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영혼들에게 말하겠다. 이 영혼들은 그 동안 시도해 왔던 신심생활에서 굳건한 그리스도적인 덕성과 신앙인으로서의 의무에 따른 습성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타성에 젖기 시작하면서, 허영과 교만 때문에 차츰 차츰 그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이 영혼들은 세상 사람 앞에서 유명하고 부유해 지고 싶을 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높은 지위에 서고 싶어한다. 이런 욕구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 한 결과로 하느님께로 향하던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은밀한 야심에 부합하는 것만 찾게 된다.

오! 이런 일에 눈이 멀고 말다니, 이처럼 무지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나는 이런 영혼들에게 이 세상에서조차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겠다.

완덕에 나아가라고 내가 특별히 부른 영혼들에게 말하겠다. 이들 중에는 나의 뜻을 따르고 이행하겠다고 하면서, 나의 머리에서 가시관을 벗겨주기는커녕, 쓰고있는 가시관을 더 눌러 씌워, 그 가시가 내 머리 속에 깊게 박히게 하는 영혼들을 자주 본다.
이런 영혼들은 허망한 꿈에 사로잡혀, 은혜를 배은 망덕으로 갚는 영혼이다. 그러나 나의 바람대로 따라주는 영혼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을 알아주고, 그들을 사랑해 주듯이, 그들도 나를 알아주고, 나를 사랑해 준다.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여, 그들이 성덕(聖德)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내가 그들을 인도하는 곳은 바로 나의 마음속이다. 나의 마음을 그들에게 열어주면, 그들은 나의 성심 안에서 나를 더욱 더 사랑하게 될 것이며, 많은 영혼들을 나의 성심 안으로 끌어올 것이다.

그러나 이 영혼들이 혹시라도 감추고 있던 교만과 추악한 사심을 드러내어, 헛된 일에만 정신을 쏟고, 내 사랑의 길에서 이탈한다면, 이런 행위는 나를 철저히 기만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격이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느냐?

내가 선택한 영혼들아!
나의 사랑이 인도하는 길을 가지 않겠다고 교만스럽게 거부하고, 나의 은총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있으면서, 어떻게 나의 뜻을 준수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느냐?






성체 성사 앞에서의 기도문들- 영성체 전후에


"그리고 그들은 엎드려서 그분을 경배하였다" (마태오 2,11)


[영성체 전의 준비 기도]

신앙 -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여,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께서 제대 위의 성사 안에 참으로 현존하심을 믿나이다.  지고하신 진리이신, 흠숭하올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그대로 믿나이다. 성체 성사 안에 계신 당신께 성 베드로 사도와 함께 이렇게 고백하나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나이다."

흠숭 - 나는 당신을 흠숭하며 당신을 나의 창조자, 주인, 구속자, 그리고 나의 가장 높으시고 유일하신 하느님으로써 인정하나이다.

희망 - 오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 전체를 이 신성한 성사를 통하여 나에게 주셨으니,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은총들을 허락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사랑 - 오 주님, 당신께서는 무한히 사랑스러우신 하느님이시니 당신을 모든 것 위에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나이다.  지금까지 당신을 너무나 적게 사랑하였음을 용서하소서. 나는 대천사의 불타는 열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나이다.  그보다 더 당신의 어머니이시며 나의 어머니이신 티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과 함께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나이다. 오 예수님, 또한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나의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나이다.

겸손 - 오 예수님, 나는 당신을 받아 모시기에 합당치 못하나이다. 그러나 한 말씀만 하소서, 나의 영혼이 곧 낫겠나이다.

애통 - 오 예수님, 당신 앞에 나아가기 전에 나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다시 비나이다.  그다지도 사악했으며 당신을 수없이 거스렸던 나를 당신께서는 죽기까지 사랑하셨나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용서하여 주소서!  당신의 은총으로써 가장 미소한 죄의 때까지도 씻어 주소서.  나는 당신을 합당하게 모시기 위하여 천사와 같은 순결함으로써 당신께 나아가기를 원하나이다.

원의 - 나의 하느님, 나의 영혼 안에 오셔서 거룩하게 하여 주소서. 나의 하느님, 나의 마음 안에 오셔서 정결하게 하여 주소서. 나의 하느님 나의 육신 안에 오셔서 지켜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떨어져나가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보시기에 당신의 현존에 합당치 않은 모든 것 그리고 당신의 은총과 사랑에 장애되는 모든 것을 내 안으로부터 없애어 주소서.

