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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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뿌리는 저 높은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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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섭 [kjs930] 쪽지 캡슐

2019-09-24 ㅣ No.132744

우리의 뿌리는 저 높은 곳에 있습니다.

 

 

1976년 미국에서는 알렉스 해일리 Alex Haley의 대작<뿌리 Roots>가 출간되어 다번에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했다. 나는 '뿌리'라는 제목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뿌리는 어디일까? 우리의 시초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이런 의문은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남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문화권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인도에는 이 질문에 대한 인도 고유의 답이 있다. 얼핏 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무척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과도 일치하는 대답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뿌리는 저 높은 곳에 있습니다."이다.

 

 

인도 길가를 지나다 보면 반얀 트리 Banyan Tiee를 흔히 볼 수 있다. 반얀이라고 불리는 이 커다란 나무는 엄청나게 크다. 작은 사원 하나가 반얀의 뿌리와 뿌리 사이에 들어앉아 있기도 하니 말이다. 나이 또한 대단히 많다.

 

 

마드라스 국제신지학센터의 반야 중에는 수령이 4백에서 5백 년 된 것들도 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과정 또한 특별하다. 반얀은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다. 저 놓은 곳 어디에선가 뿌리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스스로 터를 잡는다. 마치 큰 칡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서 땅속에 자리 잡은 뿌리는 또 다른 나무를 자라기 하기 위해 계속해서 뻗어 나간다. 만약 사람이 그 뿌리를 끊어 내지 않으면 스스로 뿌리를 퍼뜨려 자란 나무 한 구루가 숲을 이루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반얀을 닮아 있다. 우리의 뿌리도 저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 높은 곳에서 왔다.

 

 

나도 반얀처럼 저 아래가 아니라 저 위에서 왔다. 1936년부터 1년 동안 둘루즈 대학교에서 열정적인 문 현학 교수님의 지도 아래 문학사 과정을 밟았다. 내가 마드라스로 오기 바로 전해의 일이다. 그 교수님은 인도유럽어와 그 상호 관계에 대해 가르치셨는데, 교수님과 함께 공부한 덕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 황홀감을 맞보았다.

 

그는 인도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프랑스와 인도를 오가는 장거리 항공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늘 인도 아대륙에 크게 감탄했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인도 아대륙이 신의 거쳐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에 뿌리를 둔 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양으로 혼돈과 암흑을 상징하는 바다 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뿌리가 땅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자라나는 반얀처럼 말이다.

 

 

깊은 바다 속 저 아래로 흔들림 없이 묵직하게 자리 잡기 위해 본래의 뿌리를 저 높은 곳에 더 단단히 묶어 두는 이미지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대륙이다. 반얀 트리와 인도의 지형학적 형태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하나의 상징이며 우리로 하여금 인도가 지닌 위대한 메시지를 되새길 수 있게 해 준다.

 

그 메시지는, 우리 모두 자기만의 동굴을 지니고 있고, 그 안에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온 불티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티는 간디가 말했던 '조용한 내면의 목소리'(안타르야민 antar Yamin)가 되어 우리를 이끌어 준다.

 

 

 

피에르 세락 신부 '거꾸로 자라는 나무' 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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