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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 마디에 달린 처벌…‘어떻게 묻냐’가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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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램 [good79] 쪽지 캡슐

2019-08-24 ㅣ No.218582

입력 : 2019.08.24 06:00 수정 : 2019.08.24 06:02

성폭력·아동학대 조사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 진술조사실에 이곳을 방문했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전현진 기자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 진술조사실에 이곳을 방문했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전현진 기자

해바라기센터 이야기-성폭력 피해 아동 조사관들‘어떻게 묻느냐’를 고민하다 

“안녕, 선생님은 경찰관이야. 경찰관이 무슨 일 하는지 알아? 그래, 나쁜 사람 잡는 일을 하지.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찰관이야. 다른 친구들도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줬어. 그러니 겁먹을 필요 없어. 정답을 말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억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돼. 그냥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면 돼. ○○이가 엄마한테 어떤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제부터 선생님에게도 자세히 들려줄래?” 

해바라기센터에선 매일 이런 대화가 오간다. 여성가족부와 지자체, 병원 그리고 경찰이 함께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성매매·아동학대·가정폭력 피해자의 의료·심리·상담·수사 법률 지원 등을 담당하는 전문 기관이다. 국내에서 성범죄 피해를 겪은 아동들이 이곳을 거친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해바라기센터(39개소)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자 2만449명 중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8105명이었다. 이 중 13세 미만은 3538명이었다. 면담 조사 기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경찰 조사관들이 센터에 상주하며 피해 아동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사건을 입증할 가장 중요한 증거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의사소통이 서툴거나, 범행에 대해 말하길 두려워해 자신이 겪은 피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 6월 서울고법 형사6부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10세 ㄱ양에게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로 재판에 넘겨진 인천의 한 보습학원 원장 이모씨(35)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를 적용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진행된 피해자 진술조사가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였다. 법원에 따르면, 2시간가량 진술을 하지 않던 ㄱ양은 “(이씨가) 누르기만 한 거야?”라고 묻는 조사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관의 질문과 아이의 반응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법원 판단의 근거가 됐다. 피해자의 특수성을 인지하지 못한 부실한 판결이라는 비판과 함께, 진술조사 당시 ㄱ양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 질문(“누르기만 한 거야?”)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조사관이 던지는 질문에 따라 아이의 진술은 달라질 수 있다. 조사관의 질문은 아이의 기억을 되살리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열쇠가 된다. 

경향신문이 지난 16일부터 나흘간 서울 내 해바라기센터 5개소 소속 조사관 5명을 만났다. 해바라기센터에서 약 2~4년간 피해자 조사를 담당한 베테랑들이다. 아동 성범죄와 학대사건의 증인인 조사관들의 고민은 어려운 질문에서 시작해 무수한 질문으로 끝난다.
 

◆“그 아저씨가 나쁜 짓 했어요” 한마디에 달린 처벌 수사의 시작은 ‘피해 아동 마음 열기’ 

[커버스토리]한 마디에 달린 처벌…‘어떻게 묻냐’가 열쇠

아픈 기억 떠올리는 것도 2차 피해
“어떻게 반항했어?” 직접적 질문
상처 될 수 있고 진술 신빙성 훼손
스스로 입 열도록 개방형 질문해야

 

성범죄자들의 눈에는 아동이 가장 이상적인 피해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 아동범죄 수사 전문가인 켄 래닝은 “아동의 일반적인 특성이 범죄에 노출되기 쉽게 만든다”고 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어른의 말을 잘 따르도록 교육받는다. 때론 자신을 보호하는 부모에게 반항한다. 늘 관심과 돌봄을 원한다. 목격자이자 피해자로서 털어놓는 증언은 종종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의심받는다. 

아동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이런 특성을 이용한다. 호기심을 자극해 성적인 행동을 유도한다. ‘어른의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믿는 아이의 마음을 이용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협박한다. 위력으로 손쉽게 아이들을 제압한다.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는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을 현혹시킨다. ‘(피해 아동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애들이 말하는 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곧 성범죄자의 ‘믿는 구석’이 된다. 해바라기센터 조사관들이 성범죄 피해 아동 조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국에 39개의 해바라기센터가 있다. 이 중 33개소에서 경찰 조사관이 근무한다. 서울에는 5개의 센터가 있으며 각 4명의 경찰관(팀장 1인 제외)이 교대근무를 하며 진술조사를 담당한다. 지난 16일부터 나흘 동안 해바라기센터 조사관 5명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1인칭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들의 실제 발언과 경험담을 엮어 정리했으며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 자료와 관련 논문 등을 참고자료로 삼았다.
 

