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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님 / 제13회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포로가 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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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rmskfk] 쪽지 캡슐

2020-01-28 ㅣ No.135649

홍성남 신부의 행복한 신앙 


 



제13회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포로가 되지 마라 

 

지난주에 이어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까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포로가 되지 마라입니다. 저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주도권입니다. 주도권을 누가 잡고 있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주도권을 내가 잡고 있으면 내가 주인이고, 주도권을 상대방이 갖고 있으면 나는 포로가 된다고 그러죠.

 

그런데 이게 무슨 사랑의 포로 이런 것처럼 좋은 게 아니라, 문제의 포로가 됐다 그러면 그때부터 정신적인 질병들이 발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문제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이런 말씀을 드리는데, 구체적으로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지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져라.

 

문제가 안 생기는 사람은 없어요. 다들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뭐 "남들도 다 그런데 뭐." 이렇게 받아들이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 왜 나만 이래야 돼!" 그런 분들이 있어요. "세상에 나만큼 힘든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대개 문제의 포로가 된 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뭐냐 하면, 남들은 문제가 없는데 나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문제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시작해요. 가볍지 않고.

 

* 남들은 문제가 없는데 나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문제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짓눌려 살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이런 문제의 포로가 돼서 사는 분들 중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분들이 자살이라는 걸 선택합니다. 요 근래에 젊은 연예인들이 여러 사람이 자살을 했어요. 그 연예인들이야 알려진 사람들이니까 신문 지상에 보도라도 됐는데, 사실은 신문에 보도도 못된 채 자살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자기기 문제에 대해서 주도권 행사를 못하고 오히려 문제의 포로가 됐다는 것이죠. 대개 자살하는 분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열악한 환경 조건을 이겨낼 만한 의지와 인내심이 부족하다. 절망과 공허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에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첫 번째 이유가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두 번째는 자기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완충장치가 결여됐을 경우에 그렇다.

 

완충장치가 자동차의 범퍼라고 얘기하는 거죠. 차를 보면 여러분들 아시겠지마는 차 앞 부분에 범퍼라고 완충장치가 있죠. 만약에 완충장치가 없게 되면 꽝 부딪쳤을 때 오는 충격이 사람한테 오죠. 그래서 정말 좋은 차는 다른 차하고 부딪쳤을 때 오는 충격이 사람한테 최소한으로 오게 하는 차가 제일 좋은 차라고 그래요. 그런데 차는 멀쩡한대 박치기하는 순간에 사람이 죽어버렸다. 그러면 이게 안 좋은 차라는 거죠.

 

만약에 차가 무쇠같이 튼튼해요. 부딪쳐 가지고 차는 멀쩡해. 그런데 안에 있는 사림이 죽었다. 그러면 이게 완충장치가 결여된 차다고 보는 거죠. 사람도 똑같다는 겁니다. 문제라는 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계속 나한테 와서 부딪치는 그 어떤 것들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딪치는 것들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완충장치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게 결여된 분들은 문제가 와 가지고 그냥 날 받아버리니까, 그래서 이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고 얘기합니다.

 

구조조정 같은 경제적인 원인은 자살을 유발하는 요인이기는 하지만 직접적 요인은 되지 못한다.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서 야기된 급성 정신질환, 인내심이 부족하고, 완충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아주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쳤을 때 생기는 급성 질환이라는 거죠. 순간적으로 이렇게 정신착란 현상이 생겨서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자살자에 대해서 엄격하게 금하고 있고, 장례미사도 안 해주고, 고지식한 본당 신부님들은 자살했다고 그러면 장례미사 안 해 주시고 그러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 예외적으로 자살한 사람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그러면 장례미사를 해 줍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자살자들은 정신착란입니다. 순간적인 정신착란 때문에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살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장례미사 해 주는 게 그게 교회법에도 맞고 정상적이라라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쨌건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하고 완충장치가 결여돼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어떤 사고방식이냐 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다고 그래요. 직선적, 다른 말로 단선적 사고방식, 또 하나는 복안적 사고방식 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 사고방식의 두 종류 : 1. 직선적 사고방식(단선적 사고방식)  2. 복안적 사고방식

 

