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획기적인 효과가 나타날 강론 기법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스크랩 인쇄

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0-05-17 ㅣ No.138323

 

제가 강론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이 세상 모든 신부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가 새로운 강론 기법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하나의 팁이 될 수도 있을지도 몰라 한번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서 제가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강론을 어떻게 준비를 하시는지 잘 모릅니다.

 

신부님들마다 하는 방식이 다 다를 겁니다. 일단은 제가 봤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강론 원고를 나름 기승전결 형식으로 글을 서론, 본론, 결론 형식으로 강론의 전체 구성을 구상하셔서 전개를 해나가실 겁니다.

 

사실 이게 좀 제가 봤을 때 논리적인 흐름과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일성을 가하면서 전개를 해 나가시는 전개방식을 짜는 게 조금 힘드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단 강론도 일단 글을 작성하는 일반적인 원고라는 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이런 방식에서 조금 변화를 줘서 새로운 기법을 제가 사제는 아니지만 한번 제시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지도하는 강의방식입니다. 이걸 강론에 적용하면 어떨지 싶어서 한번 제 생각을 공유해드리고 싶습니다. 형식은 약간 다르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동일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든지 생각을 상대방에게 리드미컬하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전달했을 때 듣는 상대방이 만족하면 그건 훌륭한 강의가 된다든지, 아님 강론이면 훌륭한 강론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방식을 흔히들 주입식 교육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이런 교육방식이 실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워낙 지금까지 굳어진 교육방식이라 그게 쉽게 다른 창의적인 교육방식으로 전환이 되기에는 획기적인 아이템이 있지 않고서는 그런 변화를 섣불리 변경하려면 교육 인프라가 잘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라 혼란만 가중될 그런 상황에 봉착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일정부분 그런 현실을 알지만 울며 겨자 먹기 형식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지적할까요? 바로 그 이유는 원래 사람에게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두뇌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입식 교육은 획일적으로 지식을 하나의 일정한 틀 속에 가두어 주입하는 방식이라 창의적인 사고를 할 여지를 원천 봉쇄를 하기 때문에 발전이 하더라도 발전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이 교육의 가장 큰 치명타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원리도 강론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강론도 교육에 비유하면 지금 우리나라 신부님들의 강론 방식은 거의 대부분 주입식 강의와 비슷합니다. 사실 주입식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저는 이 방식에서 조금 변화를 주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일방적인 전달방식은 생각을 잘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만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게 기억 속에 남아서 유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강론을 녹취를 해서 문자화 된 것을 여러 차례 보지 않는 이상 그 강론 자체를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일방적인 전달 방식이 아닌 질문 방식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강론 중간 중간에 잠시 텀(휴지 시간)을 두고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취해서 잠시 생각을 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저는 이 기법을 강의에 적용을 합니다. 실제 효과는 아주 좋습니다. 제가 대학 때 가정교사 경험까지 하면 거의 강의 경력이 25년이나 됩니다.

 

제 혼자만의 경험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이지만 시간적인 경험이 가져온 결과로 본다면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게 아주 아이의 실력 향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경험이라고 단언할 수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이론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말씀드리려고 하면 하나의 비근한 예를 들면 좀 더 잘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뉴스를 듣고 어떤 정보를 캐치한다고 했을 때 뉴스인 정보 매체가 두 가지가 됩니다. 하나는 tv와 라디오 같은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청각으로 정보를 얻는 방법과 또 하나는 신문을 통해서 활자 매체를 통해 들어온 시각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뇌가 정보를 분석하며 처리하여 인지를 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 방법 두 가지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이건 지금 현대 과학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소리로만 정보를 얻는 것은 정보를 두뇌에 메모리화시키는 효력이 떨어집니다. 또 메모리 휘발 속도가 빠릅니다. 하지만 활자를 통해 입력된 정보는 상대적으로 좀 더 오래 정보를 메모리화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활자를 통해 들어온 정보가 입력이 되면 두뇌는 그 정보를 해석할 cpu가 가동하지만 계속 정보처리과정이 연쇄반응을 하듯이 진행되지만 방송을 통해 정보가 들어오면 그 기능이 뇌에서 활성화되는 게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지만 실제 상식적으로 판단을 했을 때도 충분히 논리적인 추론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원리를 강론에 적용을 하면 아주 쉬운 해결책이 나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리 정보를 전달하지만 활자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하는 방법이 바로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바로 그게 질문이 그 역할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강론은 물음표 ? 마크를 던지면서 쌍방향 대화 형식으로 강론에 적용을 한다면 이건 어쩌면 강론의 원고를 하나의 주제 속에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고역에서 벗어나면서 신자에게는 더 피부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수가 있는 강론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정말 서로에게 유익한 것이 될 겁니다. 이런 걸 보고 꿩 먹고 알 먹기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소견을 잠시 피력해봤습니다. 만약 이런 원리를 강론에 잘 적용하신다면 획기적인 변화가 올 수가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84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