■ 수사 성패 걸린 ‘래포 형성’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아동학대·가정폭력·성매매의 피해자들을 조사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성인 피해자가 더 많지만, 조사관들은 아동 피해자와 만날 때 더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아동은 성인과 같은 수준으로 자신의 피해 경험을 명확하게 진술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사건 특성상 아동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술조사실에서 마주 앉은 피해 아동의 마음을 얼마나 여는지, 피해 당시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진술하도록 이끄는지에 따라 가해자가 받을 처벌의 종류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입니다. 

피해자 조사에는 해바라기센터 조사관 외에도 신뢰관계인(부모 등), 피해자 변호사나 아동 전문가인 진술조력인·진술분석관, 속기사, 사건 수사 담당 형사 등이 참여합니다. 하지만 진술조사실에는 되도록 피해 아동과 피해자 변호사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나머지 관계자들은 별도로 준비된 방에서 피해자 조사 장면을 지켜봅니다. 

조사는 대부분 1시간 내외로 이뤄집니다. 2~3시간 이상 길어지기도 합니다.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 확인해야 할 게 많거나, 휴식과 조사를 반복하다 보면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해 아동이 진술에 응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날로 조사 일정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조사관 한 명당 보통 하루 2~3명을 조사합니다. 예약이 되지 않은 상태로 센터에 급히 방문하는 피해자도 있어 조사 횟수는 늘어나기도 합니다. 

성폭력 피해 아동은 여러 차례 진술을 하는 것만으로도 2차 피해를 봅니다. 범죄 상황을 계속해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피해자 조사는 전부 영상으로 남깁니다. 해바라기센터에서 하는 한 번의 피해 진술은 모두 녹화돼 법정에서의 증언을 대신하게 됩니다. 진술이 잘못됐거나 명확하지 않으면 피해 아동이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속기록을 남기는 것이 조사의 목적입니다. 속기록은 피의자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쓰입니다. 피해자의 정확한 진술이 있어야 피의자에게 이것저것 캐물을 수 있습니다. 성범죄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기에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사관이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법정에서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거죠. 

조사의 관건은 피해 아동이 조사관을 얼마나 믿고 편안하게 이야기해주느냐에 있습니다. 미리 친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사 직전에야 피해 아동을 처음 만납니다. 아동 입장에서는 수사의 핵심인 피해 진술을 방금 막 만난 낯선 경찰관에게 해야 하는 겁니다. 얼마나 래포(rapport·상호 신뢰 관계)가 형성됐는지에 따라 아이의 진술 태도는 달라집니다. 

조사관은 래포 형성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씁니다. 진술조사 중에는 따로 시간을 내 래포를 형성하기 힘들거든요. 래포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은 예외적으로 피해 아동이 일찍 도착하는 경우나 재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10~30분 정도가 사실상 전부입니다. 그 짧은 첫 만남에서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래포 형성은 성인 피해자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인 피해자는 대부분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자신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지 않은 피해 기억을 이야기하길 꺼립니다. 성범죄 피해 아동들은 가해자를 두려워하고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피해 진술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낯선 조사관이 말하기 싫은 일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아이들은 입을 닫아버리거나 조사실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사건과 무관한 화제로 신나게 말하던 아이들도 막상 자신이 겪은 범죄 상황에 대해서는 입을 다뭅니다. 

