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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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의 시선에만 근심하기로 결심해야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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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20-05-21 ㅣ No.138404

 

 

2020년 가해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주님의 시선에만 근심하기로 결심해야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복음: 요한 16,20-23ㄱ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경북 대구의 근교에 지산교회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재정적으로 한몫을 담당하던 오 부자가 있었습니다. 성이 오씨가 되어 오 부자라고 지칭되는 것이 아니라 5형제가 모두 교회에 다니고 있는 집안으로, 모두가 부자이기 때문에 일괄하여 오부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 오 부자가 사업 관계상 지산을 떠나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오 부자가 한꺼번에 이사하게 되자 지산교회의 재직들은 적잖게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교회를 꾸려 갈 수 없다고 생각한 재직들은 대구로 선교사 안두화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재정적으로 지원을 좀 받아 볼까 하는 약삭빠른 속셈에서였습니다. 그들은 선교사 앞에 앉아서 한숨만 푹푹 내 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안 목사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왜들 그러십니까? 교회에 무슨 걱정되는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이때로구나 하고 , 목사님! 아 우리 교회의 오 부자가 글쎄 한꺼번에 이사하였지 뭡니까? 그러니 우리 교회의 유지가 문제입니다.”라고 눈치를 보아 가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안 선교사는 그래요? 그것참 문제로군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재직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또 무슨 걱정이 생겼다는 말인가?’ 그들은 놀라서 안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왜요?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자 안 목사는 조용히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요. 문제지요.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지산교회의 여러분들은 주님은 믿지 않고 오 부자만 믿고 계시니 그게 어떻게 문제가 아닙니까?”

 

 

삶이 기쁘지 않게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이 근심입니다. 근심은 누구를 믿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도 실제로는 나 자신과 나 자신이 믿는 것을 믿으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곧 근심과 연결됩니다. 자신을 믿어도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근심하고, 하느님을 믿어도 근심할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근심은 서로 반대이기 때문에 두 근심이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도 계속 성령의 오심과 연결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기쁨인데, 어떻게 그 기쁨을 주시는 성령을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상반된 근심과 그에 따른 기쁨에 의해 언급하십니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근심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더는 보이지 않으시면 세상은 기뻐합니다. 물론 제자들은 세상이 기뻐할 때 근심에 쌓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면 세상은 근심에 쌓이지만, 제자들은 기뻐합니다.

 

이렇듯 세상에 속한 사람의 근심과 주님께 속한 사람의 근심은 반대입니다. 하나가 기뻐할 때 다른 것은 근심하고, 하나가 근심할 때 다른 것은 기뻐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어 근심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세상 것 때문에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것 때문에 근심하면 주님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누구나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압니다. 그러면 주님 때문에 근심하게 됩니다.

 

빈센트 빌 박사가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매우 괴로운 표정을 하며 인사를 합니다.

빌박사 : “자네 무슨 근심이 있나? 왜 그렇게 죽을상이 되어있나?”

젊은이 : “말씀 마십시오, 요즘은 근심과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하나가 지나면 또 하나가 꼬리를 무니 견딜 수가 없군요. 빌박사님 어디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 없을까요?”

빌박사 : “있지. 딱 한 군데가 있지.”

젊은이 : “그곳이 어딘데요?”

빌박사 : “, 그곳에 가겠나?”

젊은이 : “가고말고요. 그런 곳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죠.”

빌박사 : “그래? 그럼 설명하지, 공동묘지라네. 그곳에 누워있으면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지.”

젊은이 : “그럼 나더러 죽으란 말씀인가요?”

빌박사 : “그런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보다는 오늘 만나게 될 그분 때문에 더 근심하게 될 걸세. 오직 그 방법을 통해서만 자네가 하는 근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

 

 

우리는 누구 때문에 근심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가 잘살고 있는지 알고 싶거든 지금 그리스도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고 느껴보십시오. 그분이 미소짓고 있다면 잘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시선을 바라보고 눈을 맞추는 이에게만 당신이 준비한 기쁨의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신랑이 자신의 아기를 낳아준 여인에게 돈을 벌어 가져다주는 것과 같습니다. 여인은 아기를 낳아야 해서 근심하지만,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주님 때문에 근심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주님의 시선 때문에 지금 당장은 근심스럽더라도, 그 열매 때문에 주어지는 성령으로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https://youtu.be/rdgig13uwGE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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