이 중에서 직선적 사고방식, 그러니까 외길로 가듯이 그런 외골수의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고, 문제에 짓눌려 살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직선적 사고방식이란 뭐냐? A는 A다. 너무 고지식한 분들, 그냥 이거는 이거다. 이거를 다른 걸로 설명하려면 차라리 죽여라. 그런 분들이 있어요. 옛날 분들은 그런 분들이 절개가 곧고 그렇다고 얘기는 했는데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그런 성격이 그렇게 건강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이렇게 지나치게 고지식한 성격을 가진 분들, 이런 분들은 대개 혼자서 책임지려고 하는 그런 책임의식이 강한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런 분들은 사실 사회가 안정적이고 자기 주변 상황이 편안할 때는 실력을 발휘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역경에 닥쳤을 때 문제가 발생해 가지고 문제의 해법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혔을 때는 이분들은  거의 자포자기하는 그런 경향이 강하다는 거죠. 굉장히 본인이 수세에 몰리거나 문제가 복잡해지면 갑자기 안에 내적인 상태가 무너져 버리는 그런 단점을 갖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단면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신자분들하고 가끔 제가 화투를 쳐요. 그런데 화투라는 게 사실 여러분들 쳐 봐서 아시겠지만 절반은 사기거든요. 상대방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에 따라서 돈을 많이 따기도 하고 덜 따기도 하는데 화투를 치면서 법규를 따지는 분들이 있어요. 화투를 왜 그렇게 치냐? 화투는 절반은 사기라고 얘기를 해도 화투를 그렇게 치면 안 되고 화투는 법이 어떻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이제 직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에요. 이분들이 이제 화투치다가 잘 안 되면 화투장을 입에 물고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분들이죠.^^* 이런 분들하고 사는 분들은 어마어마하게 피곤합니다. 늘 법대로 따지니까 같이 사는 사람들이 전부 다 피곤해 한단 말이죠. 그러면 이런 분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는가? 이런 분들이 문제의 포로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분들은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 복안적(융통성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복안적 사고방식이 뭐냐 하면, A는 A인데 경우에 따라서 B도 될 수 있어. 융통성 있는 사고방식이죠. 이렇게 융통성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도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한다. 돌발 사건을 원만하게 흡수하여 새로운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 탄력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닌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분들은 혼자 책임지지 않고 분담하는 그런 삶을 산다고 그래요.

 

나 혼자 이거 다 해야 돼. 나 혼자 책임져야 돼. 이런 사고방식 갖지 않고, 아, 이거 같이 고통 분담, 같이 나눠서 하자. 나눌 줄 아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상황을 갖다 이거는 이대로 해야 돼, 그게 아니라 아, 다른 면도 있지 않을까?라고 다른 것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면서 융통성 있게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들을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이러다 말겠지." 아까도 화투 얘기했지만 화투치면 그분이 복안적 사고방식인지, 단선적 사고방식인지 바로 드러납니다. 고를 했는데 고박을 썼어요. 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하, 내 인생 끝났어!" 직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죠. 그런데 돈을 잃는데도 "에이, 이렇게 잃다 따겠죠  뭐. 끝나기 전에 따지 않을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어요.

 

뭐 속이야 상하죠. 그렇지만 그 문제의 포로는 안 되어 있는 거예요. 뭐 끝나기 전에 한 판 되겠죠. 런데 끝날 때까지 못 땄어. 다음 주에 따겠죠. 다음 주에 못 따면 내년에는 또 따겠죠.^^* 이러다가 말겠지라는. 10년 후에도 이럴까? 이렇게 길게 자기 인생을 갖다 내다보고 사는 분들은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분들은 주위 사람들한테 짜증을 안 낸다는 거죠. 편안하게 해 주고, 어쩌면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도 되겠어라고 걱정을 해 준단 말이죠.

 

그런데 남들이 볼 때는 이 사람은 좀 무뇌 아냐? 생각이 없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그거는 아니고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나 다 속상합니다. 단지 그 속상한 거를 풀어가는 과정이 직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은 외골수로 달려가고 있고,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은 융통성 있게 풀어간다는 것이죠. 훨씬 더 지혜롭게 사는 분들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복안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얘기가 하나 있어요. 이 방송을 보고 계신 할머니들을 위해서 제가 옛날 얘기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너무나 요령을 많이 피우고 살았대요.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저승길을 가게 됐는데, 천당으로 가려면 거쳐야 되는 강이 하나 있답니다. 요르단 강이죠. 이스라엘 성지순례 갔다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르단 강이 무지하게 큰 강이 아니라 조그만 개골창 같은 데, 그런데 어쨌건 상징적 의미에서 요르단 강은 죽은 영혼이 천당으로 가지 위해서 건너가야 될 강이라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르단 강에는 다리가 없대요. 다리가 없고 여기 베드로 사도가 서 있는데, 이 베드로 사도가 오는 사람들한테 다 십자가를 준답니다. 살아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한테는 긴 십자가, 뺀질뺀질 거린 사람한테는 짧은 십자가를 주고 이걸로 건너가라고 그런다는 거예요. 긴 십자가를 가진 사람들은 다 길게 걸쳐서 건너가는데, 짧은 십자가 가진 사람들은 놔 봐야 다리가 안 되니까 다들 우울증에 걸려 가지고 여기서 우울 집단을 살고 있었대요.