처음 아이가 센터에 오면 센터 곳곳을 보여주며 낯선 공간에 적응하도록 돕습니다. 간식을 주거나 사건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아갑니다. “매니큐어색이 예쁘다”라고 관심을 보이거나 “선생님도 딸이 있는데”라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어리면 클레이(점토) 만들기, 구슬 꿰기, 그림 그리기 같은 놀이를 합니다. 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의 언어 구사 능력과 피암시성을 파악합니다. 아이가 어른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수동적으로 대답만 하면 암시성이 높아 진술조사를 할 때 질문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들이다 보니 놀이나 간식에 너무 몰두해 정작 중요한 조사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늘 하는 일(피해 진술)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지시키면서 래포를 형성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아이가 너무 어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자괴감도 느낍니다. 피해 상황에 대한 진술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아이가 입은 피해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구체적 언급 피하는 ‘개방형 질문’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면 성폭력 피해 아동을 조사하기 위해 개발된 면담조사 매뉴얼에 따라 질문을 합니다. 이 매뉴얼은 개방형 질문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이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이야기해줄래”라고 물어보는 식입니다. 왜 답답하게 사건에 대해 바로 안 물어보느냐고요?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진술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는 피해자 진술이 조사자의 질문 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매뉴얼에 따라 조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아동에게는 면담 규칙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합니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 색깔을 묻기도 하고, 마주 앉은 아이에게 ‘지금 ○○가 선생님 앞에 앉아 있다고 말하면 이건 사실일까 아닐까’라고 물어보면서 질문에 사실대로 답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반면 “내(조사관) 강아지 이름이 뭘까?”라고 물어본 뒤 아이가 추측해서 대답하면 “답을 알지 못하면 그냥 모른다고 해도 괜찮아”라고 설명해줍니다. 아동은 어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이 모르는 사실에 대해서도 추측해 답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정확히 진술하도록 하기 위해선 ‘모른다’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진술
모두 녹음해 법정 증언으로 쓰여

서울 5곳 등 39곳 경찰 조사관
변호사·아동전문가 등 함께 활동

 

사건에 대한 내용은 전부 아이의 입에서 먼저 나오도록 하고, 피해의 정도를 제한할 수 있는 선택적·암시적 질문을 하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인천에서 있었던 10세 아동에 대한 성폭행 재판에서 “(가해자가) 누르기만 한 거야?”라고 묻는 해바라기센터 조사관의 질문이 “폭행·협박은 없었다”는 판단 근거 중 하나가 됐습니다. 모든 속기록을 봐야겠지만, 이 사례는 조사관이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아동이 처한 상황이 제대로 묘사될 수도, 반대로 축소될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조사관은 피해 아동의 눈물, 떨림, 침 삼키며 긴장하는 모습 등을 가까이서 보게 됩니다. 피해 당시와 그 후에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 ‘얼음’이 돼 버려 거칠게 반항할 수 없던 당시 상황이 속기록에 드러날 수 있도록 다양한 질문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떻게 반항했어?”와 같은 직접적인 질문은 암시로 인한 진술오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질문은 그 자체로도 듣는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신체 부위에 대해 자신만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도 성인들의 표현 방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표현 방법을 모르거나 부끄러워서 제대로 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아이가 쓰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질문합니다. 조사관이 먼저 신체 부위를 지칭하면 안 됩니다. 이 또한 진술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말한 신체부위가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경우에는 “그게 어디에 있는 거야? 뭐 하는 데야?”하고 물어봅니다. 보통 아이들은 “쉬 싸는 데”라는 식으로 대답하는데 이런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피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사용하는 어휘도 유심히 듣습니다. 아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저씨가 나쁜 짓을 했어요”라고 지나가듯 말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나쁜 짓에 대해서 다 얘기해줄래?”라고 다시 개방형으로 질문합니다. “팬티를 내렸어요” “올라탔어요”라고 하면 다시 구체적인 답이 나오도록 개방형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했어?”도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제한된 질문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 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다 

아동 연령에 따라 주로 발생하는 범죄 종류가 조금씩 다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미취학 아동들을 대상으로는 비면식범에 의한 강제추행이 자주 벌어집니다. 처음 보는 아이를 인적 드문 곳으로 유인해 성추행을 하는 식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가 되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이때가 되면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만난 이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적 호기심이 생기는 나이기도 해 채팅을 통해 모르는 사람에게 알몸 사진을 보여주거나, 경계심 없이 따로 만났다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게 벌어집니다. 중·고생인 경우에는 가출 이후 성범죄 피해에 노출되는 일이 많습니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피해를 당합니다. 2살 때 성범죄 피해를 당한 아이가 3살에 진술하러 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몸을 긁는 모습을 본 부모가 ‘왜 그러느냐’ 묻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졌어”하고 대답해 사건이 접수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CCTV나 다른 증거도 없으며 발생 시점이 오래 지난 데다가 피해 아동이 너무 어리면 조사가 정말 힘들어집니다. 

성범죄 피해 아동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성격이 다르고 피해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를 ‘악마’라 부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피해 상황을 담담하게 전달하며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각자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진술을 하다 보면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 여성들도 센터 많이 찾아
성인지 감수성 높아졌다지만
“내가 술 취해서” “잘못 처신”
아직도 자책하는 피해자 있어
“당신 잘못 아니다” 인지시켜
 

해바라기센터에는 아동·장애인 피해자만 오는 건 아닙니다. 센터를 찾는 피해자들은 성인 여성이 더 많습니다. 아동·장애인 전문 조사기관이기는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해바라기센터에서 피해자 조사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성범죄 사건 피해자들은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해바라기센터를 찾게 되는 셈입니다.
 

