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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白碑)에 담긴 그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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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0-01-28 ㅣ No.219449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호랑이 가죽처럼 값비싼 물질보다 세상에 남기는 가치 있는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름은커녕 글자 하나 남기지 않은 비석으로, 무엇보다 훌륭한 명예를 남기는 분이 있습니다.

 

비문에 아무 글자도 쓰지 않은 비석을 '백비(白碑)'라고 합니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조선 시대 청백리로 이름난 아곡 박수량의 백비가 있습니다. 그는 전라도 관찰사 등 높은 관직들을 역임했지만, 어찌나 청렴했든지 돌아가신 후에 그의 상여를 메고 고향에도 가지 못할 만큼 청렴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에 명종이 크게 감동하여 암석을 골라 하사하면서, '박수량의 청백을 알면서 빗돌에다 새삼스럽게 그가 청백했던 생활상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명하여 '백비(白碑)'가 세워졌다 합니다.

 

이는 돌에 새길 비문 대신, 모든 이의 마음속에 박수량의 뜻을 깊이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엔 탐욕스럽게 욕심에만 사로잡혀, 이상한 명예만 얻으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한 명예는 자신이 속여서까지 만들어,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영예롭게 사는 가장 위대한 길은, 순리대로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비록 청렴하게 살다보니 남긴 거라곤 이름 없는 백비이지만, 그 비석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아름다운 글귀가 이렇게 우리에게 곧장 읽히고 있습니다. 죽은 호랑이는 그래도 가죽을 남기고 성실한 이는 이름을 남깁디다. 성경에서도 라자로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는 부자는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물론 부자도 어떻게 그토록 큰 부자가 되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그렇지만 부자는 이름조자 없지만, 가난한 이는 그래도 라자로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후에 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람답게 살았기에 이름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호랑이 가죽처럼 값비싼 물질보다, 어쩌면 세상에 소중한 명예를 남기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겁니다. 비록 이름은커녕 글자 하나 남기지 않은 비석이지만, 백비에 담긴 그 의미를 차분히 되새기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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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청백리,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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