잠시 후에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실 것을 기억하자. 이 순간이 오늘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장엄한 순간이다. 나 자신을 잘 준비하자.  예수님께 그분께 대한 사랑과 원의가 열절한 마음을 드리자.  이 큰 선물을 받을 자격이 나에게는 없음을 잘 기억하자. 그리고 나의 영혼이 대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상태에서 영성체를 하지 않도록 하자.  비록 통회를 했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고해를 하지 않고 영성체하는 것은 무서운 독성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영성체는 미사 중에 하도록 하자.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미사 외에서도 성체를 모실 수 있다 (영성체 예절이 거행되는 곳에서). 그리하여 단 하루도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 열절한 영성체가 가져다주는 열매들을 기억하자: 
(1) 내 안에 성화 은총을 지켜주고 증가시켜 준다, 
(2) 소죄들을 사해준다, 
(3) 대죄의 위험들로부터 보호해준다, 
(4) 애덕을 증가시켜주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강하게 해주어 위로와 기쁨을 준다
.


[영성체 후의 감사 기도]

이제 예수님께서는 나의 안에 오셨다.  나는 살아있는 감실이 되었다. 침착하게 계속하여 주님을 흠숭하자.  그분을 소유함에 대한 나의 기쁨을 그분께 표현해 드리자.  그분께 마음을 열고, 최소한 15분 간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그분과 대화하자.


기도

오 예수님,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 앞에서 나는 깊이 감동하며 감사의 정에 가득차 있나이다.  나는 이 말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나이다: 
"나는 당신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그러나 오 주님, 당신의 선물에 대하여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나이까?"
나에게는 당신의 감미로운 음성이 거듭 들려오나이다. 
"나의 아들(딸)아, 나에게 너의 마음을 주렴" (잠언 23,26).  예, 주님, 나는 당신께 나의 마음과 나의 영혼을 바쳐드리나이다.  나는 당신께 나의 생 전체를 봉헌하나이다.  나는 당신께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속해 있기만을 원하나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착하시고 어지신 예수여, 굽어보소서.  주의 어전에 부복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간구하오니, 신, 망, 애 삼덕의 뜨거운 정과, 범한 죄를 뉘우치는 참다운 통회와, 아울러 행실을 고치려는 굳은 뜻을 내 마음 속에 박아 주소서.  착하신 예수여, 일찍이 주를 대신하여, "그들이 내 손발에 구멍을 내고 내 뼈를 전부 세어 보았도다." 한 예언자 다윗의 말을 생각하고, 깊은 감동과 애통한 마음으로 주의 다섯 상처를 바라보며 묵상하나이다. (대사를 얻기 위하여 영성체 후에 이 기도를 바치고 교황의 지향을 위하여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각 한 번씩을 바칠 것)


The Anima Christi (그리스도의 영혼)

그리스도의 영혼은 나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육신은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혈은 나를 취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늑방에서 흐르는 물은 나를 씻어주소서.
그리스도의 수난은 나를 위로하여 주소서.
오 좋으신 예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나를 당신께로부터 내치지 마소서.
사악한 원수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소서.
나의 임종 때에 나를 불러주시며 당신 곁으로 오라고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성인들과 함께 영원히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성 보나벤뚜라의 기도

오 지극히 감미로우신 예수님, 나의 영혼 가장 깊은 곳을 당신의 사랑으로 인한 지극히 감미롭고 유익한 상처로써 꿰뚫어주시며, 참되고 진정하고 사도적이고 가장 거룩한 애덕으로써 꿰뚫어주소서. 그리하여 나의 영혼이 당신과 당신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며 지치게 하소서.  나의 영혼이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당신께서 오셔서 머무시기를 갈망함으로 인하여 기진하게 하소서.  나의 영혼이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당신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하게 하소서.

천사들의 빵이시며, 거룩한 영혼들에게 새 힘을 주며, 매일 우리에게 힘을 주며 그 안에 모든 감미로움과 모든 기쁨을 담고있는 당신을 갈망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천사들이 바라보기를 갈망하는 당신만을 모시기를 원하게 하시며, 내 영혼이 당신과 당신의 감미로움으로만 채워지게 하소서.  생명의 샘이시며,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시며, 영원한 빛의 근원이시며, 모든 기쁨의 파도이시며, 하느님의 집 안의 보물이신 당신만을 원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만을 열절히 원하게 하시며, 당신을 찾게 하시며, 당신을 묵상하게 하시며, 당신께 대하여 말하게 하시며, 모든 것을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만 하게 하소서.  겸손과 분별과 사랑과 기쁨과 다정함과 끝까지 인내함을 가지고 그렇게 하게 하소서.