◆‘악마’라 부르거나, 담담하게 ‘그 사람’…아이의 언어는 어른과 달라요
 

[커버스토리]한 마디에 달린 처벌…‘어떻게 묻냐’가 열쇠

남성 피해자도 적지 않은 숫자
센터엔 여성 직원들만 상주해
남성 의료진·경찰 파견 오기도
 

성인의 경우 술에 취해 항거 불능의 상태에 있었을 때나 직장 상사 등 위력에 의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이지만, 아직도 ‘내가 술에 취했기 때문에 당한 것은 아닐까요’ ‘내가 잘못 처신해서 그런 걸까요’라며 자책하는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럴 땐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한 번은 성폭행 위기를 간신히 넘긴 80대 어르신이 조사를 받으러 왔는데 “꼭 벌 받게 해야 한다”며 힘들어하셨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결코 상처가 가벼운 건 아닙니다. 먼 과거의 일 때문에 평생을 힘들어하는 분도 있고, 찜질방에서 짧은 시간에 이뤄진 추행에도 오랜 기간 상담치료를 받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는 분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은 다른 사람이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특히 성범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흔히들 성범죄 피해자라고 하면 예쁜 외모를 떠올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가해자는 그저 그들의 눈에 ‘쉬운 사람’을 노립니다. 그 대상이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일 수 있다는 것이 속상할 따름입니다. 

남성 피해자도 적지 않습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아동도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됩니다. 해바라기센터에는 경찰관과 상담사, 의료진 등 여성들만 상주하고 있다 보니 남성 피해자가 발생할 때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체액 등 성범죄 증거를 채취해야 할 때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으니 ‘불을 꺼도 되느냐’고 묻거나 당사자가 원할 시 남성 의료진에게 채취를 맡깁니다. 여성 조사관에게 조사를 받아도 될지 의향을 묻고, 원치 않으면 남성 변호인을 선임해 동석하거나 일선 경찰서에 있는 남성 수사관에게 피해자 조사를 하도록 합니다. 

■ 아동·여성 범죄 수사 최전선 

해바라기센터는 아동·여성 대상 범죄 수사의 최전선입니다. 현재는 여성 경찰관만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수사영역입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 조사관을 지원하는 이들이 많으며, 더 나은 조사를 하기 위해서 상담이나 미술 치료 등을 따로 공부하기도 합니다. 조사관이 되려면 일정 수준의 수사경과(수사자격)가 있어야 하며, 지구대·교통조사계·경제팀·강력계·풍속단속팀·민원실 등 다양한 근무 경험을 한 수사관들이 해바라기센터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고충이 없지는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피해 상황을 계속 듣게 되면 감정이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조사실에서 만나는 피해자들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마주합니다. 조사가 잘 돼 가해자를 처벌하게 되면 뿌듯합니다. 특히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전해 들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피해자와 조사관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습니다만, 해바라기센터에서 진행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의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한 피해자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회 복귀를 도왔다는 생각에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센터마다 근무하는 경찰관이 한 명뿐이기 때문에 진술조사 중 갑자기 다른 피해자가 센터에 방문하면 대응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야간 근무 때는 하룻밤 사이에 5~6명을 조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휴가를 가려면 다른 동료가 나의 빈자리를 채워줘야 합니다. 동료 조사관의 조사 내용을 살펴보고 공유하려면 쉬는 날을 희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해바라기센터에 경찰관 2인이 근무하도록 하려 했지만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행정안전부로부터 추가 증원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아동·장애인 피해자 조사에는 전문적인 기술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남는 것도 아닙니다. 단속·검거 등 눈에 띄는 실적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승진에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능력 있는 조사관들이 센터를 일찍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센터마다 다르지만 3년6개월 근무한 조사관이 가장 오랜 경력자인 곳도 있습니다. 올해 7월부터 지침이 바뀌어 조사관들이 원할 경우 인사 이동 없이 장기근무를 할 수 있지만, 전문성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동 수사 전문가인 해바라기센터 조사관들이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이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240600055&code=940100#csidx0eb7acfbdb237a9b26f970d0aee6d9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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