 

그런데 이 사람이 뺀질 거리고 살던 사람이 이 사람이 장사꾼이었는데 와서 딱 보니까 자기 십자가도 조그만 거 밖에 안 주고 건너갈 길은 안 보이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 내 인생은 이제 끝났어!" 이러고 있는데 이 사람은 평소에 살기를 굉장히 융통성 있게 살던 사람이었어요. 그래 이 사람들 보자마자 갑자기 돈벌이가 생각이 났대요. 어떤 돈벌이냐 하면,

 

우선 가서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십자가를 조그만 거를 다 달라. 하나에 천 원씩 사주겠다. 다 샀답니다. 그걸 가지고 엮어서 다리를 만들고 그리고 한 분 건너갈 때마다 만 원씩 받았답니다. 이분은 천당에 안 가고 지금도 여기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 이렇게 사는 분들이 복안적 사고방식이라는 거죠.

 

"나는 십자가가 요거 밖에 안 돼."라고 우울하게 있는 분들이 직선적 사고방식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쪽 분들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거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의 포로가 돼서 산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사시다가 정말로 힘들 일이 딱 닥쳤을 때는 생각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터널 비전이라고, 기차가 달리다가 터널 안으로 딱 들어가요. 그러면 저쪽에 빛이 요만한 게 있죠. 사람이 큰 문제에 딱 닥치면 그 문제에 더 집중을 하잖아요. 집중하면 갑자기 시야가 좁아집니다. 해결책이 하나 밖에 안 보여요. 그럴 때는 문제에서 손을 떼야 됩니다. 그래야지 넓게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복안적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분들이 자살도 안 하고 문제 해결도 잘 하고 사는 분들이라는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문제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 비교 심리를 이용해라


비교 심리를 이용하는 건 뭐냐 하면, 대개 아, 나는 사는 게 힘들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 사람은 힘들다고 할 때 그 힘들다는 것이 늘 비교 기준에 의해서 힘들다는 감정이 발생한다는 거죠. "나는 사는 게 왜 이 모양이야!" 그런 분들은 대개 잘 사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사는 게 너무 버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문제에 짓눌리고 그런단 말이죠.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똑같이 비교 심리를 이용해서 풀 수가 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상담 사례 하나 말씀드릴게요. 이것도 제 인터넷 카페에 들어온 건데 재미있어요.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라고 했다. 남편 동료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거를 보면서, 객관적으로 내 남편이 더 잘나가는 것 같은데, 그 부인이 부러우면서도 나보다 나은 것도 없는 거 같은데, 그런 마음들이 생기고, 그래서 어제 남편과 식사하면서 직접적으로 남편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배가 몹시 아프다는 느낌을 전했고, 남편 보고 분발하라고 했다.

 

사실 남편은 지금 상태에서 더 할 것도 없다. 남편이 퇴직 후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또 안 해도 대충 생활은 될 거 같아서 그냥 건강하기만 하라고 바랬는데, 절친한 남편의 전 동료의 영전 소식을 듣고 나니 마음이 몹시 복잡해졌다. 남편은 축하할 일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고, 그래도 축하까지는 못 해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경지나 됐으면 좋겠다는.

 

이 자매님이 배가 아픈 이유가 뭘까요? 남편의 친구가 잘 됐어요. 남편의 친구나 부인이나 이쪽의 부부하고 비교해 가지고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거예요. 지금까지. "아이, 그래도 우리 남편이 낫지, 아이, 그래도 저 여자가 나보다 못하지." 이게 무시에 깔려 있는데, 남편이 직장을 관뒀는데 남편의 친구가 승진을 해 버린 거예요. 부인은 덩달아 승진한 거예요.

 

이럴 때 내가 평소에 무시하던 사람이 잘 됐을 때 나타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 뭐죠? 이 자매가 기했잖아요. 배 아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 배가 아픈 현상은 내가 성격이 못 됐거나, 신앙생활을 덜 했거나 그래서 생기는 게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이 자매 같은 경우에는 이제 배가 아픈데 이런 배 아픈 마음이 없어지고 담담했으면 좋겠다. 그러는데 그런 담담한 마음도 여기(잘 사는 사람)를 바라보는 한 절대로 안 없어진다는 거죠. 또 남편은 남편 대로 "아, 축하해 줘야 될 일 아냐?"라고 얘기했다고 그러는데, 그 남편은 더 많이 망가질 위험성이 높아요. 차라리 자매처럼 "나 배 아퍼!"라고 얘기하는 쪽이 훨씬 건강하다는 거죠.