항상 당신께서만 나의 희망, 나의 전적인 신뢰, 나의 부유함, 나의 기쁨, 나의 행복, 나의 휴식, 그리고 나의 안정이 되게 하소서.  나의 평화가 되시며, 나의 감미로움, 나의 향기, 나의 음식, 나의 영양분, 나의 피난처, 나의 소유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나의 정신과 나의 마음이 영원히 확고부동하게 머물러있는 나의 보물이 되소서.  아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

오 거룩하신 주님, 전능하신 아버지, 영원하신 하느님!  
나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의 크신 자비로 인하여 죄인이며 당신의 부족한 종인 나를 당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하신 몸과 피로써 양육하여 주시니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비오니, 이 영성체가 나에게 단죄함이 되지 않고 용서를 가져다주는 구원이 되게 하소서.  나에게 신앙의 갑옷이 되고 좋은 지향의 방패가 되게 하소서.  내 안의 모든 사악함과 욕정이 소멸되며 애덕과 인내와 겸손과 순명과 그 밖의 모든 덕이 자라나게 하소서.  
영성체를 통하여 나의 원수들이 만들어놓은 볼 수 있고 볼 수 없는 모든 함정들로부터 보호하여 주시며, 나의 육적, 영적인 모든 나쁜 충동들을 진정시켜주소서.  영성체로 인하여 나로 하여금 오직 한 분 뿐이신 참 하느님이신 당신께 굳세게 집착하며, 나의 임종을 거룩하고 행복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죄인인 나를 당신께서 당신 성자와 성령과 함께 모든 성인들에게 참 빛과 완전한 만족과 영원한 기쁨과 순수한 즐거움과 완전한 행복이 되시는 그 표현할 수 없는 연회에로 불러주시기를 비나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갇혀 계신 하느님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나의 마음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을 계속 이야기 하겠다.
나의 마음은 나를 따르는 많은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이들도 나와 함께 고통의 길을 가려한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이 영혼들이 사람들로부터 고통과 멸시를 당하면서도 평온한 마음을 잃지 않고 그 고통을 참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박해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법을 나로부터 배워 실천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박해하던 영혼들을 위해 나를 희생한 것과 같이, 이들도 자신들을 박해하는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고 있었다.

이런 영혼들을 보자. 
나의 성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겠다는 열의로 가득 찼다. 악의 무리들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고 외로운 가운데 내던져져 있었지만, 나의 성심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었고, 침범 당한 하느님의 영광을 보상하기 위해 기꺼이 나를 바쳤다.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속적인 생활을 단절하고, 스스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는 영혼들아!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하거나, 적대시하여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막한 이 시각에도 큰소리로 야유하며 악을 쓰고 있는 자들 때문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이럴수록 너희 마음을 유일하신 하느님과 더욱 더 밀접하게 결합시켜, 죄악 때문에 손상을 입으신 하느님의 영광을 보상하는 일에 매진하여라.


나의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그 다음날 아침, 가야파는 자기 수하들에게 나를 빌라도의 관저로 호송하라고 명령하였다.  빌라도가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할 심산이었다. 빌라도는 나를 처벌할 구실을 찾으려고 나를 심문하였으나,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는 내 문제에 손을 떼려고, 자기 군사들에게 나를 헤로데에게 압송하라고 명령하였다.

빌라도와 같은 영혼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신들의 사욕(邪慾)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영혼이다. 선택해야 할 시점에 눈을 감아 소경 행세를 하며, 자기 체면과 이기주의에 빠져 하느님의 은총 밖으로 밀려난 영혼들이다.

헤로데가 이것저것 캐어물었을 때에, 나는 일언반구도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빌라도가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담담하면서도 단호하게 "그것은 네 말이다. 그러나 나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너희 영혼들도 너희를 괴롭히는 자들이 너희를 다그치고 비하할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할 줄 알아야 한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환대나 호의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본 고향으로 돌아간다. 본 고향으로 돌아 갈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 무어라 하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다. 세상 평판에 연연하지 않고, 은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은총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나 혼자 이 일하기가 벅차면, 하느님께 도움을 간청하고, 하느님께 의견을 여쭙겠다.

나만의 이익과 편의만을 중시하는 이기심과 탐욕스러운 마음은 나를 악의 길로 유도하여, 결국에 가서는 나의 두 눈을 멀게 하고,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시는 분 ; 사제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2티모테오 3,17)이다.

