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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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화요일]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 (루카 4,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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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9-03 ㅣ No.132239

 

[연중 제22주간 화요일]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 (루카 4,31-37)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날이 밤도둑처럼 올 것이니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자고 한다. (1테살 5,1-6.9-11)
1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2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10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말씀으로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더러운 영을 몰아내신다. (루카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제1독서(1테살5,1~6.9~11)

   

"주님의 날이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2)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4)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5)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6)

  

여기서 '주님의 날' '헤메타 퀴리우'(hemeta kyriu)사도 바오로의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다른 표현으로 사용되는 말이며(필리1,10; 2,16), 구약에서는 '야훼의 날', '주님의 날'로 표현되는 말이다. 

이 날은 주님을 대적하는 악인에게는 심판의 날인 반면에 주님을 사랑하는 의인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사도 바오로가 구약의 '야훼의 날'이라는 표현을 끌어와 사용하면서 '하느님의 날'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날' 또는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종말의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시 오실 것(마태24,30)을 확인해 줌과 동시에 그 종말의 심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관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마태25,31~46).


 그리고 이 구절은 주님께서 시간적으로 밤에 재림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말은 사람들이 방심하는 밤에 도둑이 예고도 없이 침입하는 것처럼, 주님의 날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때에 도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원문의 '호스 클렙테스 엔 뉙티 후토스 에르케타이'(hos klleptes en nykti hutos erchetai)에서 '호스 ~후토스'(hos ~hutos; as ~so)라는 표현으로 잘 드러난다.

 '호스'(hos)는 '~처럼'이며, '후토스'(hutos)는 '그와 같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도둑'(klleptos; 클렙토스; a thief)이  밤에(en nykti; 엔 뉙티; in the night)

오는 것과 같이 그처럼'이라는 뜻이다. 

즉 '밤'이라는 시간이 강조된 것이 아니고 밤에 오는 '불예측성'강조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오 복음 24장 44절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도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묵시록 16장 15절에도 '보라, 내가 도둑처럼 간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4)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5)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6)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1서 5장 1~3절에서 주님의 재림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시에 올 것을 밝힌 데 이어서, 테살로니카 1서 5장 4~5절에서는 빛에 속하며 어두움에 있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결코 갑작스럽게 오지 않을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테살로니카 1서 5장 4절 '있지'에 해당하는 '에스테'(este)현재 시제로서 어두움에 있지 않은 상태의 지속성을 나타내준다.

 

또한 '어둠 속에'에 해당하는 '엔 스코테이'(en skotei)에서 '엔'(en)'~안에' (in)라는 뜻의 전치사로서 영역의 안쪽을 말한다. 

그 영역은 바로 '어둠'에 해당하는 '스코테이'(skotei)인데, 이것의 원형은 '스코토스'(skotos)로서 구약 히브리어의 희랍어 번역성서인 70인역(LXX)에서 히브리어 '호쉐크'(hoshek; 창세1,2)의 역어로 쓰인 단어이다.

 

본래 자연 상태의 어둠을 뜻하지만(마르15,33; 사도2,30), 본절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쓰여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 하느님의 영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 하느님을 적대하는 자리에 있는 것, 드러난 진리를 배척하는 자리에 있는 것 등을 의미한다.

 '빛'과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어둠'에 대한 비유적 표현은 신약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요한3,19; 사도26,18; 로마13,12; 2코린6,14; 에페5,8). 

 

'그 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덮치지는'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카탈라베'(katallabe)의 원형 '카탈람바노' (katallambano)장소와 관계되어 쓰일 때에는 '뒤에서'라는 뜻의 전치사 '카타' (kata)'덮치다'라는 뜻이 있는 동사 '람바노'(lambano)합성어로서 본절에서는  '위에서 내리덮치다', '엄습하다'라는 강한 의미로 쓰였다(요한8,3; 12,35).

 

따라서 도둑이 한밤중에 자고 있는 사람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사한 선악들에 대해 심판하실 주님의 날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매우 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엄습할 것이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한편, 테살로니카 1서 5장 5절'빛'(포토스; potos)'낮'(헤메라스; hemeras)동일한 개념을 전달하는 것으로서 후반절에 나오는 '밤'(뉙토스; nyktos)'어둠'(스코투스; skotus)의 반대 개념이다.

