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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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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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09-02 ㅣ No.132227

유대인들이 인류의 삶에 공헌한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안식일입니다. 우리가 주말을 보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는 것은 안식일이 정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루 쉬셨다는 성서의 말씀이 근거가 되었습니다. 저는 안식년을 잘 지냈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어진 소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듯이,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이, 완벽한 것도 좋지만 우리의 삶에는 여유가 있으면 더 좋습니다. 하루 중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누군가를 도와주는 시간을 갖는다면,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다면, 생각을 공유하는 책을 읽는다면, 수고한 자신에게 밝은 웃음을 보낸다면 매일 매일이 안식의 시간이 될 겁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격려하지 않는다면 남도 그렇게 하기 힘들 겁니다.

 

다른 하나는 죄의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인 악인지 식별할 수 있습니다. 본능과 본성에 따라 사는 생명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 뿐입니다. 예술, 문학, 철학, 문명이 자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던 하와는 선과 악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지닌 하와는 선을 알면서도 악을 택하였습니다. 아담은 선을 알면서도 하와의 말을 따랐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죄의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을 상실한 사람은 악을 행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하느님께 돌아올 생각도 없습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인면수심(人面獸心), 극악무도(極惡無道), 안하무인(眼下無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죄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악령에 물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악령에 물든 사람은 예수님이 누군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악령에 물든 사람은 어쩌면 자유의지를 지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선을 행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 안의 거짓된 자아는 나를 악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 저주스러워라, 저주스러워라! 얼마나 숱한 층층대를 밟아 지옥의 밑바닥까지 끌려갔던 것입니까! 그러면서도 진리에 허덕이며 맘 조리고 애태우면서,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거짓된 자아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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