우리를 위하여 성체 성사를 준비하고 우리 주님을 우리에게 주는 분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사제이다.  만약 사제가 없다면, 미사 성제도 있을 수 없고, 영성체도 있을 수 없으며, 감실 안애서의 예수님의 현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사제란 어떤 분인가? 그는 "하느님의 사람"(2티모테오3,17)이다. 사제가 될 사람을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매우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분은 하느님 뿐이시다.  
"아무도 이 영예를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히브리 5,4).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로마 1,1) 그를 다른 모든 이들로부터 따로 가려내신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영원히 지속되는 거룩한 인호(印號)를 주시어 그를 "영원한 사제"(히브리 5,6)로 만드신다.  그리하여 그가 하느님의 일만을 위하여 완전히 봉헌되도록 사제로써의 임무를 위한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부여해주신다. 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일을 맡고 있다. 그것은 그가 예물과 속죄의 제사를 바치기 위함이다" (히브리 5,1-2).


동정이며, 가난하며,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서품을 통하여 사제는 영혼과 육신이 다 봉헌된다.  그는 하느님이신 사제, 즉 예수님을 닮아 완전히 신성한 존재로 된다.  그리하여 사제는 참으로 예수님의 연장(延長)이 되며 예수님의 성소(聖召)와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구속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들, 즉 하느님을 예배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의 일을 수행하게 된다. 그의 삶에 있어서 그는 예수님의 삶, 즉 동정이셨고, 가난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그분의 삶을 완전히 재현하도록 불림받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예수님과 같게 함으로써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공복(公僕)"(로마15,16)이 되며 "영혼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이"(마태오 28,20)가 되는 것이다.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썼다. "어제까지만 해도 백성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가 그들의 주인이 되고, 그들의 윗사람이 되며, 거룩한 것들에 대한 스승이 되고, 신성한 신비들에 있어서의 지도자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천주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서이다. 왜냐 하면, "사람에게 사제직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나, 천사나, 대천사나, 그 어떤 피조물의 힘이 아니라 천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령께서 사제의 영혼을 예수님의 모상이 되게 하시며, 사제가 예수님의 일을 하게끔 능력을 주시어 "제대 앞에 선 사제는 예수님과 동일한 위격(位格) 안에서 예수님의 임무를 행하게 되며"(성 치쁘리언),  "하느님의 일이 전적으로 그에게 위탁되어 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러므로 사제의 존엄성에 대하여 "천상적이다"(카씨언), "무한하다"(성 에프렘), "모든 위대함의 절정이다"(성 이냐시오 순교자), "천사들에 의해 사랑으로 존경된다" (성 그레고리오 나지안젠), 너무나 위대하여 "사제가 미사 성제를 드릴 때에는 천사들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희생되시는 주님께 대한 찬미를 합창한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이러한 선언들에 대하여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미사 때마다 일어나고 있다.


존경과 경의를 표시함

우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자신이 고귀한 사제직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사제가 되지 않으려고 했음을 알고 있다.  성인은 사제들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을 그의 "주인들"이라고 불렀다.  왜냐 하면, 성인은 그들 안에서 "천주 성자"만을 보았기 떄문이다.  그의 성체께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며 나누어주는 사제들에 대한 사랑과 한데 융합되었다.  그는 특히 사제의 손을 존중하였다.  그래서 자주 무릎을 꿇고 사제의 손을 경건하게 친구하였다.  그는 사제의 발도 친구했으며 심지어는 사제가 걸어가면서 남긴 발자국들을 친구하였다.

성 요한 보스꼬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사제들을 지극히 존경하시기를 촉구합니다.  사제들과 이야기하거나 길에서 만날 때에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손을 경건하게 친구하십시오.  특히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들에 대한 경멸을 표시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거룩한 목자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큰 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자들이 사제의 축성된 손을 경건히 친구하여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교회 안에 늘 계속되어왔던 관습이다.  로마 제국에서의 박해 시대에 주교들과 신부들이 더 이상 축성을 하지 못하고 강복을 줄 수 없도록 그들의 손을 잘라버리는 잔인무도한 관습이 행해졌다.  크리스챤들은 잘라진 손들을 찾아서 향료를 뿌려서 잘 보존하였다.

사제의 손을 친구하는 것은 또한 사제가 대리하는 예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섬세한 표현이 된다.  신앙과 사랑이 많을수록 사제 앞에 꿇어서, 예수님께서 매일 그 안에 기꺼이 임하시는 그들의 거룩하고 존경스런 손을 친구하려고 할 것이다.

성 아오스딩은 외쳤다. "오, 사제의 존엄성이여!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동정녀의 태 중에 임하셨던 것처럼 그의 손 안에 임하시는도다." 아르스의 거룩한 사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거룩하신 동정녀와 아기 예수의 죽그릇 등 로레또에서 전해지고 보존되어오고 있는 물건들이 매우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제의 손가락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몸을 만졌으며, 그분의 피가 담긴 성작과 그분의 몸이 있는 성합 속으로 넣어졌었는데, 이 손가락들보다 더 고귀한 것들이 있겠는가?"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성인들의 예들을 살펴봄으로써 이것이 확인될 것이다.