 

어쨌건 이 자매가 배가 아프다고 그랬어요. 비교했다고 그랬어요. 배가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을 봐야 되죠. 이 봉사활동이라는 게 그래서 사실은 봉사활동이 아니라는 거죠. 봉사활동은 나보다 잘 사는 집 가서 봉사활동하시는 분 계세요? 혹시. 나는 30평짜리 사는데, 나는 100평짜리 사는 분한테 가서 봉사한다? 그런 건 없어요.

 

나보다 못 사는 사람, 집도 없고, 절도 없고, 남편도 없고, 정말 자식도 없고 그래서 혈혈단신 사는 정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한단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분들이 봉사하고 난 다음에 무슨 얘기를 하냐 하면, "그래도 나는 저 사람보다 나아!" 여기를 바라보기만 해도 여기(잘 사는 사람)를 바라보지 않고.

 

제가 작년에 강의할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사람 마음 안에는 아이 같은 자아가 있다. 아이의 자아. 이 아이의 자아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바라보는 대로 생각을 해요. 사람 마음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거죠. 내가 안 좋은 걸 보면 바로 안 좋은 감정이 생겨요. 그런데 좋은 걸 보면 또 바로 또 좋은 감정이 생깁니다.

 

만약에 이 좁은 스튜디오 안에서도, 방송국 안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어요. 그럼 막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화장실 갔는데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옆에서 소변을 보고 있어요. 그 사람을 보면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져요. 고 짧은 순간에. 그게 사람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을 갖다가 이용하는 것이 뭐냐 하면, 비교 심리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잘 사는 사람)를 죽어라 쳐다보고 있어봐야 나만 속상하단 말이죠.

 

그러니까 보지 말라는 거예요. 눈길을 떼 게 하는 거죠. 그리고 여길(어려운 사람) 봐라. 물론 여기(잘 사는 사람)를 안 보고 여기(어려운 사람)를 보라고 그래도 그냥 "그 사람은 그렇게 잘 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그거는 이렇게 붙어 있어요. 그거는 어쩔 수가 없고, 완전하게 다 정리는 못해요. 인간이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다 정리한다고 그러면 그거는 인간이 아니고 기계죠. 기계.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그렇게 쉽게 정리가 안 되는데 어쨌건 내 마음 안에 있는 애의 머리통을 잡아 가지고 시선을 이쪽(어려운 사람)으로 바꿔 놔야 돼요. 여기(어려운 사람)나 쳐다봐라. "못 사는 사람 봐 봐. 이 사람들보다 네가 더 잘 살지 않니?"라는 얘기를 해 줘야 돼요.

 

그러면 일단은 복통이 가라앉아요. 그리고 아, 그래! 나도 살만하네 뭐. 우리 남편이 직장은 안 나가지만 재산 다 모아 놓고, 건하고, 성격 좋고, 자기보다 잘 되는 사람 축하해 줘야 될 정도면 매너가 굉장히 좋은 남편이거요. 아, 인격 괜찮은 남편인데... 그게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죠.

 

잘 사는 사람 계속 바라보면, 축하해 주라고 하는 남편이 갑자기 무능력자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에이, 돈을 더 벌어 오든가, 다시 나가서 직장을 잡아서 승진하던가 해야지, 친구 잘 됐다고 축하나 해 줘? 등신같이..." 이런 생각이 막 올라온단 말이죠. 내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요인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상당히 많은 것들이 비교 심리에서 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 비교 기준을 낮추지 않으면 계속해서 문제의 포로가 되기 쉽다.

 

내 마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철저하게 시선을 거기서 떼고 나보다 못한 쪽으로 두라. 이것이 철칙입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인데, 아주 하기 힘든 방법이죠. 그래도 내가 속상할 때 한 번 되새겨 보세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나를 불편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 혹시 내가 비교를 해서 그런 거 아닌가? 생각해 보고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본다면 여기(잘 사는 사람) 서 눈을 떼고 여기(어려운 사람)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여기(잘 사는 사람)를 바라보면서 내가 하느님한테 마음의 평화를 갖게 해 주십시오. 기도해 봐야 헛기도고, 그렇다고 해 가지고 이집 망하게 해 달라고 그러면 더 안 되는 기도고, 간단한 거는 이쪽(어려운 사람)을 보면 된다는 말씀, 비교 심리를 이용하라는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주 강의는 여기까지 하고요. 다음 주에 강의하게 될 내용은 나한테 생기는 문제는 거의 다 사람 때문에 생기죠. 사람이 나한테 병을 줍니다. 또한 사람이 나한테 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사람을 피하지 말고 사람을 만나라."라는 주제로 다음 주 강의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홍성남 신부 /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 상담전화: 02) 727-2516

*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1-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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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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