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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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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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0-01-15 ㅣ No.135324

 


2020년 1월 15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 3,1-10.19-20

그 무렵 1 소년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2 어느 날 엘리는 잠자리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는 이미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잘 볼 수가 없었다.

3 하느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기 전에,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20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음 마르 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바람직한 엄마의 상은 무엇일까요?

작년 말에 갑곶성지에 새 생명이

보였습니다. 글쎄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성지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길고양이가 성지의

창고에 새끼 두 마리를 낳았나 봅니다.
처음에는 이 두 마리를 엄마 고양이가

애지중지 키우더군요. 그런데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이제 엄마 고양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 고양이 없이

 돌아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보면서

‘엄마가 왜 이래?’라는 마음이 듭니다.
인간에게는 ‘엄마 이상향’이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 안에서 자식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 이상향에 벗어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면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꼭 똑같은 엄마의 모습만 있을까요?

 ‘다른 엄마’의 모습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엄마 이상향은 하느님 이상향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이렇게 해 주셔야 한다.’라는 이상향을

 만들어서 온갖 불평불만을 하느님께

 보내고 있지요. 그러나 정말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것을 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그분과

 가까워지게 되고, 이로써

그분의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셨다는 장면을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주님께서는

 기도 없이도 거뜬히 모든 것을 이루어

 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새벽 아직 캄캄한 시간에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도 기도하신다면 하물며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멈추지 않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당신께서 하실 일을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떠나십니다.
시몬의 장모를 비롯해서 질병을 앓는 사람,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이분이 참 주님이심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말하는

‘기도’를 참 주님이신 분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주님과의 대화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명령하듯이,

“이거 해줘!”라고 말씀하시는 분 없습니다.

곧바로 부탁하기 전에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이것 좀 해 주실래요?”라고

 부탁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내게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기도를 정성을

다해서 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능하다.

(헬렌켈러)

사랑의 반대말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싫어하는 것, 미움, 원망?

누군가는 ‘무관심’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반대말도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요?
어머니의 불타는 교육열로

인해 힘들어하는 한 아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만

시키는 엄마가 너무 밉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엄마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이러지 않을

것이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이 어머니가 비싼 돈을

들여가며 불타는 교육열을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분명한 것은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아이가 싫어해도

억지로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대의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픔이 동반하는 사랑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여러 모습이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픔이 아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내 뜻에 맞추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추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제 더는 사랑의 반대말이

‘사랑’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의 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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