사제의 양손을 친구한 성녀 헤드위가 왕비

가경자 카타리나 바니니는 탈혼 중에 천사들이 미사드리는 사제의 손 주위에 모여서 성체와 성작을 거양할 때 손을 받쳐주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의 종인 이 가경자가 어떠한 존경심과 사랑으로 사제들의 손을 친구했었을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성녀 헤드위가 왕비는 매일 아침 궁전의 소성당에서 바쳐지는 모든 미사들에 참례하였다. 그리고 성녀는 미사 성제를 드린 사제들에 대하여 매우 감사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하였다. 성녀는 사제들에게 친절을 표시했으며 그들의 손을 경건하게 친구하였다.  그들이 식사를 걸르지 않도록 챙겼으며 그들에게 온갖 경의를 표하였다.  성녀는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 천국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내려오게 하시고 그분을 저에게 주신 신부님을 축복하여 주소서!"

성 파스칼 바일론은 수도원에서 짐나르는 일을 맡고 있었다. 사제가 도착할 때마다 이 거룩한 평수사는 꿇어서 사제의 양손을 경건히 친구하였다. 사람들은 성 프란치스꼬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성 파스칼이 "사제들의 축성된 손들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성인은 사제들의 손이 그들을 존경스럽게 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악을 쫓고 축복을 내려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손들이기 때문이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사제의 손을 애정 깊게 친구했으며, 때로는 갑자기 그 손들을 꼭 쥐었다. 하느님의 또 한 분의 종이었던 돈 돌린도 루오톨로 신부는 자기 손을 친구하려는 사람들을 거절할 신부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존경의 행위에 대하여 기적들로써 보답해주셨다. 하루는 성 암브로시오가 미사 성제를 드린 후에 중풍걸린 여인이 가까이와서 그의 손에 친구하려고 하였다. 그 여인은 성체를 축성했던 손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치유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베네벤또에서 15년 간 중풍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교황 레오 9세에게 미사 중에 교황이 손가락을 씻은 물을 마실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거룩한 교황은 예수님께 "주인의 식탁으로부터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라도" (마태오 15,27) 청했던 가나안의 여인처럼 겸손한 이 간청을 허락하였다.  이 여인 또한 즉시 치유되었다.


먼저 사제에게, 그리고 나서 천사에게

성인들의 신앙은 참으로 깊었으며 놀라운 결실들을 가져왔다.  그들은 "신앙에 의해서"(로마 1,17) 살았으며,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한계를 모르는 신앙과 사랑으로써 행동하였다.  그들에게는 사제가 더 이상도 아니고 더 이하도 아니고 예수님을 대리하는 분이었다. "사제들 안에서 저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봅니다."라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말하였다.  아르스의 거룩한 사제는 설교 중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사제를 볼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드 빠찌가 사제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사제를 "이 예수님"이라고 칭하였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사제가 걸어간 마루나 땅을 친구하곤 하였다.  하루는 성녀 베로니카 쥴리아니가 병자에게 성체를 모셔다주려고 사제가 수도원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성녀는 그 계단의 맨 밑에 가서 무릎을 꿇고 계단을 올라갔다. 매 계단을 친구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사랑으로 인하여 흐르는 눈물로 적시면서 올라갔다.  이 어떠한 사랑의 표양인가?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이런 말을 자주 하였다. "내가 사제와 천사를 만난다면, 사제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천사에게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사제가 없다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보물함에 금이 가득 들어있다고 하여도 아무도 이를 열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제는 천상 보물들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흰 면병의 외양 안에 예수님께서 내려오시도록 하는 이가 누구인가? 누가 예수님을 감실 안에 모시는가? 누가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주는가? 누가 우리들이 예수님을 모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주는가? 그 일을 하는 이는 사제이며, 오직 사제 뿐이다.  그는 "성소(聖所)를 돌보며"(히브리 13,10), "화해의 봉사직"(2코린토 5,18)을 맡아 있으며, "하느님의 신비를 관리하는"(1코린토 4,1) 분이다. 오, 예수님을 양떼에게 주기 위하여 자신들을 희생했던 영웅적인 사제들이 얼마나 많았던고!  많은 예들 중에서 하나만 들어본다.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오래 전 브리따니의 한 본당에서 늙은 본당 신부가 임종을 맞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본당 신자들 중의 한 명이 또한 죽음에 가까워 있었다.  그는 하느님과 교회로부터 떠나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신부는 일어나서 그에게 갈 수가 없었으므로 상심이 되었다.  그래서 보좌 신부를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에게 언젠가 그가 성사들을 받지 않고서는 죽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음을 상기시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그 신자는 변명을 하였다.  "나는 그 약속을 본당 신부에게 한 것이지 당신에게 한 것이 아니요."  보좌 신부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본당 신부는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몇 시간 밖에는 더 못 살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들것에 실려서 그 죄인의 집까지 갔다.  그 집에 들어가서 죽어가는 사람의 고해를 듣고 성체를 영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다.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안녕히!"  용감한 본당 신부는 들것에 실려서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왔다.  도착했을 때 담요를 들쳐보니 신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사제들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분들이요, 예수님과 영혼들 사이의 구원을 중재해주는 분들이다.  사제들이 모자라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영적, 도덕적 상태가 참으로 놀랄 정도로 타락된다.  사제 성소(聖召)와 선교 성소(聖召)에 대한 응답이 없는 곳에서는 예수님이 증가되지 않으며, 신앙이 약화되고 성숙되지 않는다.