 테살로니카서 1서 5장 5절의 '빛의 자녀'빛이신 하느님을 닮은 자들을 가리키며,  바로 하느님의 뜻인 '거룩'(1테살4,3)의 길에 서 있는 성도들을 말한다.

 

또한 '낮의 자녀'란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의미하는데, 사도 바오로는 '빛의 자녀'와 '낮의 자녀'라는 반복된 표현을 사용하여 성도들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에서 '밤'(뉙토스; nyktos)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무감각한 상태를 말하며, '어둠'(스코투스; skotus)빛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소외된 상태,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을 모시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테살로니카 1서 5장 6절'잠들지'라는 '카튜도멘'(katheudomen)의 원형 '카튜도'(katheudo)는 비유적으로 자신의 구원에 무관심하고,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에 해당하는 '알라 그레고로멘 카이 네포멘' (alla gregoromen kai nepomen; but let us be alert and self-controlled)에서 '깨어 있도록'에 해당하는 '그레고로멘'(gregoromen)의 원형 '그레고류오' (gregoreuo)는 영적 측면에서 '정신을 차리고 주의하다'라는 비유적 의미인데(마르13,35; 사도20,31; 1코린16,13; 1베드5,8; 묵시3,3), 이러한 상태는 의지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맑은 정신으로'에 해당하는 '네포멘'(nepomen)의 원형 '네포'(nepo)는 본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인데, 비유적으로 심령이 고요하고 침착하며 냉정을 유지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이 두가지 상태는 모두 '빛과 낮의 자녀'에게는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지만, '밤과 어둠의 자녀'에게는 부자연스럽고 실천하기 힘든 어려운 요소들이다.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복음(루카4,31~37)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4)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드러나신 후에 출신지인 나자렛도 존귀한 지명이 되었다(사도3,6).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에 나자렛은 유다인에 의해 경멸받던 지명이었다(요한1,46).

 

따라서 마귀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라는 사실을 크게 떠든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한 것이며, 이것은 갈릴래아를 대표할 수 있는 큰 도시였던 카파르나움 고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간교하고 사악한 방법이었다.

 

'아!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귀들린 사람의 화두에 있는 감탄사 '에아'(ea; Ah!)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에만 유일하게 쓰인 독특한 용어이며,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위협을 받게 된 마귀의 놀라움과 두려움, 혐오감과 적대감 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원문의 '에아, 티 헤민 카이 소이'(ea, ti hemin kai soi)'Ah, what do you want with us?'(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는 뜻이며, '에아'(Ea; Ah!)를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들을 홀로 두소서'(Let us alone)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더러운 마귀의 영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여호22,24; 판관11,12; 1열왕17,18).

 

또한 여기서 더러운 마귀의 영은 자신들을 가리켜 '저희'(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마귀가 마귀들린 자와 자신을 복수 위격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는 마귀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이것은 문법적으로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투의 문장으로 보아야 한다.

 

영적으로 상당한 지력을 지녔던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꺾어서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마르코2,10; 1요한3,8).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악한 영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

 

여기에 해당하는 '호 하기오스 투 테우'(ho hagios tu theu; the Holy One of God)는  루카 복음 4장 33절'더러운 마귀의 영'('프뉴마 다이모니우 아카타르투'; pneuma daimoniu akathartu; an unclean devil spirit)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정학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구약 성경하느님께 대해 사용'거룩하신 분'(이사40,25; 57,15)이라는 표현과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께 대해서 사용'거룩하신 이'(사도21,27; 3,4; 4,27)라는 표현과도 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영적 지각력을 갖추었던 마귀들은 이미 이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예수님 앞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는 예수님을 '안다'고 소리친다.

 여기서 '압니다'에 해당하는 '오이다'(oida; I know)능동태 완료 동사이다.

 

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마귀는 예수님을 알되, 예전부터 그리고 능동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영적 존재인 마귀는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시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직접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기초하여 정확한 고백은 했지만,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인 마귀는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순종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오늘날도 적지 않은 신학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마귀의 지식과 유사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연구와 배움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식이 어떻게 그를 구원으로 인도하며 영신적 유익을 주겠는가?

 야고보서 2장 19절에는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잠언 1장 7절에도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라고 나온다.

 

우리는 신앙이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고, 주님을 경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앎을 기초로 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마음으로부터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닮도록노력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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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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