한 번은 일본의 어느 부락의 지도자가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의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심에 대한 설교를 듣고 난 후에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신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도 좋으신 하느님께서 이렇게 오랜 세월 후에야 크리스챤 신앙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까?" 성인은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그것을 알고 싶으십니까?  바로 이것이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여러분들에게 와서 복음을 전하도록 영감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분의 부르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사제들은 교회에 안정과 풍성한 결실을 준다. 가경자 안토니 쉐브리에르는 "모든 참된 교회의 토대는 거룩한 신부들입니다. 그 기둥들도 거룩한 신부들입니다. 그 등불도 거룩한 신부입니다. 강론대에는 거룩한 신부가 있고, 제대에는 거룩한 신부가 있습니다. 신부는 또 한 분의 그리스도입니다 (alter Christus)!"라고 말하였다.


"성인 아니면 마귀입니다."

우리도 사제가 우리에게 주님을 모셔옴으로 인하여 그를 존경하고 그에게 감사드리자.  무엇보다도 그의 고귀한 사명, 즉 예수님의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드리자.  "성부께서 나를 보내셨음같이 나도 또한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 20,21).  그것은 우리가 참으로 깊이 생각해보면 사랑으로 머리가 돌고 미쳐버리게 하는 하느님께로부터의 사명이다.
사제는 "하느님의 아드님에 비유된다" (히브리 7,3). 그리고 아르스의 거룩한 신부는 "우리가 천국에 가서야만 사제직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이것을 지상에서 깨닫는다면, 죽을 것이다. 놀라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인하여....  하느님 다음에는 사제가 전부이다."라고 자주 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숭고함과 위대함은 크나큰 책임감을 동반하며, 그것이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제의 약한 인간성 위에 무겁게 놓이게 된다. 성 벨라도는 "사제는 본성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데, 존엄성으로는 지상의 다른 어떤 이보다도 초월한다.  그의 행동으로는 천사를 닮아야 한다."

하느님께로부터의 소명(召命), 고귀한 사명, 천사적인 삶, 지극히 높은 존엄성 - 약한 인간의 본성에게 주어진 얼마나 엄청난 짐인가! "사제직은 십자가이며 순교이다" 훌륭한 사제였고 하느님의 종이었던 에드워드 포쁘 신부는 이렇게 사제직을 잘 묘사하였다.

사제에게 주어진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무거운 책임을 생각해보자. 그의 사명은 신앙을 불신자들에게 가져가는 것이며, 죄인을 회개시키고, 미지근한 자를 뜨겁게 하며, 좋은 것을 자극하여 더 좋게 하고 거룩한 이들을 격려하여 더욱 완덕에로 매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참으로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사제는 성인 아니면 마귀입니다."  사제는 영혼들을 거룩함에로 이끌어가든지 아니면 멸망에로 이끌어간다.  자신의 성소를 합당하지 못한 행동으로 더럽히며, 주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봉헌된 지위를 저버리면서 성소를 짓밟는 사제는 얼마나 엄청난 파멸을 초래하는가!

성 요한 보스꼬는 이렇게 말했다 "사제는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혼자 가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대단히 많은 영혼들을 함께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사제의 좋은 사목과 표양으로 인하여 구원되든가 아니면 그의 사목상의 태만과 나쁜 표양으로 인하여 멸망합니다."

성 요한 비안네의 시성 조사록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신부가 "그들의 성소의 거룩함에 맞지 않게 살아가는 신부들로 인한 파멸을 생각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음에 대하여 읽을 수 있다.  삐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합당치 않고 불충한 사제들의 죄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무서운 고통들을 받으시는 환시를 보고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드리자

천사적인 갈멜회 수녀였던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는 임종 떄에 다음과 같은 의향을 위하여 마지막 영성체를 하였다.  즉 그의 성소를 저버리고 탈선한 한 사제가 되돌아 오기를 위하여.  그리고 그 사제는 그의 임종 때에 예수님을 부르면서 회개를 하였다.

우리는 사제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으로 바쳤던 영혼들, 특히 동정 영혼들에 대하여 알고 있다.  이런 영혼들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매우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봉헌하자.  위험에 처한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확고하고 안전하게 나아가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탈선하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미 완덕에 이르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사제들의 부족함에 대하여 너무나 쉽게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드려주어야 하는데.

유명한 스위스의 성인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플루에의 성 니콜라스는 사제들의 흠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당신은 사제들의 거룩함을 위하여 몇 번이나 기도드렸소? 교회를 위하여 좋은 성소들을 주시도록 무엇을 하셨소?  말해보시오."

그리고 우리가 제대에 선 사제를 볼 때마다 성모님께 기도드리자. 가경자 챨즈 지아친또처럼: "오 나의 사랑하는 성모님, 당신의 성심을 저 사제에게 주소서.  그리하여 미사를 합당하게 바치도록 하여주소서."

우리는 또 소화 테레사 성녀처럼 제대의 사제들이 성모님의 순결함과 섬세함을 가지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을 만지도록 기도드리자. 더욱이 성모님과 지극히 일치되어서 미사 준비를 하였던 성 까예딴을 모든 사제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기도드리자. 성인은 마치 자신이 성모님인 것처럼 미사를 드렸다라고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성모님께서 베틀레헴에서 예수님을 당신의 품안에 안으신 것처럼, 사제가 미사 성제 중에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모시는 것이다.  티없으신 분께서 예수님을 갈바리아 산 위에서 희생 제물로 바치셨던 것처럼 사제도 제대 위에서 희생되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바치는 것이다.  동정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인류에게 주셨던 것처럼, 사제도 영성체 때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준다. 그리하여, 성 보나벤뚜라는 제대에 선 모든 사제는 성모님과 밀접하게 일치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성모님께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극히 거룩하신 몸이 사제의 손에 의해서 봉헌되어야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는 성모님께서 사제들이 어떠한 거룩함을 지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마리아의 태 속에 말씀이 강생하신 것과 사제의 손에 의해서 성체가 축성되는 것과의 지극한 가까운 연관성 때문이다.

우리들도 또한 성인들로부터 사제들을 존경하는 것을 배우며, 그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의 지극히 고귀한 사명을 위하여 도와드리자.

(성체 성사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






감옥에 갇히신 예수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감옥에 갇혀있는 나를 생각하여라.
나는 감옥 안에서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병사들은 말과 행동으로 나를 조롱하고, 번갈아 가며 나에게 매질을 가하였다. 그리고는 나를 묶여 있는 상태로 더럽고 악취 나는 구석으로 쳐밀었다. 차가운 돌 위에 몸을 기대고 있을 때 추위와 아픔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감옥에 갇혀 있던 상황과 지금 감실 안에 포로가 되어 있는 사정을 비교해 보자. 그리고 감옥에 있을 때 나를 학대하고 조롱하던 자들과, 나를 영하면서도 나를 냉대하는 영혼들을 비교해 보자. 감옥에 갇혀 있는 시간은 단 하루 밤이었다. 그러나 감실에 갇혀있는 시간은 성체성사를 세운 후 지금까지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감옥에 있을 때도 사악한 인간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학대를 당하더니 지금은 나를 사랑한다고 자처하며, 나를 영하는 영혼들로부터 참기 어려운 냉대와 배신을 당하고 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 비재한 줄 아느냐?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는 추위와 상처의 통증, 허기와 갈증, 그들에게 당한 창피, 그리고 외로움과 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와 못지 않게 이 감실 안에서 여러 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들로부터 사랑과 애정을 받지도 못한 채,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감실에 갇혀있다.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얼음덩이 같은 마음을 가진 수많은 영혼들을 보았다.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여 갈증을 느끼고, 사랑을 섭취하지 못하여 허기져 있던 때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영혼들이 나를 찾아와 주기를 학수고대하며, 앞으로도 얼마나 긴 세월을 보내야 할까?

영혼들이 언제쯤 나를 찾아와, 이 목마름과 배고픔을 풀어줄 것인지....  설사 영혼들이 나를 찾아왔더라도, 그들은 나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어떻게 해야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괴로워할 때에, "당신의 고통과 근심을 덜어 드리기 위해 당신께 저희 희생과 노고를 바칩니다." 라고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내가 외로워할 때, "당신의 짝이 되어,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들이겠습니다."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이나 알고 있는가?

너희 영혼들이 나와 결합하면, 평화로운 가운데 자신들의 고난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으며, 용감하게 역경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너희 영혼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통을 이겨낼수록, 나의 마음은 큰 위로를 받는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사악한 그들이 나에게 퍼부어 댄 악담과 조롱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으며, 훗날 내가 끔찍히 아끼고 사랑하는 영혼들의 입에서 그와 똑같은 악담이 흘러나올 것을 미리 내다보고 참혹한 심정이었다. 그 당시 병사들에게 계속 매질을 당하면서, 많은 영혼들이 통회하지 않고 나의 성체를 영하며, 상습적으로 죄를 범하여 나의 마음에 잔혹하게 매질하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병사들이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이미 기력이 다해 나뒹구는 나를 아무도 붙잡아 주지 않았다. 지금은 배은 망덕의 사슬로 나를 묶어 땅바닥에 패대기 쳐놓은 다음, 나를 외롭고 적적한 상태로 방치하는 영혼들을 본다. 그 창피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

선택받은 영혼들아!
감옥에 있다가 지금은 감실에 갇혀 있는 너희 짝을 바라보아라. 외롭고 비참한 밤 사이에 내가 이 적막한 감실 안에서 너희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서러워하고 있다. 언제까지 나를 냉정하게 방치해 두려느냐? 값싼 동정이라도 주겠느냐?
어서 너희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다오. 어서 너희 마음 안에 나의 거처를 마련해 다오. 그리고, 너희 사랑의 사슬로 너와 나를 한데 묶어 다오. 너희 애정으로 나를 덮어 다오. 너희들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의 주린 배를 채워다오. 뜨거운 마음으로 나를 마셔다오. 끊임없이 나를 찾아와 근심과 고통에 젖어 있는 나를 위로해 다오
.

사랑하는 영혼들아!
너희들의 정결과 올바른 의지로 내가 수많은 영혼들로부터 받은 수치를 없애다오. 내가 너희 안에 쉬고 싶어하면, 너희들의 거칠고 산란한 욕정을 눌러 제거하여라. 나는 고요해 진 너희 영혼 안에서 휴식을 취하겠다. 이 때에 너희 영혼들은 "나를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 너희가 나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너희 마음 한 가운데 머물게 하였으니, 나도 너희에게 무한한 포상을 내려 주겠다. 너희가 나의 쉼터가 되어 주었으니, 나도 너희들이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겠다." 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가톨릭출판사) 

 




 

우리 문제에 깔린 하느님의 뜻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우리를 쓰러뜨리거나 진보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선을 이루시는 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 문제들이 가져 온 유익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단지 부딪힌 문제들에 대해서 만 화를 낼뿐이다.

여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삶을 세우기 위해 문제들을 어떻게 이용하시는 지 다섯가지 대답이 있다.


1.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하신다

때때로 하느님께서는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불을 밝혀주신다. 문제들은 종종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방향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다.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 당신의 주의를 끌려고 애쓰고 계실 것이다.
"깊은 상처는 악을 씻고 매질은 배 속 깊은 곳을 씻는다." (잠언 20,30)


2.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관찰하신다

사람들은 차봉지와 같다. 만약 당신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 알고 싶다면, 그냥 뜨거운 물에 넣어보면 된다. 하느님께서 문제를 통해 당신의 신앙을 시험하신 적이 있는가? 그때 당신은 어떤 모습을 드러내었는가?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야고보 1,2-3)


3.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교정하신다

어떤 교훈은 고통과 실패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린 자녀가 뜨거운 난로는 만지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도 실제로 만져보고 데인 후에야 그 말의 뜻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로 우리는 건강, 돈, 인간관계 등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는다.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좋은 일이니 당신의 법령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좋습니다. 수천의 금과 은보다 좋습니다." (시편 119,71-72)


4.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만약 어떤 문제가 좀더 심각한 다른 문제 때문에 상처받는 것을 막아 준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이 될 수 있다. 지난 해에 한 친구는 그의 사장이 시킨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그의 실직은 분명히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일년 후에 비리를 통해 회사가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에는, 그 일로 인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50,20)


5. 하느님께서는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신다

문제들이 올바로 대처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인격과 삶을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준다. 하느님은 당신의 안락보다는 당신의 인생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로마 5,3-4)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삶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또 우리가 그분과 함께 모든 일을 행할 때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것이다.

(창골산 봉서방)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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